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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금성] 업과 윤회의 고리를 끊다
 글쓴이 : 감이당 | 작성일 : 19-07-19 19:28
조회 : 270  


업과 윤회의 고리를 끊다


안 혜 숙(금요대중지성)

   

BC 6세기경 어느 봄날, 인도 북중부 카필라밧투의 작은 부족국가 사끼야 족의 왕자 싯닷타 고따마가 출가했다. 그의 나이 29세였다. 그는 절실히 구하고자 하는 것이 있었다. 끝도 없이 욕망에 시달리는 인간의 고통. 태어나 늙고 병들고 죽어갈 숙명을 지닌 존재. 그 근본적인 고통으로부터 해방되는 길을 찾기 위해서였다. 35세에 깨달음을 얻은 후 80세에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45년간 붓다는 갠지스강 유역을 떠돌며 가르침의 일생을 살았다. 그 여정에서 터져나온 짤막한 4구 게송들이 입으로 입으로 전승되다가 <법구경>이라는 경전이 되었다. 423개의 게송들과 그에 달린 인연담들의 모음집. <법구경>은 말 그대로 시집이자, 당대를 살다 간 사람들의 생생한 삶의 이야기, 시대의 풍속사이기도 하다.

 

업과 윤회에 결박된 생


인도인에게 윤회의 관념은 뿌리 깊다. 고따마 붓다가 나오기 훨씬 전 인더스문명 때부터 그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사람이 죽으면 식물이나 동물이 되기도 하고 또 그것들이 죽으면 사람이 된다는 윤회 사상. 그 근거에 이미 업이라는 개념이 깔려있었다.


천오륙백년 전 인도에 아리아인이 들어와 원주민이었던 드라비다 족을 제압하고 베다시대가 시작되었다. 그 근간을 받쳐주는 건 신분계급 제도인 카스트였다. 토착민들은 대부분 노예인 수드라계급이 되었다. 최고 사제계급인 브라만, 왕족인 크샤트리아, 농사짓고 생산하는 바이샤계급은 그래도 공동체를 구성하는 인간에 속했다. 노예신분인 수드라 계급은 아리아 공동체에 속하지도 못했다. 신성한 신의 소리인 베다를 들을 수도, 베다제의에 참석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다. 짐승보다 못한 불가촉천민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이들 하층민들에게 삶이란 고통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과거 업의 소산이니 참고 견뎌야 내세에 복을 받는다고생각했다. 현실이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어찌할 길 없는 운명. 인도의 카스트제도는 이렇게 숙명론적인 업과 윤회의 관념과 더불어 오랜 세월 존재해 왔다.


이 업, 즉 까르마(karma)의 교리는 기원전 5세기 말에는 더욱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사람들은 모두 죽음과 재생의 끝없는 순환에 들어가 있다고 믿었다. 욕망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행동을 하고, 그 행동의 질이 다음 생에서 그들의 상태를 결정했다.”(축의 시대,396) 법구경 속의 언어도 이 맥락 속에 있다. ‘업생신(業生身).’ 법구경 인연담에 나와 있는 우리 몸에 대한 표현이다. 업을 가지고 태어난 몸! 이생에서의 온갖 행복과 고통은 과거 내가 한 행위의 결과이고, 현생에서의 행위에 따라 보다 좋은 곳에 태어나건 나쁜 곳에 태어나건 끝도 없이 윤회한다는 관념은 피할 수 없는 괴로움이었다. 높은 신분으로 태어났다고 해서 이런 윤회의 고리에서 자유로운 건 아니었다. 다음 생을 어찌 보장할 수 있는가. 베다의 진언을 외우고 신에게 제의를 지내고 희생제를 치루며 그들은 내세를 보장 받는다고 생각했다.


 

이합집산하는 불안과 혼돈의 시대


그러나 영원한 것은 없다. 시대의 변화와 더불어 카스트제도는 격렬히 흔들리며 분열하고 있었다. 그 결정적 원인은 철기의 도래로 인한 생산력의 발달과 그로인한 상업의 발달이었다. 계속해서 이동해야하는 교역의 성격은 도시를 발달시키고 도시와 도시를 연결했다. 동시에 기존 농경사회였을 때의 브라만 중심의 제사의식은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일부 상인은 부를 얻었고 주로 바이샤계급 출신들이었던 그들은 새로운 장자계급을 형성했다. 전사계급이자 왕족인 크샤트리아 계급과 손을 잡고 새로운 세상의 주축이 되었다. 또한 농경이 아닌 제조업의 주 담당자, 장인들은 보통 토착민 수드라계급 출신들이었다. 그들 역시 하루아침에 부와 지위를 얻기도 했다.


변하는 건 카스트제도만이 아니었다. 우리나라 열다섯 배 크기의 땅덩어리에 산포되어있던 300여개의 부족국가들은 끊임없는 전쟁을 통해 이합집산하며 보다 큰 군주국가들이 등장하고 있었다. 붓다의 고향인 사끼야족도 붓다가 보는 앞에서 멸망했다. 그렇게 덩치를 키운 16개의 군주국가들 가운데 큰 나라를 대표하던 마가다국과 꼬쌀라국은 붓다가 활동하던 주 무대였다. 갠지스강을 사이에 두고 남쪽과 북쪽에 위치하던 두 나라의 왕 빔비싸라와 빠세나디는 평생 붓다를 외곽에서 조력한 동료이자 신심깊은 왕들, 법구경 인연담의 단골 출연자이기도 했다


 <법구경>에서 이런 시대의 풍광은 그대로 드러난다. 이런저런 생필품을 한가득 싣고 상인들이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이동하고, 이동할 때 출가한 수행승들이 함께 동행하기도 한다. 이런 재물을 노리는 강도나 도적들도 수시로 등장하고, 상인들이 집결한 각 곳의 도시에는 새로운 문화가 형성된다. 술집이 생기고 모여서 도박하고... 도시에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는 기생집단, 아름답기로 유명한 기생 씨리마의 이야기를 비롯해 유녀들의 이야기 등.


이렇듯 정치 경제 사회 전반적인 변화의 급류 속에서 사람들의 욕망도 분출했다. 쾌락과 재물을 향한 욕망. 일부 거부 장자나 브라만 계급은 사치와 향락을 누렸지만 그만큼 도덕적 타락과 빈부격차는 심해지고 있었다. 굶어죽고 병으로 죽고 전쟁에서 죽는 일은 다반사였다. 기존 사회적 가치관의 붕괴와 변화의 급류 속에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거 베다의 전통 속에서 이전의 종교적 관행을 유지하고 있었다. 브라만 제사를 답습하며 현세에서 이루지 못하는 욕망의 실현을 빌었다. 그들의 최선의 소원은 내세의 복을 빌며 신들의 세계에 태어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미 제의는 힘을 잃고 있었다.

 

해방을 향한 여러 시도들


많은 출가자들이 도시로 쏟아져 나왔다. 이런 광경을 어느 나라 어느 도시에서 볼 수 있을까. 수많은 맨발의 유행자들이 떼를 지어 탁발을 다니고 거리를 이동하며 숲에서 들에서 고행 하는 광경들을. 그들은 까르마와 윤회에 묶인 삶, 타고난 업생신의 굴레에서 어떤 식으로든 해방되고 싶은 자들이었다. 출가사문들 대부분이 금욕이나 고행을 실천했다는 건 그만큼 욕망과 육체의 구속에서 해방되고자 하는 갈망이 컸음을 반증한다.


브라만은 일찍이 종래의 형식적 의례주의를 버리고 우주와 자아의 근원에 대한 탐구, 범아일여라는 형이상학적인 우파니샤드사상으로 출구를 찾았다. 하지만 베다와 카스트의 연장 선상에 있었던 그들은 이미 시대의 변화를 감당할 수 없었다. 카스트제도의 동요 속에서 부상한 바이샤 수드라들은 출가사문들을 존경했다. 국왕들 또한 이들 사문들에 관대했다. 신흥제국의 정신문화는 혁신적인 출가사문들이 대표했다. 마가다국은 신흥 사문이 활동하는 중심무대였고, 고따마 싯닷타도 출가하여 이들 속으로 들어갔다


이 시기 300가지가 넘는 많은 우후죽순 신흥사상들은 저마다의 논리로 이 괴로운 세상에서의 해방을 추구했다. 이들 가운데 큰 세력을 형성한 여섯 개의 그룹을 육사외도라 한다. 이들의 이론은 업 자체, 자아와 인과응보에 대한 해석을 달리하며 차이를 보였다. 그러나 브라만교를 강하게 부정하고, 모두 다시 태어나고 다시 죽는 윤회의 막다른 골목에서 빠져나갈 길을 찾겠다는 결의를 보여주었다(축의 시대, 406)는 공통점이 있었다. 육사외도들 가운데 <법구경>에도 자주 등장하는 니간타라고 불리는 자이나교의 교리는 놀라우리만치 불교와 많은 부분에서 흡사하다. 하지만 그들은 결정적으로 지바(영혼)라 불리는 순수한 자아라는 실체에서 구원을 찾았다. 불살생과 더불어 이 순수한 영혼을 속박하고 있는 업물질을 소멸하기 위해 그들은 엄격한 고행이 필요했다. 그러나 붓다는 이들이 주장한 고행이나 다른 유물론적인 쾌락주의나 회의주의, 숙명론적 허무주의 등이 아닌 그 자신만의 길을 찾았다.

 

연기緣起의 깨달음, 업과 윤회의 고리를 끊다


<법구경>의 인연담에서 붓다는 어떤 문제의 원인으로서 지금 그대가 그런 것은 과거에도 그랬다는 말을 자주 한다. 실제로 아주 디테일하게 상대방의 전생의 이력을 얘기하기도 한다. 지금 당면한 문제를 넘어가기 위해서도 당사자의 과거력은 아주 중요한 이해의 도구였다. 업과 윤회의 관념을 떠나 자신의 삶을 이해하기 힘들었던 사람들에게 달리 어떤 말로 설명 할 수 있었을까. 지금 우리가 과학의 언어로 불교를 더욱 이해하기 쉬운 것처럼. 또한 지금도 우리는 현재의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아니 이해할 수 없는 행위를 설명하기 위해 과거를 불러오고 전생을 들먹인다. 업과 윤회에 대한 붓다의 언급은 그들에게 운명적으로 받아들이라는 게 아니었다. 그 업으로 인한 윤회의 수레바퀴를 멈추게 하기 위함이었다. 반복되는 업으로서의 습을 끊고 지금여기에서의 행위를 바꿈으로써 말이다. 어떻게 바꾸는가? 그는 무엇을 깨달았는가.


그는 출가 후, 역시 궁극의 해탈을 추구하고 있던 당대 최고의 두 요가 스승들에게서 선정을 배웠고 어렵지 않게 스승들의 경지에 도달했다. 그러나 정직한 그는 그것이 진정한 해방이 아니라 또 다른 쾌락임을 알았다. 고행으로 돌아섰다. “어느 누구도 나만큼의 고행을 넘어설 수 없으리라.” 혹독한 6년간의 고행 후 붓다는 그 길도 아님을 알았다. 그가 찾아낸 길은 쾌락도 고행도 아닌 중도中道에 있었다. 중도, 그 길은 무상과 무아의 길이자, 있는 그대로의 진리인 연기의 세상이었다. 세계와 자아는 고정불변하는 실체가 아니라 매 찰나 변하는 인연조건 속에서 발생하고 소멸할 뿐이라는 붓다의 발견! ‘네가 있어야 내가 있고, 네가 없으면 나도 없다는 모든 존재의 실상! 십이연기는 업과 윤회라는 괴로움, 그 괴로움의 원인의 고리이자 그것을 소멸하는 길의 발견이었다. 고,집,멸,도! 붓다는 이를 모르는 것이 무지, 무명이라 했다.


애초 우리는 무명의 존재로 태어난다. 욕망으로 인한 탐욕과 분노. 그런 자신에 대한 무지를 안고 태어난 몸인 것이다. 이 아닌 어떤 것으로 내 몸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법구경에서 붓다는 출가한 수행자들에게 주로 몸의 무상함을 통찰하라는 명상주제를 준다. 업생신의 굴레에서 어떻게 자유로워 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붓다의 가르침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방법이다. ‘혼자가 대세인 이 시대. 비대해진 자아와 자의식으로 소통은 어렵고 관계는 단절되고 고독사하기 십상인 세상이다. ‘너를 떠나 내가 있을 수 없다, ‘매 순간 조건 속에서 생성되는 나만 있을 뿐, 고정된 나란 없다는 연기의 진리가 2,600년의 시공을 뛰어넘어 더욱 가슴 뜨겁게 육박해오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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