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금성] 자연철학에서 길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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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이트 작성일19-07-19 18:09 조회1,591회 댓글0건본문
자연철학에서 길을 찾다
김지숙(금요대중지성)
이 책 『천 개의 고원』(1980)은 『안티-오이디푸스』(1972)의 속편이다. 하지만 두 책은 객관적으로는 완전히 다른 운명을 겪었다. 분명 상황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안티-오이디푸스』가 아직 68운동의 영향력이 느껴지던 격동기에 씌어졌다면 아무래도 『천 개의 고원』은 물결이 잠잠해지고,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이라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던 시기에 나왔던 것이다. (『천 개의 고원』, 이탈리아판 서문)
들뢰즈는 왜 『안티-오이디푸스』의 속편을 썼을까. 인용문에서 알 수 있듯이, 두 책이 출간되었을 당시의 분위기는 아주 다르다. 그렇다면 이렇게 추측해볼 수 있지 않을까. 『안티-오이디푸스』에서 했던 질문이 더는 유효하지 않은 어떤 상황이 도래한 것이라고. 그래서 『천 개의 고원』이라는 새로운 책을 다시 쓰지 않으면 안 되었다고 말이다. 68혁명이 끝나고 12년이 지난 그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1980년 그즈음으로 시간을 돌려보자.
돈이 얼굴이 되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탄탄대로를 걷고 있던 유럽 경제는 1973년을 기점으로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다. 중동이 석유를 팔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던 일, ‘오일쇼크’ 때문이다. 물가와 실업률이 치솟았고 소비심리는 꽁꽁 얼어붙었다. 설상가상, 6년 후 또 한 번의 오일쇼크가 덮치자 세계 경제는 겉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장기불황의 늪에 장막이 드리워지면서 언제 걷힐 지 모르는 암울한 상황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다. ‘대처리즘과 레이거노믹스’의 등장! ‘신자유주의’의 신호탄이었다.
신자유주의란 모든 것을 ‘경쟁’ 체제로 만들고 거기서 살아남지 못하면 시장에서 퇴출해버리는 냉혹한 경제 원리다. 한마디로 ‘돈이 되어라!’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돈이 될까. 사람들의 욕망을 잘 읽어내야 한다. 그래서 신자유주의는 빠른 속도로 한층 업그레이드된 상품이 출시되고 그것이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으며 돈을 쪽쪽 빨아들이는 구조로 되어있다. 자본이 욕망을 포획하고 사회체를 완전히 장악하는 것, 그것이 신자유주의의 최종 목표다. 돈만 있으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 같으니 돈이 최고라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해서 개인들은 '돈'을 주체화의 점으로 삼기 시작했다. ‘돈이 얼굴이 되는’, 다시 말해 ‘돈이 주체를 세우는’ 기이한 상황이 출현한 것이다!
사실 『안티-오이디푸스』를 저술할 때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엄마-아빠-나’라는 가족 삼각형 안으로 밀려 들어가는 주체와 자본주의에 순응하는 주체가 가장 큰 문제였다. 그래서 ‘무엇과도 연결접속할 수 있는 욕망기계로 살라’는 말이 먹혀들었다. 물론 68혁명의 열기가 남아 있던 격동기라는 것도 한몫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가 들어서면서 욕망은 자본 외에는 어떤 것과도 접속하지 못하는 극한의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이라는 분위기”는 출구를 찾지 못한 개인들의 자포자기 심정이다. 인정하기 싫겠지만, 자본은 탈주체화되어 사회체를 잠식하고 있는데 욕망의 해방을 외쳐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할 때다. ‘어떻게 살 것인가’가 아니라 ‘자본이 쳐 놓은 미세한 그물망을 어떻게 뚫을 것인가’라고. 그런데 답은 뻔하다. 돈이 나를 규정하고 있으니 얼굴에서 돈을 지우는 것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결국 ‘주체화’가 문제인 것이다!
무염시태(無染始胎), 괴물을 낳다
들뢰즈는 ‘탈주체’를 화두로 삼고 평생 그것을 탐구했던 철학자였다. 자본과 결탁한 막강한 주체가 탄생했을 때, 한치의 머뭇거림 없이 『천 개의 고원』을 쓸 수 있었던 것도 오랜 시간 갈고 닦은 탄탄한 철학적 사상이 뒷받침해 주었기 때문이다.
사실 들뢰즈에게는 ‘주체화’에 대한 문제의식이 일찍부터 있었다. 사적인 얘기를 잘 하지 않는 들뢰즈가 자주 회상할 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일, 그것이 발단이었다. 들뢰즈 가족이 도빌 해변에서 여름 휴가를 즐기고 있을 때 노동자들이 같은 장소에서 바다를 보며 감탄하는 일이 있었다. 이를 본 들뢰즈의 부모들은 “저따위 인간들이 있는 해변에는 갈 수 없다”며 흥분했다. 왜 그들은 이런 반응을 보인 것일까. 부르주아의 민낯이 보여준 폭력성이라고? 그렇게 뭉뚱그려 일반화시키기에는 무리다. 모든 부르주아가 다 그런 것은 아닐 터. 이유는 그들이 강고한 주체에 갇혀서다. 그래서 ‘부르주아는 이래야 하고, 노동자는 이래야 한다’는 전제에 사로잡히게 된 것이다. 어쩌면 들뢰즈의 철학적 방향은 이때 정해졌는지도 모른다. 주체철학이 아닌 다른 철학으로.
그런데 막상 대학에 들어가고 보니 주체철학이라 불리는 '관념론, 현상학, 실존주의' 등이 학계를 주름잡고 있었다. 1,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그것들이 파국을 맞이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건재했다. 주체철학의 대안으로 불리며 사람들로부터 열렬히 환영받았던 정신분석은 어떤가. 들뢰즈가 볼 때 정신분석은 주체철학과 한통속이었다. 언제나 주체를 상정하고, 이분법으로 나누고, 의미를 부여하며 해석하고, 그래서 세계를 고정된 시각으로 바라보니 말이다. 들뢰즈는 정신분석이 유럽 전체를 ‘초월성의 질병’에 걸리게 했다고 맹비난하며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는다. 정말이지 들뢰즈는 정신분석을 포함한 주체철학이 지긋지긋하다 못해 증오스러웠다. 다른 길을 찾아야 했다. 결국 철학사의 지층들을 탐색하는 작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된다. 그렇게 해서 만난 것이 바로 ‘자연철학’!
자연철학은 과학철학이라고도 하는데 인간의 경험이 아닌 과학 혁명을 통해 발견한 우주적 앎을 바탕으로 세계를 인식한다. 우주적 앎이란 어떤 것일까. 다름 아닌 '자연학', 결국 모든 학문을 뜻한다. 사실 아리스토텔레스 이전까지는 학문이라고 하면 자연학 딱 하나였다. 이랬던 것을 아리스토텔레스가 분과별로 나누면서 학문의 경계가 생기고 대학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들뢰즈의 방대한 지식에 놀랄 이유가 없다. 들뢰즈가 음악, 미술, 문학, 영화, 지질학, 지리학, 사회학, 역사학, 수학, 통계학, 경제학, 생물학, 화학, 물리학, 유전학, 언어학 등 온갖 학문과 접속한 것은 자연철학의 입장에선 결코 특별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연철학자라고 해서 모두 들뢰즈와 같지는 않았다. 들뢰즈의 지적 호기심은 그것들을 대충 훑어보는 것으로 만족하게 놔두지를 않았다. 참 귀찮은 일이었을 텐데 들뢰즈는 각각의 학문을 세세하게 그리고 깊이 파고들었다. 푸코가 들뢰즈를 높이 평가했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으리라. 전문가 못지않은 학문적 이해 덕분에 들뢰즈는 어디에서든지, 심지어 일상의 아주 사소한 영역에서조차도 자신의 문제의식과 공명할 수 있는 지점을 끌어낼 수 있었다. 이를테면, 패턴도 정해놓지 않고 그때그때 배치를 바꾸며 크기도 형태도 색깔도 제멋대로인 조각천을 이어붙이는 ‘패치워크’에서 탈주체의 모습을 읽어낸다. 이렇게 일상과 학문의 경계를 종횡무진 넘나들면서 들뢰즈의 철학적 지평은 확장되었을 뿐만 아니라 더욱 실천적인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자연철학의 길을 걷다 예상치 않게 얻은 소중한 성과였다.
또 하나의 성과가 있었다. 들뢰즈 사상의 기반이 될 루크레티우스, 스피노자, 흄, 니체, 베르그손이라는 철학사의 숨겨진 보물을 발굴한 것이었다. 스피노자와 니체는 지금이야 호평받지만, 당시 이들에 대한 평가는 상당히 인색했다. 당연하다. 주체철학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얘기를 하고 있는데 좋은 소리가 나오겠는가. 자연철학에는 우주와 생명을 관통하는 이치가 기본으로 내재되어 있다. 하지만 그것은 서양인들에게는 익숙한 내용이 아니다. 동양적 사유인 역(易)의 원리에 가깝기 때문이다. 즉 우주와 생명은 운동하면서 ‘생성 변화’한다는 것이 자연철학의 핵심이다. 그래서 자연철학자들은 고정된 주체란 없으며, 주체는 운동하면서 계속 변한다고 주장한다. 들뢰즈가 듣고 싶었던 바로 그 얘기다! 환희의 기쁨으로 들떴을 들뢰즈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운동을 전혀 사유하지 않는, 그래서 ‘영원불변’을 테제로 하는 주체철학 때문에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리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사실 이것은 들뢰즈의 유쾌한 작업을 알리는 서막이었다. 들뢰즈는 ‘운동의 철학자’였던 저 다섯 명의 등을 덮쳐 아이를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그 유명한 ‘무염시태(無染始胎)’! 아이는 철학사의 전통을 비틀고, 부수고, 거역하며 거기에서 미끄러져 나온 괴물이었다. 사람들은 이 사생아를 혐오스럽다고 비난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확실한 건, 그 아이는 주체철학과 맞짱 뜰 수 있는 강력한 무기라는 점이다. 들뢰즈는 말한다. 자연철학에 천착하며 길을 찾던 스스로에 대한 보상이 바로 그 아이였다고.
백척간두, 어디로 발을 내디딜 것인가
주체화의 문제는 근대 이후 늘 있었던 것으로 그렇게 특별한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시작되면서 조금씩 곪더니 신자유주의가 들어서자 터져버렸다. 지금은 어떤가. 시대가 바뀌었다지만 신자유주의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아니 더 심해졌다. 명품이나 브랜드 하나쯤 둘러야 얼굴이 선다는 얘기가 일상이 된 지 오래다. 돈과 얼굴이 딱 붙어서 좀처럼 떼어낼 수가 없다. 오죽하면 세포 속까지도 자본으로 물들어있다고 하겠는가. 그런데 차라리 끝나면 차라리 다행이다. 돈의 쾌락에 빠져 변이 능력과 공감 능력을 잃어버린 무감각한 신체, 자본의 굴레에서 겨우 벗어났는가 싶더니 더 강력한 자본의 유혹이 기다리고 있다. 한마디로 백척간두! 어디로 발을 내디딜 것인가.
“아마도 어느 날 이 세기는 들뢰즈의 시대라고 불릴 것이다.” 푸코가 했던 말이다. 왜 푸코는 이런 얘기를 했을까. 자본주의가 계속되는 한 주체화의 문제는 쉽게 풀리지 않을 것이며, 그 문제를 해결할 적임자로 들뢰즈만한 사람이 없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푸코의 예상은 적중했다! 들뢰즈만큼 탈주체에 대해 고민하고 궁구했던 사람이 또 있을까. 이제 ‘자본과 생명이 일치하지 않는 길이 어떤 것인가’를 절박하게 물으며 들뢰즈가 제시하는 해법에 귀 기울여야 할 때다.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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