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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기 5주차(6.11) 후기_박운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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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엇박 작성일26-06-11 20:35 조회95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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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1 5주차 후기>

1. 지현샘은 3주 만에 복귀하셨고, 민서샘은 해외 트레킹 가셨고, 성신샘은 발등을 찧어서 줌으로 참여하고, 승희샘은 토사곽란으로 30분 늦게 합류하였는데, 줌 연결 때문에 1시 6분에 시작하였다. 그 사이에 입구에 쌓인 갖가지 음식으로 다들 배를 불리셨다. 주란샘 책상에도 먹을 것이 한 쟁반 쌓였고...

2.1 <~인공지능> 제6장(과정으로서의 자아)을 렉처하신 부덕샘은 4개의 핵심 문장을 발췌해서 태풍, 째즈, 1000배, 자율주행 자동차 등 여러 사례를 들면서, 나를 드러내지 않는 몰입의 순간에 더 나은 경지를 볼 수 있다고 하면서 실체로서의 자아의 한계를 설명하셨다. ‘자아실현’이라는 통념이 ‘무아경지’와 충돌하는 것은 분명한데, 무아경지가 오래 지속되기는 쉽지 않다면서, 그래도 10분 렉처의 전과 후에 차이를 실감한다는 말씀으로 마무리하셨다.

2.2 제7장을 담당한 현숙샘은 제목 ‘아는 자와 알려지는 것의 연기’라는 듣기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리는 주제를 조용조용히 요약 정리하셨다. 인식론의 영역인데 서양의 일반시스템이론과 초기불교의 양쪽에서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에 대해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어 긴 내용을 적절하게 해설하여, 각자 공부한 내용을 다시 한 번 리마인드시키는 데에 도움을 주셨다.

2.3 렉처가 끝난 뒤 주란샘은 우리들의 질문을 듣고, ‘명색’의 의미, ‘학습’의 정체, ‘명상’이라는 의도적 불일치 활동을 예시하고, 과거 사회초년병 시절의 번역 경험까지 소개해주었다.

ㅇ 다시 책 속으로 들어가 처음부터 끝까지 ‘뭣이 중한지’를 짚었다. 6장에서는 자아가 실체로 있는 게 아니라 과정으로 있으며, 이는 실체가 없다는 것과 다르다,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조차도 여전히 최종적 존재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 <모자무싸>의 예술도 여전히 숨겨진 ‘자아상’을 깔고 있다, 그래서 ‘실현되어야 할 독립된 자아에 대한 환상은 치명적인 망상’이라는 말로 이 장을 요약할 수 있다고 하였다.

ㅇ 그럼, 인식하는 나는 인식되는 대상과 어떤 관계인가에 대한 검토가 7장에서 다루어진다. 초기불교에서는 지각과 인식이 모두 과정으로 보면 고가 사라진다, 앎의 기능인 식(識)은 하나의 온(蘊)일 뿐이다, 나의 앎은 언제나 오염되어 있고, 앎은 다시 나를 다르게 만든다, 앎은 자동사이다, 이런 핵심 개념을 통해 ‘독립된 자아가 외부를 이해’하는 과정에 관한 유물론적 견해와 관념론적 견해를 모두 물리친다. 서양 철학에서 근대가 현대로 넘어가는 장면과 초기불교의 설명이 정확히 겹쳐지는 부분이다. 조금 더 나아가 인지의 한계, 언어의 한계와 관련해 종교와 예술과 칼 융이 소환되기도 하였는데, 마지막은 결국 ‘아는 자가 누구라고 하면 알려진 자가 되는’ 소위 실체화로 전락하며, 이는 붓다가 무한 반복으로 가르친 내용이라는 게 마지막이다. 술, 달리기, 드라마 등이 모두 자아를 벗어나는 소위 엑스터시의 한 방법이고 이렇게 되면 괴로움의 끝에 다다르는 것이지만, 그 가운데 어느 것이 가장 건강한 방식이냐의 질문에서 우리는 초기불교 가르침의 한없는 의의를 발견하게 된다. 줌 속 성신샘이 인용한 <나의 아저씨>에서의 이지안(아이유)의 발언(“달릴 때는 내가 없어져요. 근데, 그게 진짜 나 같아요”)이 줄탁동시의 안성맞춤이었다. 딩동댕 ♪♬♩

3.1 <불경>을 활용한 중간 글쓰기 1번 윤옥샘은 지난 주말 가족과 함께 한 속초~양양 여행에서 3일 내리 황태구이로 식사한 경험을 나누었다. 병원 처방에 가장 잘 맞는 음식인 황태를 여기저기에서 먹으면서 오온과 오온의 싫증[염리]에 대해 발랄하게 웃음을 주었다. 소제목은 달았는데 큰 제목을 빼먹은 것과, 딸의 식사메뉴까지 독재권을 행사한 것에 대해 가볍게 시비를 다툰 것은 재롱이었다고나 할까.

3.2 다음 2번 타자 원주샘의 <오랜 우정 속의 오취온>은 45년 묵은 중학교 친구와의 관계를 소재로 해서 당연하게 지속되던 관계에 잠복되어 있던 온의 흔적을 되짚어본 시간이었다. 비슷한 경험들이 있었던 도반들이 제각기 한마디씩을 보태고, 어떻게 끌고 가는 것이 ‘초기불교 공부한 자’로서의 자세일까를 이리저리 탐색하였다. 당장 친구관계를 끝내자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지냈던 관계를 면밀히 살펴볼 수 있는 능력이 생긴 게 공부의 힘이라는 쪽으로 결론이 나아갔다. 주란샘이 제3자가 개개의 타인간의 관계를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는 것이고, 공부를 한 사람이 이제 ‘새로운 눈’으로 그 관계를 보는 것이 정상적인 경로이며, 과거에는 그렇게 힘들었던 재정립이 이제 거리낌 없이 시도해볼 수 있다는 것이 공부의 효과라고 마무리해주셨다. 스피노자가 생각났다.

3.3 두 편의 에세이에 이어 주란샘이 <불경>의 보충 설명에 나섰다. 각자 궁금한 것을 질문했는데, 도반들이 찬나경(s 22.90), 먹힘경(22.79), 띠싸경(22.84)을 인상적이라고 추천해주었다. 아울러 주란샘은 종자경(22.54), 우다나경(22.55), 탁발경(22.80), 빠릴레야경(22.81), 왁깔리경(22.87), 아싸지경(22.88) 등을 중요하게 다루었다. 10결(5하분결과 5상분결)과 성인의 4단계(예류, 일래, 불환, 아라한/도.과)에 대한 설명이 정밀한 위계를 보여주었다면, 탁발경에서 세존에게 쫓겨난 비구들이 ‘하나둘씩 부끄러워하면서 세존에게 와서’ 반성하는 뜻을 보인 것(단체로 몰려오는 것과의 차이)을 설명할 때는 인간 감정의 섬세한 결을 과시하였다.

4. 조별 모임은 조금 늦게 시작했는데, 너무 어려운 퀴즈에 곤혹을 느끼면서, 최근 공부가 심화되는 모습 또는 에세이 쓰는 방법 등을 나누었다. 간만에 뒤풀이가 없던 까닭에 후기는 빨리 쓸 수 있었는데 반대쪽에는 일말의 아쉬움이 자리 잡고 있다. 어쨌거나, 이제 월드컵이 시작되었고, 당장 내일 우리나라 첫 경기가 열린다! 축구도 즐기고 공부도 즐기고... 세상은 잘 즐기는 것이 행복에는 매우 중요하다. 붓다처럼!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참을 수 없이 설명이 이상한 부분은 고발해주세요.

댓글목록

써니홍님의 댓글

써니홍 작성일

읽으면서 다시 목욜이 시작된 건가? 라는 착각이ㅎㅎ~ 오늘 장자방에 들어갈 때부터 나올 때까지가 너무나 생생히 떠오르네요.
어려운 주제들을 가뿐하고 친절하게 꼼꼼히 정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