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회의 과정에서 교사들 사이에 의견이 대립되어 강하게 부딪치는 일이 자주 생겼다. 학생이 안전하게 교육받을 권리가 폭력 가‧피해 학생 모두에게 평등하게 보장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문제였다. 사건 직후, 가해 학생을 집으로 귀가시키는 것부터 찬성과 반대가 갈려 좀처럼 결정이 나지 않았다. 가끔은 학생과 교사 간에도 폭력 사건이 났기에 가해 학생과 피해 교사 중 어느 쪽의 인권을 보호할 것인가의 문제도 첨예하게 대립되었다. 나는 폭언이나 폭행을 당한 피해자의 편에서 이들을 최우선으로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가해 학생 또한 약자이기에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교사들도 많았다. 우리에게는 가정 결손, 정신 질환 등으로 인해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학생을 돌봐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자신이 약자를 보호하는 선한 자라 믿는 교사들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싸우고 있을 때, 싸움의 바탕에 깔린 연민들은 과연 누구에게 어떤 도움이 되었을까? 가해 학생들은 자신을 연민하는 선생님들을 이용하여 사건의 책임을 피하려고 했고, 피해 학생들 역시 위로와 휴식의 시간을 계속 보장받고 싶어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건의 당사자인 학생들뿐만이 아니라, 의견이 대립되었던 교사들까지 서로 감정이 남아 관계가 완전히 틀어지기도 했다.
회복적 생활교육이라는 체계를 도입하면서 학교에는 사건을 해결하는 매뉴얼이 생겼으나, 내 답답함은 여전했다. 때마침, 일주일에 한 번씩 꾸준히 참여하던 춘천의 공부 모임에서 니체 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니체의 책을 읽으면서, 나는 드디어 내 속의 답답함을 언어로 구체화하여 나 자신을 비춰볼 수 있었다. 약자에 대한 ‘연민’에 흔들려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소모적인 싸움만 했을 뿐, 폭력과 고통을 이해하는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지 못했다는 사실. 이런 내가 문제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