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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불교와 글쓰기 2학기 2주차 수업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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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일음일양 작성일26-05-23 08:38 조회101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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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교시 : 붓다의 연기법과 인공지능, 2장 불교의 연기설>

보시제일 정애쌤은 불교 이전의 선형 인과율에 대해 설명해주셨습니다.

일단 일필휘지로 시원하게 인도의 지도를 그리신 후 고대 불교의 서쪽은 바라문교가 성행(베다, 우파티샤드)하였고, 동쪽은 산자야, 니간타 등의 사문의 종교적 행태 등에 대해 한 눈에 알게 되었습니다.

베다의 특징은 결과는 원인안에 선재한다는 선형적 인과율입니다. 참된 것은 불변하는 것, 즉 절대적 원인과 결과가 되는 브라흐만의 작용으로 보기 때문에 절대적인 것의 일방적인 힘의 작동이 선형적 인과율로 형성됩니다. 이것은 이후 인도 사상에 주류를 이루게 됩니다.

제가 인상깊은 포인트는 정애쌤은 렉처를 준비하시면서 모든 행은 업이라는 측면에서, 전생에 내가 좋은 행을 쌓았기 때문에 내가 좋은 공부를 하게 되었다는 것을 느꼈다고 하셨습니다. 이에 대하여 그것은 원인과 결과가 일방적인 선형적 인과론이 아니냐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다양한 의견이 나왔습니다. 종합해보면, 전생을 포함한 우리의 모든 업은 씨앗이다. 그러나 씨앗은 조건이 맞아야 열매를 맺듯이 전생의 업 또한 우리의 조건이 맞아야 지금의 삶에 나타나는 열매를 맺을 수 있다. 그래서 우리에게 있는 공부 씨앗이 열매를 맺어 불교를 공부하는 행운을 누리고 있다라는 결론으로 마무리했습니다.

 

 이어서, 설명제일 은선쌤은 연기의 언어적 해석으로 시작하셨습니다.

연기는 빠알리어로 빠팃짜 쌈우빠다(petica samuppada, 緣起)함께 나타남을 의미합니다. 한자를 보면 연하여 일어남을 말하며, 의존적 상호발생으로 빈번히 번역됩니다. 연기는 무상과 밀접한데 조그마한 쇠똥만큼이라도 불변하는 것이 있으면 나는 가르치지 못했을 것이다라는 부처님의 말씀처럼 모든 변화속에 있다는 세계관에 기반합니다.

저자는 연기는 변화 자체의 패턴이라고 했는데 질서와 무상이 함께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한 설명은 제자 깟싸빠와의 대화에서 알 수 있습니다. 4(四句) 대화법입니다.

4구란 이것은 A이면서 A가 아니고, A이면서 A가 아닌것이고(양자 긍정), AA가 아닌 것도 아닌(양자 부정)을 뜻합니다. 4구에 맞춰 이 부분의 불경을 읽어보았습니다.

  상윳따 니까야 s.12.17

: 괴로움은 자기 자신이 지은 것인가요? A

: 그렇지 않다오

: 괴로움은 다른 사람이 지은 것인가요? notA

: 그렇지 않다오

: 자신이 지은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이 지은 것이 아니라면 우연인가요?

: 그렇지 않다오

: 괴로움이 없다는 건가요?

: 그렇지 않다오

(여기까지 읽으면 4구는 알겠는데, 의미는 미로속으로 빠져든다. 나와 같은 마음으로 까싸바가 묻는다.)

: 붓다는 괴로움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나요?

: 나는 괴로움을 알고 보고 있다오

: 괴로움을 일려주고, 보여주십시오..

: ‘그 사람이 지어서 그사람이 겪는다라는 것은 처음부터 있었던 사람에게 자기 자신이 지은 괴로움이 있다는 것으로 이것은 상주론에 귀착한다. 다른 사람이 지어서 다른 람이 겪는다라는 것은 단말론에 귀착한다오.

 

주란샘은 상주론 즉, 원인이 있어 결과가 있는 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결정론에 해당하고, 단말론은 우연론을 의미한다로 추가 설명하셨습니다. 붓다는 자신이 결정론도 우연론도 아닌 중간에서 법을 설하신다고 하신다. 이 중도의 길이 연기 즉 함께 일어남을 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변화의 원인이자 결과는 함께 나타남, 상호 의존적 발생인 연기, 오직 연기뿐입니다.

사실 불교의 용어는 돌고도는 회전문 느낌이 있습니다. 인간에게 꼭 필요한 산속의 나무와 같습니다. 이름은 있지만 우리가 잘 알지 못합니다. 나무 이름이야 몰라도 숨을 쉬는데 지장이 없지만, 불교를 공부하면서 비슷한 개념을 퉁치고 넘어간다면, 붓다는 절대적 신이 되고, 불교는 종교에 머물고 맙니다. 붓다가 딱 싫어하시는 지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붓다의 일생을 통해서, 인공지능이라는 최첨단 과학을 통해서 불교의 용어들을 계속 자기만의 해석과 실험을 해 나가야 한다고 주란샘의 설명하셨습니다

 

<2교시 : 쌍윳따니까야 관련 글쓰기>

논증제일 유진샘은 <나의 세계관 변천>에 관한 흐름을 쓰셨습니다. 모태 신앙인이지만 만약 하나님이 절대 원인이라면, 선악과를 왜 따 먹게 두었냐라는 질문 등이 신앙의 모숩들이 젊은 시절 샘을 괴롭혔다고 합니다. 그래서 스피노자와 우파니샤드등을 찾아서 공부하였답니다. 그 이유에 저는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단지 살기 위해서라고 담박하게 말합니다.

살기 위해 의식주 외에 돈과 취미, 여행, 예술 등이 추가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살기 위해 철학이 필요하다는 분은 사실 처음 만났습니다. 그 말을 하는 유진쌤에 얼굴이 빛나며 어찌나 멋지던지...아무튼, 그나마 스피노자와 우파니샤드로 숨을 쉬기 시작했는데, 마침내 붓다를 만나 인간의 번뇌와 우주의 원리에 대하여 세세하고 깊이있게 탐구하여 해탈할 수 있는 방법까지 알려준다. (중략) 붓다가 깨달은 직후 포기하지 않고 알려주고자 했던, 미묘하고, 심오하고, 보기 어려운 미세한 진리에 털끝만큼 닿았을 뿐인데 어쩐지 상쾌하고 마음이 고요하고 편안해 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편유진, 나의 세계관 변천 에세이 2>라고 하셨습니다.

이 부분에서 1교시에 정애쌤이 말씀하신 연기가 떠올랐습니다.

유진쌤은 청춘 시절부터 인간답게 숨쉬고 살기 위한 지표를 찾아다니는 조건을 형성하고 계셨습니다. 그랬기에 같은 책을 읽고 같은 것을 공부하여도 샘의 공부는 벌써 행동과 마음을 움직이게 되는 것입니다. 입이 쩍 벌려지는 광경을 현장 직관했습니다. 저의 도반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고 사랑스럽습니다.

 

 마지막으로 감동제일 민서가 <마라에게서 희망을 보다>라는 주제로 발표했습니다. 저는 마라경을 읽으면서 마라가 청정하고 착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나온다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선악과를 따먹기 전에 아담은 선한 마음이었습니다. 그 선한 마음에만 마라가 찾아옵니다. 그런데, 불경에서 마라는 알아차리면 울며불며 떠납니다.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선한 그 상태를 유지하려는 자신의 꼿꼿함이 있어야 합니다. 만약, 아담이 뱀의 속삭임이 마라임을 알아차렸다면? 이런 재미있는 상상을 하며 후기를 마칩니다.

 

 

 

 

 

 

댓글목록

승희웅미미님의 댓글

승희웅미미 작성일

감동제일 민서샘의 후기 잘 읽고 갑니다^^ 보시제일 정애샘, 설명제일 은선샘, 논증제일 유진샘 표현에서 민서샘의 마음이 느껴지네요. 공부&도반에 대한 애정어린 관찰과 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