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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2학기 글쓰기 - 곽정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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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비행기 작성일26-06-27 10:14 조회6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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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감이당 명동 스쿨 2학기 과제/2026.06.28 /곽정양

버저비터


배운 사주 명리학, 동의보감 나에게 적용하기


1960년 엄마 아버지 결혼 깡촌 보릿고개 그 시절은, 강 추위에 대문이 없어 짚으로 엮은 마당에 까는 멍석을 대문으로 사용하셨다 하니...두 자식 굶겨 죽일 수 없다며 아버지는 월남전에 돈 벌러 가시고, 내가 3~4살 무렵 엄마가 아프셔서 며칠째 일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 이러다 ‘’내가 죽겠구나“ 잠깐 의식이 돌아왔을 때 절 부르시며 “외할머니를 모셔 와야 엄마가 산 다고” 하시곤 정신을 잃으셨는데, 산을 넘고 논두렁 밭두렁 지나 외삼촌 집이 상당한 거리. 할머니를 모셔 와서 내가 살았다고 얘기하시곤 했는데 정작 나는 기억조차 없다. 병석에서 일어나시고 할머니께 오빠와 나를 맡기시고 홀트 고아원에 취직하셨다고 한다. 아버지가 월남전에서 돌아오시면서 사 오신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예쁘던 인형과 입속에서 살살 녹던 사탕만 기억될 뿐, 힘들었던 기억은 나에게 전혀 없다. 돌아오신 아버지는 종잣돈으로 큰 트럭을 사시고 어마 무시한 나무들을 수송하는 일을 하셨다.  권위적이고, 말이 없으시고, 생활력이 강한 아버지를 오빠는 무서워했지만 나는 달랐다. 일간 정화, 일지가 유금, 월간이 경금 월지가 진토 유진합-> 금, 경진(괴강살) 태어날 때 하늘에 괴강이라는 별이 비쳐서 붙어진 이름 모든 사람을 제압하는 살)

 

우리 동네는 80% 이상 농사를 짓던 시절 나무를 운반하시는 아버지와 직장에 다니시는 어머니, 시대를 앞서가신 맞벌이 부부. 살림살이는 어려움이 없어졌고 먹을 것이 늘 풍족했으며 대문은 항상 열려 있었고, 오빠 친구들과 내 친구들은 우리 집이 아지트였다.나는 전혀 공부에는 관심이 없었고 책 읽는 것만 좋아했던 하지만 친구들의 대장 노릇을 했다. 학교 시험도 전체 1등 하는 단짝 친구가 시험 보기 전 날 우리 집에 와서 자고 족집게 과외를 열성적으로 해준 결과 반에서 10등 안에 들었다. 부모님께 무한 사랑을 받던 내가 중학교에 들어가서 아버지에게 맞서다. 아버지는 삶의 힘듦과 화를 아무 잘못 없는 엄마에게 푸시곤 했는데 (손찌검) “드릴 말씀이 있다고 앞으로 이유 없이 엄마를 때리시면 제가 가만히 있지 않겠노라고“아버지는 처음으로 나를 때리셨다. 말없이 맞았고, 대항하지 않았고, 잘못했다고 빌지 않았다. 고등학교 졸업 후 나는 대학에 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아버지는 사주 명리학을 모르셨지만 딸의 성향을 아신듯 장사를 해 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물론 종잣돈과 차를 사주신다고, 면허증을 따기 위해 아버지에게 운전을 배웠다. 일산에서 꽃 가게 1호점 아버지 말씀은 적중했고 2년이 되지 않아 자리를 잡았다. (비견 10, 겁재 10, 상관 30, 편재 20, 정재 15, 정관 15, 나의 비견을 돕는 편인 10)


그즈음에 무리수를 둔 아버지의 사업 확장, 인사 사고로 사업 실패, 엄마의 갑작스러운 죽음, 24살 때 일이다. 약해지신 아버지, 대학생 오빠, 할머니, 엄마가 하시던 집안 살림, 집에 기둥 역할을 하며 결혼하고 두 딸 낳고, 아버지 재혼, 일상의 삶은 이어지고 ~18년 앞만 보고 달렸다. 가속도가 붙고, 내 몸에 이상 신호 계속 보내는 데 무시, 병원에 가면 감기라고 약 처방, 낫지 않는다고 불평, 더 세게 약 처방, 밀려 들어오는 일, 욕심에 욕심 결과는 쓰러지고 나서야 멈췄다. 천간에 정신 충 (금이 가리키는 신체 부위인 폐와 기관지 대장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지지에 사해 충 (떨어져 있어 조금 약할 수 있으나 정신의 분열 억울함 방황에 의미가 있다.) 잘나가던 사업장도 건강이 무너지니 가치가 없었다. 2년 동안 잠만 잤다, 정신적으로 힘들면 걸어야 한다는 말에 집 뒷동산 1년 걷기 후, 일주일에 1번 가는 북한산 산행. 출발 버스 지점엔 일등으로 도착, 하산할 땐 늘 꼴등, 하지만 포기란 없었다. 일 년을 100% 출석, 산을 오를 땐 다시는 안 오겠다고 다짐했고, 금요일이면 어김없이 등산 가방을 챙기던 나. 나와의 약속을 지켰다.  “땀 흘리지 않고는 어떤 일이든 이룰 수 없다.”


나의 용신은 인성

목생화

산이 나를 살렸다

나의 산행은 28년째 이어지고 있다.


1. 왜 일을 하는가?

2. 삶에 가장 큰 이익은 무엇인가?

3. 삶에 가장 큰 재산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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