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차 베르크손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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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은설 작성일24-07-19 16:16 조회74회 댓글7건본문
101쪽 '순수한 계기 그 자체는 시간 속에서 그리고 오직 시간 속에서만 지각된다는 것은 가능한 일이지만, 어떤 합계에 도달하는 계기, 즉 더하기는 그렇지 않다.'
여기서 순수한 계기가 의미하는게 수를 세는거 자체를 말하는 걸까요? 그리고 왜 이것을 순수하다고 표현하는 걸까요?
댓글목록
자하님의 댓글
자하 작성일우리는 질을 높다 낮다라고 이야기하는데, 그 질이 이러면 결국 측정되고 수치화 하는 것이 아닙니까? 베르그송의 그 질이 무엇인지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싶습니다.
이상준님의 댓글
이상준 작성일
p.100 ㅡ '그런데 그와 같은 병치가 이루어지는 것은 공간 위에서이지, 순수 지속 속에서가 아니다. 게다가 물질적 대상들을 세는 모든 조작은 그 대상들의 동시적인 표상을 내포하며, 그 사실 자체로 그것들을 공간 속에 놓는 것임에 쉽게 동의할 것이다.'
=> 이러한 앙리 베르그손의 글은 그의 논리적 흐름을 따라가면 익히 맞는 것으로 보이나, 양을 셀 때 우리가 과연 양적으로만 양들을 판단하는지 헷갈리게 느껴집니다. 우리가 '숫자'로 양들을 추상화하여 오직 기계적으로 대한다면 맞는 말일 것입니다. 하지만 양들을 세고나서 어떤 특이한 특징을 지니고 있고 따로 이름이 있는 양에 대해 어떠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양들을 다루는 양치기는 그에 대해 다른 양들과 구별하는 어떠한 지점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지점을 말할 수 없는 경우도 있을테지만 있는 경우도 분명 충분한 개연성이 있을 정도로 많다는 걸 우리는 직관적으로 받아들입니다.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앙리 베르그손이 말하는 우리의 '양적인 사고방식'이 참이라고 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돌피니님의 댓글
돌피니 작성일103쪽, 수는 그 자체로 여럿이지만 지성이 그것을 파악하는 단순한 행위로부터 그 단일성을 빌려온다...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모든 단일성은 정신의 단순한 행위의 단일성이며, 그러한 행위는 단일화하는데서 성립하므로.. 란 부분이 있습니다. 여기서 단일성은 무엇일까요? 글자처럼 약속되어진 숫자를 의미하는 것인가요?
연주님의 댓글
연주 작성일p.112 주석 27) 종소리가 지속적으로 들릴 때, 질적인 느낌을 받아들여 음악으로 들을 수도 있고, 종 소리를 세려면 질적인 요소를 모두 빼야 한다고 합니다. 종소리가 동질적인 것으로서 동일한 공간에 공존 할 때, 비로소 셀 수 있다고 하는데, 누군가(천재?)는 종소리를 음악으로 즐기면서도 그 음의 수를 셀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절대 음감을 가진 천재의 한 번 들은 멜로디를 그대로 구현하는 걸 보았는데, 악보로 표현하자면 음표의 위치와 동시에 음표의 수도 세어야 가능한 게 아닌가 해서요. 여기서 이 멜로디에서 음의 변화, 즉 각각의 음표는 질적으로 다른 색조를 띠어서 셀 수 없으므로 멜로디는 그대로 한 덩어리일 뿐인 걸까요? 그렇다면 이 멜로디는 몇 개의 음으로 이루어졌다는 말은 틀린 말일까요?
반야수님의 댓글
반야수 작성일98쪽의 ‘단일성은 합계의 단일성이며’라고 하고…단일성과 다수성의 개념을 깊이 다루지 말고… 합계의 단일성이면? 다수성 또한 합계의 다수성이라는 개념으로 두고 이해를 해나가야하나요?
heido님의 댓글
heido 작성일113쪽의 물질의 불가입성에 대해 말할 때 두 종류의 다수성(물질적 대상들의 다수성과 의식적 사실들의 다수성) 사이에 어떤 구별을 하고 있고, 주석31에서는 이것이 결국 공간의 특성이기 때문에 심리적 상태들의 상호침투성에 대립된다고 한다. 그런데 뒤에서는 불가입성이 실제로 물질의 질이며 그것이 감각에 의해 알려지는 것이라면, ...서로의 속으로 녹아드는 두 물체를 생각하는 데 더 큰 어려움을 겪는지 이해되지 않는다고 하면 이는 상호 침투성을 말하는 것 같은데 모순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어떻게 해석해야할까요?
길상님의 댓글
길상 작성일p361 이 책 제목의 의미를 해석하는 부분에서 의식 그 자체인 우리자신을 "..... 외부세계로 부터 빌려온 형식과 틀, 특히 공간적 사유방식으로 볼 수 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그러한 공간적 사유방식을 털어내어 내게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그대로의 의식을 파악하자...."를 불교에서 말하는 "상"을 짓지 말고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라는 가르침과 유사하다고 거칠게 이해해도 될까요? 그렇지만 이러한 이해의 시도 역시 다른 형식과 틀을 가져오는 것에 지나지 않은 것일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