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우주 전체가 내게 장난을 치거나 농을 건네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내게는 이 글을 쓰는 지금이 그러하다. 어쩌다 <모비딕>을 만났지?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되었을까? 이 책을 만나기 전에 2년간의 대중지성 프로그램들이 있었고, 그 이전에는 또 사주명리가 있었고, 사주명리 이전에는 교회가 있었고, 엄마가 있었고… 하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과거가 이러했기에 오늘 이렇게 되었다라는 설명은 뭔가 좀 부족하다. 물론 인과의 고리는 당연히 작동했겠으나, 왜 ‘그 때’였으며 또 ‘하필’ 나일까라는 이 질문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공백을 채우기 위해 우리가 자주 쓰는 말이 바로 ‘운명’이다. 그렇다, <모비딕>을 쓰게 된 이유를 묻는다면 거두절미하고 감히 운명이라고 말하고 싶다. 두 번의 수업을 거치며 여러 동기를 구구절절 설명했지만, 그 모든 것을 포괄할 수 있는 단어는 바로 이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아주 우연히 지난 방학 때 심심풀이 땅콩으로 읽어나 보자, 라고 집어 들었던 이 책을 제대로 읽지도 않고 선택해버리고, 또 한참 후에야 거기서 내 질문을 만났던 순간의 놀라움이 설명될 수가 없다. 사실 내가 책을 선택했다기보다, 차라리 선택되어진 건 아닐까? 내게는 이 모든 것이 거꾸로 진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