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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폭력 세미나] 6주차_진리를 향해 가는 길_26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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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당신뜻대로 작성일26-04-27 21:33 조회4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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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향해 가는 길

 

 

20222,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했을 때 큰 충격을 받았다. 우리나라도 언제든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새삼스러운 자각 때문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4년이 지난 지금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202310, 하마스는 이스라엘을 기습했다. 올해 초, 미국은 베네수엘라의 대통령을 납치한 데 이어 이란의 최고지도자를 암살했다. 인류가 멸망할 수 있으니 어떻게든 핵은 건드리지 말자는 암묵적인 국제 합의를 무시하고 미국은 이란의 핵 시설을 공격하고 있다. 생각지도 못한 무지막지한 일들이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는데도 세계 기구나 국제법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비폭력에 대하여에서 톨스토이는 이런 미래를 예견하기라도 한 듯 정신적인 힘, 숭고한 연합, 협정, 국제 재판소, 군사력과 강력한 살상 무기로는 전쟁을 막을 수 없음을 설파하고 있다(44). 그렇다면, 러일전쟁 시대를 살았던 그는 전쟁을 어떻게 막겠다는 것일까?

  

국가의 수장이 전쟁 지도를, 병사가 전투를, 장관이 전쟁 수단 마련을, 기자가 전쟁 선동을 그만둔다면, 새로운 제도, 시설, 정치의 균형, 재판 없이도 이 출구 없는 상태는 사라질 것이다. 즉 사람들이 전쟁뿐만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 초래한 이 모든 재앙에 대하여 취했던 상태는 저절로 소멸된다(53).

  

각자가 전쟁에서 맡고 있는 역할을 관두면 전쟁이 사라진다니. 말도 안 되게 단순하고 쉽다. 그런데 그 쉬운 일이 왜 지금까지 잘 안된 걸까? 혹시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톨스토이는, 그리스도가 만들고자 한 사회가 실현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교의가 실효성이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의 노력으로 교의의 실현을 성취하지 못했기 때문이고, 진리를 위해 죽을 준비를 하지 않았기 때문(48)이라고 설명한다. 진리를 위해 죽을 준비를 해야 한다니. 내가 실천하기에는 너무 비장한 듯하여 살짝 피해 가려는 찰나, 다음 글이 이어지는 것이 보인다.

  

이상하게 여겨지겠지만, 인간이 초래한 불행으로부터, 그리고 불행 가운데 가장 무서운 전쟁으로부터 인간을 가장 확실하고 의심의 여지 없이 구제하는 것은 어떤 외적이고 보편적인 방법이 아니라 모든 개별 인간의 자각에 호소하기만 하면 된다. 이 자각은 바로 1900년 전 그리스도가 제안한 것으로, 모든 사람이 참회하고 스스로에게 그가 누구이며, 그가 왜 사는지, 그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이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은 무엇인지를 묻는 것이다(53).

   

꼭 전쟁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스스로 초래한 저마다의 재앙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꼭 전쟁 상황을 가정하지 않더라도, 일상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 참회하고, 내가 누구인지 나 자신에게 묻고, 왜 사는지, 해야 할 일은 무엇이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묻는 일. 왠지, 빠져나갈 수 없는 막다른 길로 점점 들어가고 있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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