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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장자스쿨] 불온하고 위험한 도덕 혁명가, 니체
 글쓴이 : 준희 | 작성일 : 19-07-19 15:21
조회 : 318  


불온하고 위험한 도덕 혁명가, 니체

 

윤순식(감이당 장자스쿨)

 

188913. 여기 불꽃같이 살다가 마흔다섯에 삶이 멈춰버린 철학자가 있다. ‘반시대적이며 반기독교적인 철학자, 기존의 우상에 가차 없이 망치를 든 고독한 철학자, 선악을 넘어 주인의 도덕을 탐구했던 파괴와 창조의 철학자, 바로 프리드리히 니체다. 그는 이탈리아 토리노의 광장에서 채찍을 맞는 말을 끌어안고 쓰러진다. 그 후 니체는 실어증과 정신 착란의 고통 속에서 11년을 살다가 1900825일 정오, 56살의 나이로 쓸쓸하게 생을 마감했다. 스물다섯의 젊은 나이에 박사 학위도 없이 고전 문헌학 교수가 될 정도로 천재였지만 정신 나간 철학자로, 파시즘의 옹호자로 곡해되기도 한 니체. 그는 기독교를 가장 호되게 비판한 철학자로 알려져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니체의 생애에서 기독교는 결코 떼어놓을 수가 없다. 니체의 아버지, 할아버지, 외할아버지는 모두 루터교 목사였다. 어린 시절 니체는 꼬마 목사로 불릴 정도로 종교적으로 열성적인 학생이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신의 죽음을 선언한다. 나는 이 대목에서 의문이 생겼다. 목사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종교적인 원리를 모범적으로 따르는 환경에서 자란 그는 왜 기독교를 비판하게 되었을까?


안티크리스트 니체, 신은 죽었다!

니체의 그 유명한 아포리즘, “신은 죽었다는 당시 최고의 가치이자 절대적 가치인 신의 세계를 부정한다는 말이다. 이것은 단지 종교로서의 신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는 4세기 말 로마제국의 국교로 채택되면서 수 세기 동안 유럽인들의 사고와 생활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다시 말하면 서양문화는 기본적으로 기독교 문화라 할 수 있으며, 유럽은 기독교 공화국이라는 통합적인 개념을 형성하였다. 서양 학문은 신학의 연장선에 있으며 도덕 역시 기독교 윤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유럽의 정체성은 신의 세계를 떠나서는 결코 성립될 수 없었다. 그러기에 니체의 선언은 2천 년이란 역사 속에서 유럽을 지배해온 기독교적 가치관과 더불어 그것을 기반하고 있는 서양의 전통적 철학 세계와 전통 도덕에 반기를 들겠다는 것이다. 이는 그야말로 반시대적이며 혁명적인 주장이었다. 그렇다면 니체가 도덕의 역사를 분석하면서 기독교를 비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독교는 오랜 세월 동안 제도화되면서 기독교 윤리는 사회적 억압의 도구가 되었다. 이는 기독교의 세계관과 무관하지 않다. 서양 문화의 원천이라 할 수 있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은 전지전능한 초월적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인간처럼 화를 내고 질투하고 사랑하며 심지어 죽기도 한다. 그 모습이 친근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악행을 서슴지 않는 그리스 신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인간의 본성을 발견하기도 한다. 이에 반해 그리스도를 믿는 기독교는 유일신을 숭배한다. 세상을 창조한 하느님은 초월적이며 유일한 존재이기에 절대적인 순종이 요구된다. 유일신에 의해 결정된 초월적 척도는 성직자들에 의해 대중에게 내면화되어 보편적인 도덕으로 작용하게 된다. 이 가치 기준은 그 자체로 진리이기에 사람들은 신이 결정한 도덕적 명령에 복종하며 살면 된다. 여기에 의문이나 반론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이렇게 기독교적인 가치로 삶이 구성되면 개인의 본능은 억압되고 부정될 수밖에 없다. 스스로 어떤 가치도 창조할 수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니체는 이를 노예의 도덕이라고 명명하였다.

그런데 니체가 살았던 19세기는 이미 산업혁명으로 전통사회가 붕괴되면서 절대적 지위를 가졌던 중세 교회가 무너진 시기였다. 또한 칸트의 등장으로 도덕을 왜 따라야 하는지에 대해 종교가 더는 답을 줄 수가 없게 되자 도덕은 신학에서 독립되었다. 나아가 계몽주의라 불리는 진보적 사상운동으로 사람들은 이성과 과학을 신뢰하면서 교회의 독단에도 반대하게 된다. 바야흐로 개인은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 앎의 전환시대를 맞이한 것이다. 하지만 니체가 보기에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신을 이용하고 있다. 아무리 신은 죽었다고 외쳐도 끊임없이 신의 빈자리에 새로운 신, 새로운 우상을 세우며 관습대로 살고 있는 것이다. 니체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 스스로 가치를 설정하며 자신을 긍정하고 자기의 삶에서 주인이 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를 무력하게 만드는 기존의 가치에 저항하며 그 한계를 극복하는 도전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여기서부터 도덕에 대한 니체의 비판은 시작된다.


왜 위버멘쉬의 다음 단계는 계보학이었을까?

1883년부터 1884년까지 니체 사상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힘에의 의지, 위버멘쉬, 영원회귀 등을 기술한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이하 짜라투스트라)3부로 나뉘어 출간되었다. 그렇지만 대중은 이해할 수가 없었고 평단에서는 혹평이 이어졌다. 이에 니체는 이 책의 이해를 돕기 위해 짜라투스트라에서 제시한 이론을 정교하게 다듬고 설명하는 선악의 저편1886년에 자비로 출간한다. 그러나 이 역시 대중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1887710, 이번에는 선악의 저편의 내용을 보완하고 좀 더 명료한 이해를 위해 도덕의 계보학을 쓰기 시작한다. 도덕의 기원을 다루고 있는 이 책은 이전 작품에서 이미 시도된 도덕 분석과 비판을 기반으로 세상에서 가장 자연적인 물건마냥 술술 써져 불과 몇 주 만에 완성된다. 도덕의 계보학은 앞의 두 책과는 전혀 다른 문체, 즉 잠언이나 경구의 산문시가 아니라 치밀한 논리를 바탕으로 한 논문형식으로 구성했다. 도덕의 계보학은 니체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짜라투스트라의 속편으로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책의 출간 시기를 들여다보면 한 가지 질문이 생긴다. 이미 짜라투스트라에서 위버멘쉬, 즉 끝없이 자신을 극복하는 초인의 길을 제시함으로써 니체 사상은 완전히 무르익었고, 정점을 찍었다. 그런데 니체는 다시 계보학으로 돌아가 그 계보를 탐사하고 도덕의 뿌리와 근원을 파헤치는 작업을 새로이 시작한다. 왜일까?

사람들은 왜 위버멘쉬를 이해하지 못할까? 니체는 이 지점에서 사람들에게 초인이 되는 것을 막는 계보를 먼저 탐구해야 함을 깨닫게 된다. 자신을 극복하는 길은 자신에게 주어진 가치판단을 다시금 탐구함으로써 가능하기 때문이다. 누구보다도 열렬한 기독교 집안에서 독실한 신앙인으로 자라온 니체는 사람들에게 작동하는 기독교적 생리를 잘 알고 있었다. 이토록 약자적인 신체, 초월적 기준을 붙들고 이미 결정된 도덕을 아무 의심 없이 내재화하는 노예들. 기독교의 신뿐만이 아니다. 공동체에서의 도덕은 우리에게 행동규범으로 주어져, 마치 종교처럼 작동한다. 이는 사회적·국가적 질서까지도 아우르는 개념으로 공동체의 질서 유지란 명목 아래 공동체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마땅히 지켜야 하는 정언 명령으로 주어진다. 다시 말해 왜 그렇게 행동해야 하는지는 설명되지 않고, 오로지 무조건 그렇게 해야 한다라고만 강요되는 것이다. 니체는 평생을 도덕을 의심하고, 회의하고, 질문을 던지는 데 쏟았다. 처음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에서 도덕 역사의 윤곽을 제시하였고, 아침놀을 통해 도덕에 대한 전쟁을 선포한다. 그리고 도덕의 계보학에서 마침내 도덕 역사에 대한 비판은 완료된다. 니체는 도덕에 관해 성찰하면서 사람들의 행동이 오랜 역사 속에서 형성된 습관과 각인의 결과로 이어진 문화의 역사라고 인식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도덕의 역사는 힘을 향한 욕망과 불복종에 대한 두려움에서 발전되어 나왔다고 깨닫게 된다. 가치와 도덕의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는 계보학적 탐사가 선행되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니체에 대한 오해, 그리고 도덕의 계보학

살아생전 니체의 사상은 학계나 종교계는 물론 대중들에게도 많은 비판을 받았다. 또한 니체가 죽은 후에도 그에 대해 반감이 많았다. 니체 사상이 급진적이기도 하지만 그의 철학이 파시즘으로 오용되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20세기 초, 그의 철학은 친 나치적 성향의 여동생 엘리자베트에 의해 히틀러의 아리안족 우월주의를 정당화하는 데 사용된다. 나치는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뒷받침할 사상가로 니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니체가 강조한 위버멘쉬는 조금만 왜곡하면 강력한 국가주의나 파시즘으로 오해되기 쉽다. 파시스트, 친 나치로 지목되는 니체의 오명을 가장 잘 씻어줄 수 있는 책이 바로 도덕의 계보학이다. 무엇인가에 수동적으로 자기를 지배당하지 말라는 것이다. 니체는 국가나 종교, 도덕에 의해 개인의 고유성을 상실한 채 살아가는 것을 가장 경멸했으며, 이런 억압의 구조를 계보학적으로 탐사하고 도덕에 대한 체계적인 해석을 내놓고 싶어 했다.

니체 사상은 20세기 중반 프랑스 68혁명 세대 철학자들에 의해 반전이 일어난다.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라 불리는 이들은 니체 사상을 새롭게 해석하고 재평가해서 부활시킨다. 탈근대를 외치는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은 소크라테스 이후의 전통적인 서양철학, 즉 형이상학의 극복을 사유의 원천으로 하고 있다. 이원론적인 서양철학과 선과 악의 이분법에 얽매인 기독교의 한계를 뛰어넘는 니체 사상의 위대함이 비로소 조명을 받게 된 것이다. 들뢰즈, 데리다, 푸코의 니체 다시 읽기는 유럽을 넘어 전 세계로 확산되며 니체 붐을 일으켰다. 문학에서도 카잔차키스, 루쉰, 밀란 쿤데라, 헤르만 헤세, 앙드레 지드, 카프카 등 많은 작가가 니체의 영향을 받았다. “나는 너무 빨리 왔다. 100년 후에는 내 철학이 누군가에게 읽힐 것이라는 니체의 예언처럼 그의 사상은 오늘날에도 지성사와 문화예술 전반에 영향을 주며 철학적 담론의 중심에 서 있다. 그렇지만 일부 학자나 영미권의 종교계에서 니체는 여전히 반동적이며 불온하고 위험한 철학자이다. 시대를 앞서간 자, 그래서 반동의 빨간 딱지가 붙은 철학자, 니체의 도덕의 계보학은 바로 그 불온함의 지점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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