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서는 affection의 번역어인 정념을 내 신체 내부에서 감정과 감각의 형태로 일어나는 모든 상태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라고 한다(36쪽 역주1). 솔직히 이 정념이 통상의 감정, 이를테면 동아시아에서의 칠정(희노애락애오욕)과 같은 걸 포함하는지조차 헷갈린다.
어쨌든 문외한에게는 교묘해 보이기까지 하지만 너무나 짧았으므로 생략하고 넘어간 정념에 대해 좀 더 풍부한 설명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많다. 예를 들어보자. 책에서는 고통 이외의 다른 정념들도 고통과 마찬가지로 부분과 전체의 괴리에서 나온다는 건가?(아니다.) 내가 뱀을 보고 느끼는 원초적인 두려움은 고통과 같은 방식으로 설명되나?(아니다.) 전율은 보통 온몸으로 짜릿하게 느껴진다고 생각되는데, 그렇다면 내 신체의 부분이 아니라 전체가 느끼는 정념이라고 하면 틀린 것인가?(틀리지 않다.) 무익한 국부적 노력이라는 고통의 기원에서 사회 내 소수자의 비애를 떠올린다면 지나친 비약이 아닐까?(그런 것 같다.) 더 나가면 정념은 주관성의 요소라고 하는데, 의식적 지각도 사실은 주관성의 원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아닐 것 같다.) 정념과 기억이 주관적 요소의 2가지 원천이라면 양자 간에 주관적 요소로서의 특질 상 차이는 없는가?(있을 것 같다.) 책에서 내세운 이 정도의 개념 구성만으로 인간과 다른 생명체 간에 정도의 차이만 있다는 사고방식을 확립한 획기적 사상이라고 할 수 있는가?(찬반이 다 가능한 것 같다.) 이런 궁금증들이 책 속에, 강독 중에 해결된 건데 나만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각으로부터 정념과 기억을 다 설명하려는 베르그손의 원대한 포부 속에 방치된 부분, 또는 지각이란 신체에 유용한 행동하고만 관계된다는 강한 가정이 만들어낸 빈틈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불순물(=정념)’이 제거해야 할 요소가 아니라 개체의 본성의 차이를 낳는 출발점이라면 이를 훨씬 더 자세히 살펴보아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