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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장자스쿨] 고통을 전도시키는 건강한 철학
 글쓴이 : 승차라 | 작성일 : 19-07-19 19:45
조회 : 321  

고통을 전도시키는 건강한 철학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한 승 희(감이당 장자스쿨)

 

  삶이 멈추지 않는 빛과 같다면 어떨까? 마치 한낮의 태양이 그림자도 보이지 않을 만큼 모든 걸 비추는 것처럼, 세상의 허위가 낱낱이 보인다면 우리는 삶을 감당할 수 있을까? 니체의 사유와 생애를 공부하다 보면, 이 사람은 19세기를 거대한 사유의 빛으로 환히 꿰뚫어 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당시의 독일은 자국 문화의 우수성에 대한 자부심, 인간의 이성으로 더욱 발전해 갈 역사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니체는 서구 근대 문명이라는 자신의 시대를 ‘문제적’으로 보았다.


  자유주의와 민족주의에 기반한 강력한 제국의 성립, 칸트와 헤겔에 의해 화려하게 부활한 형이상학적 철학, 다윈의 진화론과 합리주의 신학이 가져다 준 세계에 대한 과학적 ‧ 체계적 관점. 어느 모로 봐도 시대는 진보했으며, 이 빛을 세계 곳곳에 가져가 미지의 영역을 개척해야 한다는 것이 동시대인들의 일반적 인식이었다. 그러나 니체는 근대 유럽인이라는 존재의 무리 안에서 ‘동시대인’으로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의 철학은 스스로가 명명했듯이 시대의 아침놀로 태어나 정오를 향해 가는 것이었다. 즉, 인류의 이성 ‧ 역사 ‧ 도덕을 지하의 심연까지 낱낱이 들여다보는 태양과 같은 빛이었던 것이다.


  이는 한 사람의 인생에서 축복이었을까, 재앙이었을까? 천재 철학자이기 전에 한 인간으로서, 시대의 심연으로 내려가 광맥을 캐는 고독한 운명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절망하여 삶을 부정하거나, 세상을 외면하는 허무주의를 비판한 철학자이기도 하다. 그에게 삶이란 극복하는 과정뿐이었다. 그 과정에서 노래하듯 태어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기존의 가치를 전도시키고 새처럼 날아오르는 웃음과 긍정의 철학으로 평가된다. 그렇다면 이 책은 니체 자신의 삶에 있어서는 어떤 가치를 전도시키는 철학이었을까?



 

실재하는 삶, 고통

  이성으로 대표되는 관념론적 형이상학, 뿌리 깊게 남아 있는 기독교 도덕의 심리적 억압, 그리고 이 지반 위에서 세워진 모든 근대 문명의 발전. 니체에게 이것은 실재하는 삶과 살아 숨 쉬는 자기 자신을 보지 못하게 하는 허위에 불과했다.


  니체에게 실재하는 삶이란 것은 무엇이었을까? 자유? 행복? 아니다. 고통이었다. 어릴 적부터 끊임없이 따라다닌 신경증적인 증상들. 그는 아팠다. 특히 30대 중반이 된 1877년과 1880년 사이, 질병이 급격히 심각해진다. 규칙적으로 오는 심한 두통과 발작, 탈진, 며칠 동안 위액을 힘들게 토해내는 구토, 눈 통증, 거의 실명에 이를 정도의 시력 약화, 불면……. 자신의 아버지가 사망한 나이인 36살이 되던 때 1879년, 그의 생명력은 가장 낮은 지점에 이르게 되었다. 1년 동안 그는 118일이나 심한 발작을 겪었다고 한다.


  결국 그는 병가를 제출하며 근근이 이어가던 바젤 대학 교수직을 사임한다. 그리고 자신의 몸에 맞는 영양섭취, 장소, 풍토를 스스로 선택하여 프랑스와 이탈리아, 스위스의 여러 지역을 여행하는 삶을 살기 시작한다. 정상적인 사회생활, 사람들과의 사교적 관계 등의 일반적인 일상으로부터 그는 물러나야 했다. 이때의 니체는 자신의 삶을 ‘끔찍한 짐’으로 느낀다. 뇌 연화증으로 사망한 아버지와 같은 나이인 자신 역시 뇌에 문제가 있을지 모른다는 두려움도 강했다. “인생의 중간 지점에 있는 나는, 언제라도 나를 데려갈 수 있는 ‘죽음에 둘러싸여’ 있네.”(1879년 9월 11일 가스트에게 보내는 편지)


  삶은 그에게 악의 없는 동심의 장난 같은 고통도 선물로 주었다. 천부적인 예술적 감수성과 창조성, 자유정신의 사유 능력은 그가 시대에 잘 적응하며 편안하게 살아가는 데에 전혀 도움을 주지 않았다. 그가 철학을 진전시키는 과정에는 언제나 자신이 뜨겁게 빠져있던 것과의 단절이 발생했다.『비극의 탄생』(1871)은 그의 학문적 정체성이었던 고전문헌학을,『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1876)은 그가 존경했던 음악가 바그너를 비판하고 떠나가는 과정이었다. 니체의 고유한 사유 능력은 질병 못지않게 그를 안전한 사회적 관계망으로부터 떠나가게 하는 요인이 된다. 시대의 심연을 파 내려가는 철학을 단호한 확신으로 ‘위대한 과업’이라고 인식했던 그였지만, 인간으로서 느끼는 감정의 고통을 속일 수는 없었다. 1882년 친구 파울 레, 지적인 젊은 여성 루 살로메와의 삼각관계에서 겪은 수치심은 어떤 수면제로도 잠을 잘 수 없는 극심한 고통으로 그를 밀어 넣는다.



 

걷고 쓰는 삶, 위대한 건강

  철학을 하는 삶. 니체도 20대 젊은 나이에는 이 삶에 기대를 걸고 있었을까? 철학을 하는 그의 온 삶에는 사유 뒤에 찾아오는 발작, 과업을 완성시키는 과정에서 더 깊어지는 시대와의 불화가 있었다. 어디에도 좀 더 나아지거나 좀 더 조화로워지는 모습은 없다. 30대 이후 그가 본격적으로 자유정신으로서의 철학을 하는 중에 쓴 편지글들을 보면, 니체에게는 그런 것들에 대한 욕망이 없어 보인다. 결핍의 비탄에 빠져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는 자신만만한 자기 인식을 분명히 보여준다.


    제 인생의 과업과 거기에서 생기는 끝없는 요구들을 조금이라도 꿰뚫어 보는 사람은 저를 가장 행복한 사람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가장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 이제부터는 제가 직접 제 몸을 살피는 의사가 될 생각입니다.                                                           

                                                                                -1881년 질스마리아에서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 中

 


  모든 고통과 절망을 극복할 수 있다고, 자신은 최상의 상태라고 하는 니체. 이는 단순히 어머니를 안심시키기 위한 말은 아니었다. 지적 ‧ 도덕적 영역에서의 사유 실험이 아니었다면 자기 존재를 진작에 내던져 버렸을 거라고 했던 질병과 고독의 시기. 니체는 이때를 자기 본성이 원하는 요구들을 알아차리는 배움의 시기, 온갖 증상에 맞서 싸우는 전투의 시기로 만들어낸다.


  그는 무엇을 하면서 배우고 싸웠을까? 하루 여섯 시간에서 여덟 시간에 걸친 걷기, 그리고 걷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건강한 문체로 글을 쓰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병이 완치될 거라는 기대는 갖지 않았다. 니체에게 아프다는 것은 자신의 몸을 ‘느낀다’, ‘알아차린다’는 것에 지나지 않았고, 그 신호를 예민하게 포착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근육을 움직이는 신체 활동이 자신에게 가장 좋다고 생각한 그는 될 수 있는 한 많이 걸었다. 그래서 병이 있었음에도 겉모습은 근육이 거의 군인 같았다고 한다. 또한 위장 장애가 있었기 때문에 자기 몸이 원하는 만큼 음식을 매우 적게 먹었다. 오랜 시간 사유하고 글을 쓰는 것은 두통과 발작, 시력 악화를 더 심하게 만들었지만, 사유 실험의 기쁨 없이 육체만 보존하는 삶은 그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그는 1880년~1882년 사이에 도덕에 대한 전쟁을 개시하는데, 그 책이 바로『아침놀』과 『즐거운 학문』이다. 이 두 책은 현대 독일어가 하나의 새로운 목소리를 냈다고 할 정도로 문체의 정수를 보여준다고 한다.


  『차라투스트라…』의 핵심 사상인 영원회귀 역시 걷다가 잉태한 것이다. 많은 지역을 여행하며 자기 몸에 맞는 풍토를 찾던 니체는 스위스의 질스마리아를 자기 본성에 가장 잘 맞는 곳으로 발견한다. 산과 숲으로 둘러싸인 알프스 산맥의 한 마을, 고원지대의 좋은 공기, 감정적인 흥분을 일으키는 유난한 더위, 이방인이자 여행자로서 완전히 혼자인 시간, 그 시공간을 걸으면서 사유하는 한 사람. 자신의 삶을 온전히 긍정하는 위대한 사상이 찾아오기에 적합한 순간. 1881년 여름이었다.




삶의 찬가, 차라투스트라의 탄생

  니체가 마흔 살이 되던 1883년 2월, 그는 구릉 지대 사이에 끼어 있는 조용한 바닷가 라팔로에 있었다. 더위의 흥분으로 기억되는 질스마리아와 반대로 이곳은 비가 많이 내리는 추운 겨울이었다. 그는 육체적으로 많이 지쳐있었다. 더구나 멈추지 않는 파도소리는 불면을 겪는 그에게 더없는 악조건이었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그는 매일 오전 오후로 산책을 한다. 오전에는 바다를 바라보면서 소나무 길을, 오후에는 상태가 좋을 때마다 라팔로만 전체를. 그리고 이 산책길에서 드디어 『차라투스트라…』1부 전체가 떠오른다.


  시대의 모든 허위성을 강렬하게 비추는 고도의 지성, 온갖 불화 속에서 겪은 감정적 혼란과 갈등, 도저히 잠을 잘 수 없는 몸과 마음의 고통. 니체는 병을 앓는 고독한 철학자였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는 혼란과 질병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자기 삶을 긍정할 수 있는 개념을 스스로 창조해야 했다. 동시대의 그 어느 위대한 철학, 예술에도 자기 자신의 삶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긍정할 수 있는 가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위대한 건강이라는 개념을 삶으로 창조했다. 삶의 근본적인 문제인 사소한 사항들, 즉 영양 섭취, 장소, 풍토, 휴양, 이기심을 선택하는 것에서부터 ‘다시 배우기’ 시작하면서 말이다.


  『차라투스트라…』의 위버멘쉬, 힘-의지, 영원회귀 사상은 니체가 지속적으로 획득한 건강과 나란히 함께 걷는 철학이다. 이 책을 쓰는 니체의 모든 과정은 이성으로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세상을 만들고 있다고 확신한 19세기 유럽인들과 지금의 우리에게 커다란 질문으로 다가온다. 인류의 위대함, 발전, 미래, 성공, 진리, 돈……. 이 모든 ‘이상’이라는 빛을 따라가느라 정작 자기 삶의 근본적인 문제를 비춰보는 자신의 빛은 모두 꺼버린 것은 아닌가? 시대의 삶에 적응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하며 막상 자기 삶의 사소한 사항들은 경멸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당신은 자기 삶의 모든 사소함을 영원히 긍정하는 ‘운명애’를 노래할 수 있는가? 니체의 책이자 벗 차라투스트라. 그는 우리가 고통을 전도시키고 새로운 삶의 가치를 창조하도록 투쟁의 힘을 끊임없이 북돋는 질문을 던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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