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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폭력 세미나] /『비폭력에 대하여』/ 씨앗문장 글쓰기 / 2026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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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파랑소 작성일26-04-16 10:56 조회3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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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적 존재로 살아간다는 것

 

 

몇달째 북꼼에서 종교학자 카렌 암스트롱의 『축의 시대』를 읽고 있다. 감이당에서 많이 읽어온 유명한 책이라 꼭 한번 완독하고 싶었다. 어느 덧 책의 절반이 넘어서면서 공자, 붓다, 소크라테스 등이 등장하였다.(아쉽게도 아직 예수는 나오지 않았다.) 그들이 강조하는 진리는 비슷했다. ‘자아’에서 벗어나 외부로, 곧 타인에게 공감하라는 것! 『축의 시대』를 읽으며 종교에 대한 책에 관심이 생겼고, 앞으로 이 분야에 집중하여 공부를 더 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런 마음이 들었던 걸까? 

  감이당에 처음 왔을 때도 그랬듯이, 내 삶의 가장 크고, 중요하고, 어려운 문제는 “어떻게 살 것인가?”가 아니었을까? 『축의 시대』를 읽으면서 어렴풋하지만 삶의 방향성을 찾을 수 있을 듯했다. 신기하게도 이와 같은 궁금증은 [비폭력 세미나]의 톨스토이의 사상과 이어졌다. 대문호라고 알려진 톨스토이가 이렇게 강력하게 1904에 발발한 러·일 전쟁을 꾸준하고도 강도 높게 비판하다니! 처음 안 사실이었다.


  이성적 존재인 인간은 그가 왜 사는지도 모른 채 살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은 언제나 이와 같은 의문을 품고, 자기계발 정도에 따라 종교적 교의 안에서 이 질문에 항상 답해 왔다. 사람들이 느끼는 내적 모순은 우리 시대에 특별히 집요하게 이 문제를 제기하고 그 답변을 요구한다. 오늘날 사람들이 인간에 대한 사랑과 봉사를 삶의 법칙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이 질문에 대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이는 인생의 의미에 대한 우리 시대의 유일한 이성적 답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답변은 1900년 전에 기독교에서 표명되었던 것이고, 전 인류의 대다수 사람들에게 정확히 알려진 것이다.(64쪽)


  톨스토이에 의하면 인간은 “이성적 존재”이고, “인간에 대한 사랑과 봉사를 삶의 법칙으로 인정”하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 시대의 유일한 이성적 답변”이라고 말한다. 텍스트 8장에는 “이성”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하는데, 정확히 어떤 의미를 뜻하는지 궁금해졌다. 


  주님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주님은 자신과 비슷하게 창조한 인간들로부터 인간적인 찬사나 명예를 바라지 않는다. 주님이 원하는 것은 인간들이 주님이 준 이성의 지도를 받으면서, 자신들의 행동을 주님에 견주는 것이다. 실상 무화과나무는 자기 일에 충실하고 개도 꿀벌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과연 자신의 소명을 수행하고 있는가? 아아! 이 위대하고 신성한 진실은 너의 기억에서 퇴색되고 있다. 일상의 공허함, 전쟁, 어리석은 두려움, 영혼의 유약함과 노예근성이 진실을 억누르고 있다.(62쪽)


  톨스토이는 말한다. “인간적인 찬사나 명예”를 바라지 않고 자신들의 행동을 주님께 견주며 살아가는 것이 진실 된 삶이라고. 무화과나무가 순리대로 자라고, 개도 꿀벌도 자연스럽게 살아가듯 말이다. “종교는 이미 존재하고 오늘날 사람들의 의식 속에 살아 숨 쉰다는 것을 깨”(66쪽)닫는다면 충분히 “주님이 준 이성의 지도”에 따라 그러니까 앞서 말한 인간에 대한 사랑과 봉사를 행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게 아닐까. 

  씨앗문장을 정리하다보니 “이성”이라는 단어가 ‘진리’이자 ‘본성’으로 해석이 된다. “허황된 미신”과 “허망한 착각”에서 벗어나 인간이 살아가야할 유일한 해법. 곧 주님의 이성을 따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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