그동안 여러 텍스트들을 읽었지만 이런 내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게 된 것은 『천 개의 고원』을 만나면서였다. 보다시피, 나는 나를 중심으로 놓고 모든 것을 대상화하면서 재단하고 있다. 나를 빛나게 할 수 있느냐 없느냐로 말이다. 이것을 들뢰즈와 가타리는 ‘흰 벽(뺨)과 검은 구멍(눈)’이라는 ‘얼굴성’으로 설명한다. ‘얼굴’이란 타인에게 나를 전달하는 채널이다. 표정을 통해 내가 드러나는데 이는 ‘얼굴성’이 작동하고 있다는 뜻이다. 즉 내 안의 확고한 관념을 흰 벽에다 적어놓고서는 그것에 맞춰 사람들을 줄 세우고, 그런 다음 검은 구멍 안으로 빨아들일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남편, 공부, 감이당은 yes! 깡패, 아토피, 불구는 no!’라는 식으로. 결국 동일화하거나 배제하는 것, 이것이 ‘얼굴성’이 가진 실체이자 폭력이다. 그런데 ‘얼굴성’은 자의식을 작동시키기도 한다. 자의식이란 세상 사람들이 나(얼굴)를 보고 있다는 망상이다. 여기에 매몰되면 끊임없이 자신을 검열하고 인정 욕망에 시달리게 되는 것은 안 봐도 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