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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성 4학기 7주차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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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셍게 작성일24-11-10 21:42 조회4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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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 크리스트>를 조금씩 읽고 있다. 지난 시간에는 예수론을, 이번 시간에는 바울론을 읽었다. 예수와 바울을 어떻게 보는가에 대한 철학적 해석이 꽤 있는 모양이다. 예수와 바울을 동일하게 보는 알랭 바디우, 예수와 바울을 대립시키는 니체 등등. 흥미롭다. 내용을 이야기하다가, 종교가 도덕, 희생, 자비 등 윤리적 비전을 가지고 있다면 철학의 비전은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철학은 실재하는 것을 다룬다. 정확하게 존재하는 것이 전쟁이라면 전쟁을 다루지, 실재하지 않는 평화를 말하지 않는다는 것.

<신의 역사>에서는 근대 종교를 연구한 파스칼, 데카르트를 살펴봤다. 두 인물 모두 ‘근대의 신’을 어떻게 보느냐에 집중해서 볼 수 있겠다. 근대 이전의 신은 직접적이다. 번개를 내리고, 비를 내려주는 (카렌에 의하면) 실용적인 신이다. 그런데, 근대는 이성이 발달하기 시작한 시점이다. 보이지 않는 신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그것이 문제였다.

파스칼은 ‘숨은 신’이라는 말을 했다. 신이 떠나버려서 삶이 비속하고 어두워졌다. 예전에는 종교를 따르고 민족성을 따르면 됐는데, 근대에는 이런 외적 척도가 사라졌다. 내적 척도가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공포에 휩싸이게 된 것이다. 니체의 광인도 여기에서 나왔다. 대낮에 등불을 들고 나타나, “척도가 사라졌다”고, 그래서 세상이 깜깜하다고 외치는 것이다. 신이 죽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만이, 세상이 어두워졌다는 것을 알고 있다. 

파스칼을 해석할 수 있는 주요 문장은 다음과 같다. ‘신을 찾는 자에게 숨은 신이 드러난다’. ‘신를 찾는다는 것은 이미 신을 발견한 것이다’, ‘개인적 복종에 대한 결단이 변화를 가져온다’이다. 우리는 보통 대상을 향해 주체의 의지가 작동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민주화 운동을 살펴보자. 1980년 거리에서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학생, 자영업자 등이 모두 나와 구호를 외치고, 뛰고, 다치고, 쓰러진다. 이 장면을 보고 ‘나도 총을 들고 싸워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만 이 사건은 존재한다. 이 사건에 연루되지 않은 외부자들에게는 내부자들이 모두 폭도가 된다. 연루가 되어야만 5.18 민주화 항쟁이 되는 것이다. 파스칼의 신도 마찬가지다. 내가 신을 믿겠다고 하며 신에게 다가가는 것이 아니다. 이미 복종이 되어 있는 상태에서라야 신에게 다가가게 된다는 것이다. 

데카르트는 신을 증명하려고 했다. 세계가 의식으로 들어왔을 때, 의식과 세계가 일치하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왜? 내가 의식 바깥으로 나가 검토할 수가 없으니까. 이것이 우리의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진리를 증명해야 하는 것이 근대의 인식이다. 

사실, 논증의 과정은 너무 복잡해서 여기에 옮길 수는 없을 것 같다. (헤롱헤롱) 어쨌든 내 안에서 참된 관념을 찾는 것이 신 관념이다. 생각하는 나는 존재하지만, 생각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 신이 생각되면 신은 존재하게 된다. 내가 조합할 수 없는 것이 신 관념이다. 결국 데카르트가 하려는 것은 신 관념을 우리 의식 안에서 찾는다는 말이다. 데카르트는 이렇게 신 관념에 이어 외부세계를 증명해 나갔다. 그런데, 카렌은 <신의 역사>에서 이를 후퇴로 묘사하는 뉘앙스가 있다고 보았다. 근대는 시작되었는데, 근대를 없는 셈 치고, 기술하는 카렌에 대한 답답함을 표하기도 했다. ^^; 

근대를 연 사람이 데카르트이고, 그래서 이후 철학자인 칸트, 스피노자에 이어 현대 철학자들까지도 데카르트라는 토양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한다. 데카르트의 책을 한 권만 읽어야 한다면 <성찰>을 읽어야 한다고 하심. ㅎ

<토머스 머튼의 일기>

토머스 머튼의 일기를 읽으면서, 그의 전환점은 ‘사랑’이 아닌가 생각하게 됐다. 이번에 발제한 부분이 M과의 사랑에 대한 것이었다. 수술을 하러 병원에 들어갔다가 M과 사랑에 빠지고, 그녀와 영적 사랑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 짧은 비밀 연애가 들통이 나서 끝이 나는데, 이별 이후에 부쩍 성숙했다는 느낌이 든다.

그토록 집착하던 은수처에 대한 생각, 침묵과 고독에 대한 성찰 등이 이어진다. 그토록 집착하던 은수처, 고독과 같은 것이 굉장히 수동적인 방식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 이것을 능동적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된다. 더 나아가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 되려고 했다는 사실도 받아들인다. 다른 때 같았으면 글쓰기로 대단한 사람이 되려 했으니 글쓰기를 그만두겠다고 썼을텐데, 그렇지 않았다. 이런 것이 그에게 찾아온 변화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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