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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목성- 여행기] 지금 여기가 나의 전부
 글쓴이 : 감이당 | 작성일 : 19-11-24 10:30
조회 : 110  


 

지금 여기가 나의 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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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 대중지성 김은순


어제와 다른 오늘

올해 Tg스쿨, 목성(목요일대중지성)의 슬로건은 탐사()GO! 탐방()GO!’이다. 1학기부터 4학기까지, 1년 동안 중국 한()나라 역사책인한서(漢書)를 읽, 한나라의 역사 현장을 답사하는 것이 목성의 미션이다.한서는 전한 고조(前漢 高祖)시대부터 광무제(光武帝) 즉위 이전(206~서기 25)까지의 약 200여 년의 역사를 서술한 책이다. 우리는 탐사탐방을 위해 번역된 열권의한서를 한 권 한 권 읽어나갔다. 그리고 3학기가 마무리될 즈음한서속 무대인 서안으로의 탐방 나기로 했. 나는 이 긴 여로에 기꺼이 몸을 실었다.


사실 나는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 더 솔직하게는 여행에 재미를 느끼지 못한 지 오래되었. 아무리 화려하고 자극적인 것을 경험해봐도 잠깐의 기분전환으로 그칠 뿐이었다. 또한 명승지에 가더라도 대충 훑어보고 마니 다녔던 장소는 곧 잊히고 말았. 단순하게 따라다니거나, 보고 먹거나, 친구나 가족이 만나 같이 지내는 시간이 길어진 것에 지나지 않을 뿐인 여행. 돌아온 후, 피로만 쌓이고 여운은 찰나에 불과한 여행. 어느 순간부터 이런 여행을 반복하고 싶지가 않. 한동안 내게 여행은 크게 관심이 없는 영역이었.


그런데 이번 여행은 시작 전부터 이미 그 여행 속으로 들어간 것 같은 생동감이 있었다. 우선, 설렜다.한서사기를 읽으며 그려봤던 한고조(漢高祖) ‘유방’, ‘여태후’, ‘항우’, ‘무제등 그 이름만으로도 울림이 있는 인물들의 공간이 궁금했다. 그리고 사마천의 묘는 벌써부터 마음 절절할 준비 되어 있었다.한서에서 붕우 임안(任安)에게 보낸 사마천의 편지를 읽으며, 그가 궁형을 선택하고 겁쟁이처럼 구차하게살아야 하는 이유가 아프게 공감되어 한동안 책장을 넘기지 못했던 감정도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1학기부터 3학기 내리한서 읽고, 발제하고, 암송했던 그리고 먹고 마시는 뒤풀이 자리에서조차 한나라 역사에 대해 열띠게 토론했던, 그 긴 시간들이 만들어준 정() 있어서인지, 여행에 대한 기대가 나도 모르게 스멀스멀 올라왔다.


여행의 세부 일정이 정해지자 그에 따른 답사지가 결정되었다. 우리는 여행 장소를 나누고 각자 맡은 장소에서 그동안 공부했던 내용 연결시켜 미니 강의를 하기로 했다. 나는 무제 시대 흉노정벌의 대장군인 위청(衛靑)’곽거병(霍去病)’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했. 그런데 뜻밖의 수! 위청과 곽거병에 대한 인물 검색에서 시작된 된 일이 거미줄처럼 다른 인물과 사건으로 이어졌다. 이 재미에 한동안 책과 인터넷 검색 그리고 유튜브를 오갔다. 그 과정에서 그동안 알고 있었던 인물들에 대한 새로운 시선이 생겼다. 그리고 함께 여행할 도반들에게 내가 맡은 부분을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잘 할지를 꺼운 마음으로 고민하게 되었다. 또한 도반들은 자신들이 맡은 부분을 어떻게 이야기해줄지 남다른 기대가 생겼다.


여행 참가자는 모두 21명이었다. 목성 학인 열 명과 학인 아이들 예진과 준후, 화요대중지성 학인정복, 현숙, 지원샘, <몸과 우주> 세미나에서 공부하는 정호샘, 담임 길진숙선생님과 선생님의 막내딸 승주, 부담임 박장금 선생님과 중국에 거주하는 선생님 막내 동생 선영그리고 연구실에서 아는 사람은 다 아는 현지 여행 코디 쭌 언니! 7살의 유치원생과 초등학교 2학년의 어린이부터 30, 40, 50, 60대까지 여러 세대를 아울렀다. 그야말로 버라이어티 했다. 이들 길 위의 친구들은 내게 반가우면서도 낯선 미지의 존재들이었다.


이전에는 함께 여행하는 이들에게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한 사람 한 사람 마음이 쓰였다. 뜻하지 않게 목성의 반장이 되고 보니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걱정과 책임감 같은 것이 생겼나 보. 우선 7, 9살 어린 친구들이 동행한다니 마음에 안 들면 황소고집을 부려 어른들을 심란하게 했던 조카들이 생각나 염려가 되었. 그리고 강의실에서는 익숙한 학인들이지만 낯선 여행지에서는 저마다의 개성으로 불편한 분위기를 만들면 어쩌나 하는 괜한 걱정까지 생겼.


반장이란 감투가 이렇게 막중한 것이었나? 여행을 함께 하는 이들을 염려하는 나! 낯설지만 기분 좋은 발견이었다. 하지만 이내 이런저런 걱정일랑 접기로 했. 책으로든 서로에게든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함께하는 여행이니만큼, 설령 어떤 갈등이 생기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그 또한 하나의 배움이 되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담임, 부담임 선생님 두 분이 함께 하지 않는가. 여행이 어떠하든 나는 그 상황에서 최대한 사람들이 편안할 수 있게 대응하면 될 것 같았다.


이번 여행은 분명히, 과거의 여행들과는 달랐다. 여행에 임하는 나의 자세는 매우 능동적이었고 생기가 넘쳤다. 현지에서 진행될 수업 교재, 학인들과 나눠 먹을 간식, 또 누가 될지는 모르지만 룸메이트와 소소한 얘기를 나누며 마실 맥주 안주도 신나서 챙겨 넣었다. 그리고 여행 동안 함께하는 사람들이 행복하 무탈하기를 바라는 기도를 난생처음 올렸다. 2019919, 인천공항으로 출발하는 발걸음이 가볍다. 공항에서 아는 얼굴들을 보자 오랜만에 본 듯 반가웠다. 특히 처음 만나는 예진이와 승주가 반가웠다. 내가 사람들을 이렇게 좋아했었나?

 


무덤 앞에서 삶을 보다

시안공항에 도착했다.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던 선영씨와 쭌 언니가 환하게 웃으며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전세버스를 타고 처음 이동한 장소는 무제 시대 흉노정벌의 명장군인 위청곽거병의 무덤이었다. 드디어 책으로만 만나던, 이천여 년 전 한나라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이다.


나는 무덤의 크기에 놀랐다. 무덤은 나무가 빼곡하게 자리하고 있어 작은 산처럼 보였다. 위청은 흉노와의 싸움에서 최초의 승리를 거둔 인물이다. 비록 작은 승리였으나 거침이 없었던 흉노의 기세를 꺾는 전환점이 되었다. 곽거병은 흉노정벌에 나간 칠년 동안 비상식적이라고 표현할 만큼 큰 공을 세웠다. 흉노 정벌을 하다가 스물네 살에 불꽃처럼 생을 마감한다. 곽거병 묘 입구에 서 있실물크기의 마답흉노 (馬踏匈奴, 말이 흉노를 밟고 있는) 석상이 눈에 띄었. 용맹하고 거침없이 흉노를 제압했던 장군 곽거병의 기상에 걸맞은 조형물이었다. 무제는 위청과 곽거병을 지극히 아꼈기에 그들의 죽음을 애통해하며 자신의 능에서 가까운 거리에 그들의 묘를 조성했다고 한다. 이천여 년이 흐른 지금도 무제와 두 장군의 마음은 통하고 있는 것 같았다.


다음으로 우리가 도착한 곳은 한나라 역사 중 가장 왕성했던 시대를 이끈 무제의 능이었다. 무제가 누구던가.한서에서 반고(班固) 말했듯이 무제는 웅재(雄材)와 대략(大略)”을 갖춘 황제로, 장장 55(기원전 141-기원전 87)의 재위기간 동안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업적을 남긴 황제이다. 나는 학인들 사이에서 '무제파'로 불릴 만큼, 그의 큰 스케일과 타고난 능력 그리고 담대한 기질을 좋아했다. 학인들이, 지나친 사치와 과도한 봉선의식과 계속되는 전쟁 등으로 백성을 힘들게 한 무제를 지탄때에도, 나는 태양처럼 빛나는 업적을 수행한 무제를 옹호하는 데 앞장섰. 나는 자타공인 못 말리는 무파’!


무제에 대한 호감 때문인지, 명당이라 그랬는지 이상하게 무제의 능은 생기가 감돌면서도 차분하고 편안했. 더구나 관람하는 사람이라고는 우리 일행이 전부였던지라 더할 나위 없이 고즈넉했다. 여기에 날씨도 한몫했다. 가느다란 비가 살짝 내리다 그쳤는데, 그 부드러우면서도 묵직한 공기로 인해 신묘한 기운마저 느껴. 그 기운에 이끌려 무덤 안쪽까지 가보고 싶었지만 출입금지! 어쩔 수 없이 맨 앞쪽에 세워져 있는 비석에서 짧은 기도를 하고 되돌아 나왔. 무덤 저 너머 무제 시대의 여운을 느끼고 싶었는데, 못내 아쉽다.


태산 같은 무덤을 바라보며 문득 무제의 노년기가 떠올랐다. 내가한서를 읽으면서 무제에게 호감을 가진 이유는 사방으로 영토를 확장하고 나라의 기틀을 재정립하며 천하를 호령하던 그 담대하고 당당한 기상 때문이었다. 그런데 막상 무덤 앞에 서자 쇠약해지고 병들었던 시기의 무제에 더 마음이 갔다. 무제죽기 전 무엇이 가장 아쉬웠을까? 만일, 무제가 살아서 돌아온다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을까?


엄청난 공적과 성과에도 불구하고 인의 장막에 가려 자식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아비 그리고 그 어리석음에 대한 회한. 영토 확장과 흉노 정벌에의 몰입으로 한나라 백성의 절반을 잃고 국고를 텅 비게 만든 욕심 사나운 정복자. 그럼에도 죽기 직전 흉노와의 전쟁을 멈추었던 결단력. 한나라를 지키기 위해 대신들에게 어린 후계자의 섭정을 부탁한 충심의 통치자. 무제는 탐욕스럽고 어리석고 실수도 많았지만, 죽기 직전 뉘우치고 멈추었으며 사람을 알아보았다.


사람은 태어나 죽기 전까지 매 순간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이 선택들이 그 사람의 삶을 이룬다. 그래서 죽는 순간까지 제대로 살려면 어리석음에 빠져있어도 안되고 자포자기해서도 안 된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고 이번 같은 여행을 하는 이유도 살아가면서 좀 더 차이나는 이로운 선택을 하기 위함일 것이다.


죽음에 대한 생각은 이후에 가본 한고조 유방, 여태후, 경제 그리고 사마천 묘에서도 이어졌다. 그리고 나의 문제로 질문이 이어졌다. 지금 나는 어떤 때에 놓여있는지, 무엇을 놓치며 살고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

 


오직 모를 뿐, 그저 살아갈 뿐!

올해 들어 부쩍 노년과 죽음에 대생각을 자주하게 되었다. 처음으로 진지하게 노년과 죽음을 고민했던 것이다. 그 이유는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을 자주 보게 된 때문이기도 하지만, 크게 한몫했던 부분은 작년부터 약해진 건강 때문이다. 당장 수술을 받아야 할 만큼의 큰 병은 아니었지만, 신체 여러 곳에서 보내는 이상 신호는 당황스고 두려웠다. 이렇게 아프나이 들어간다는 현실함께 죽는 일 또한 가깝게 다가왔다. 늙음도 죽음도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노년과 죽음에 대한 고민이 남다른 즈음 참으로 절묘하게 여러 무덤을 답사했다. 이번 여행에서 유난히 무덤을 많이 다녔던 것이다.한서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흔적을 뒤쫓다보니 온전히 전해지는 유적지가 대부분 무덤이었기 때문이다. 무덤에서 뭘 그리 볼게 있으랴 싶었지만, 진시황제 뿐만 아니라 한고조 유방, 여태후, 한경제, 한무제, 곽거병, 위청, 사마천에 이르기까지 그 기세와 풍모가 남달랐던 인물들의 무덤 앞에 서니 오히려 그들의 삶이 먼저 떠올랐다. 죽음이 무서운 게 아니라 어떻게 살다 죽는지가 더 두려운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겨울과 같은 죽음의 자리에서 삶에 대한 의욕이 솟아났다. 늙어도 병들어도 죽는 순간까지도 우리는 살아야 한다. 그러니 매순간을 잘 살아내는 것만이 삶과 죽음에 대한 예의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번 여행을 통해 잘 산다는 것에 대하여 그리고 일상이 도()라는 말에 대하여 조금 더 깊이해하게 된 것 같다. 나는 여행을 간다라는 것만 알뿐, 그 여행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알 수가 없었다. 화성 지원 샘이 룸메이트가 될지 알지 못했으며, 지원샘이 룸메이트가 된 덕에 화성에서 공부하는 정복샘, 현숙샘, 장금샘과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지레 걱정했던 어린 예진이와 준후가 때를 쓰기는커녕 오히려 약방의 감초처럼 여행 내내 웃음과 활기를 지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 또한 멀쩡하던 케이블카가 고장 나서 화산에 못 가게 될지도 몰랐지만 또 그 때문에 일정상 빡빡했던 여정을 편안하고 여유롭게 즐기게 될 줄도 예상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식사 때 우연히 마신 우연주(友緣酒)’라는 술에 반해서 옥주샘과 그 술을 사겠다고 숙소 근처를 헤매고 다닐지 꿈에도 몰랐고, 끝내 술은 못 샀지만 길에서 길샘 부녀와 장금샘 자매를 만나 회족거리를 누비며 여행 마지막 날 밤의 추억을 쌓을지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이 예측불허의 순간들이, 그리고 이 예상 밖의 흐름들이 즐겁고 소중했다. 물론 이 순간들은 내 발끝으로부터 일어나는 지극히 소소하고 일상적인 것들이었다. 이 모든 것이 여행이었다. 별도의 여행이 있는 게 아니라 길 위에 서는 그 순간 그 자리가 여행의 전부였던 것이다. 이 자잘하고 새로운 상황이 새로운 관계를 만들고 새로운 나를 만들었다.


삶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저 살아간다라는 것만 알 수 있을 뿐, 삶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알 수 없것이다. 여행이 그랬듯 삶 또한 시작부터 끝까지 무수한 인연들이 우연히 만들어내들의 연속일 것이다. 따라서 삶에 대해서도 미리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노년은 노년의 상황에 맞게 살고, 병들면 병듦에 대응하며 살면 될 것이다. 그 후의 결과 또한 알 수 없는 것, 그 또한 새롭게 흘러가는 일상이리니, 겸허한 마음으로 새로운 길 위를 유연하고 지극히 정성스런 마음으로 걸어가면 그뿐. 삶 너머 또 다른 무엇이 있는 게 아니라, 지금, 여기, 이 자리가 전부일 것이다. 그 밖의 것은 모두 기우에 불과할 것이다.


이번 여행을 계기로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에 대한 마음이 달라진 것 같다. 지금, 여기가 전부인 이곳에서 매 순간 한마음, 한마음 잘 내며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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