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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토요주역 1학기 주역 글쓰기 - 2조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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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쑥쑥쑥 작성일26-04-23 22:15 조회4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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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이당 토요주역 / 1학기 주역 에세이_택산함 / 2026.04.25. / 2조 이현숙

 

공부하는 마음

 

병오년 한 해 몰입할 공부의 주제로 주역과 동의보감을 선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천지 자연의 이치를 알고 소우주인 인간의 몸에 대해 알면 더 깊은 지혜의 바다에서 헤엄칠 수 있을 거라는 기대에서였다. 얕은 사유에서 쉽게 결론을 지으려하는 성급함에서 벗어나, 몸의 생리에 어울리는 활동을 선택하는 힘을 가지고 싶었고, 이 공부를 오랫동안 하고 있는 선배들에 기대어 부족한 내 모습을 용인하고 넘어가는 유연함도 기르고 싶었다. 돈벌이의 현장에선 유능감과 효능감을 원료로 몸을 기계처럼 굴렸다. 일을 완벽하게 끝내지 않으면 존재가 사라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일이 마치 정체성인 것처럼 살아왔다. 화(火)기운이 왕성하여 마음이 망동하고 더욱 날 뛸 수 있는 병오(丙午)년을 맞아, 금(金)이 불에 단련되고 제련되듯 고통스럽더라도 고전의 지혜 앞에서 나의 '미숙함'을 오래도록 겪어보리라 다짐했다.

 

허나 굳은 다짐이 무색하게 내 몸은 미숙함을 강하게 거부했다. 낯선 한자말과 해석되지 않는 심오한 내용에 압도되어버리고, 한 글자의 한자에 집착하다 시간을 훌쩍 보내고 난 후엔 남은 분량을 읽어낼 생각에 미리 겁부터 냈다. 내용이 한 줄 이해되면 기뻐했다가 다음 줄 이해가 되지 않으면 답답함에 몸부림을 쳐댔다. 가장 큰 장애는 이 낯설고 방대하고 추상적인 텍스트와 빨리 친해지고 싶어하는 마음이었다. 너무 버겁게 느껴지는 무지로부터 조금이라도 빠르게 벗어나고 싶은 조바심, 결과를 빠르게 내고 싶은 욕심, 어느 정도 내용이 꿰어져야 공부에서 재미를 찾고 새로운 호기심이 발동하여 공부를 지속할 수 있을거라는 대책 마련의 패턴들 말이다.

  

택산함(澤山咸)괘 발제를 앞두고 왕부지의 주해를 읽어나가는데 구사효가 마치 현재 나의 모습을 그대로 말해주는 것 같았다. 九四, 貞吉, 悔亡, 憧憧往來, 朋從爾思. (바르게 하면 길하고 후회가 없으리라. 마음이 갈팡질팡하며 생각이 끊임없이 왔다 갔다 하면, 벗들까지 너의 생각함을 따른다.) 함괘는 사람과 만물이 감응하는 괘이다. 초육의 발가락, 육이의 종아리, 구삼의 허벅지, 구오의 등, 상육의 얼굴까지 우리 몸의 부위를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며 비유하는데, 구사효에서는 몸의 부위에 대한 언급이 별도로 없다. 왕부지는 이를 신명이 깃들어 있는 곳집, 오장육부의 궁전인 마음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이 '마음'이라는 것은 우리 몸에서 굽혔다 폈다 하는 부위인 다리 위로 처음 출현한 만큼 상육효로부터도 멀리 떨어져 있어 영명하여 ‘올곧아서 길하다’고 표현하면서도 우리들이 느끼는 모든 것의 주체로서 한 생각 어떻게 응하느냐(一念之應)에 따라 올곧음(貞)과 음란함(淫)으로 갈라진다고 말한다. 그래서 마음을 정하지 못한 채 생각이 끊임없이 왔다 갔다 하면(憧憧往來) 벗들까지 너의 생각을 따른다(朋從爾思)고 경계한다.(왕부지, 『주역내전 3』, 801쪽)

 

마음은 무심(無心)할수록 감感의 보편성이 획득된다. 억지로 누구와 친해지려 하거나, 어떤 결과를 얻으려고 마음을 졸이며 왔다 갔다 하는 것은 이미 '무심'의 도에서 벗어난 것이다. 그는 이것을 성급함이 본성을 해치는 상황으로 경계했으며, 또한 공자님께서 계사전에 특별히 택산함의 구사효에 대해 풀이한 "자연은 생각하지 않아도(無思) 저절로 이루어지는데, 왜 인간인 너는 사사로운 생각에 얽매여 마음을 어지럽히느냐(동동왕래)?" 묻는 해설을 빌려와 구사효의 '정(貞)'이란 결국 나의 좁은 생각을 비우고 천지의 이치에 순응하는 것임을 강조했다. 즉, 마음의 창문(牖)을 깨끗이 닦아 천지의 큰 빛이 그대로 들어오게 하라는 것이다. 너무 큰 말씀 앞에 5000년의 지혜가 담긴 고전인 주역을 공부하겠다면서 사사로운 욕심을 낸 나의 동동왕래는 귀여워 보이기까지 해서 웃음이 났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향으로의 한 발을 떼어 보는 것. 처음 마음은 그것으로 충분했다. 배움에 대한 설렘과 기대로 내디딘 걸음이었음에도 그 마음은 금세 조바심으로 바뀌고 나의 미숙함과 마주할 때엔 오히려 고통을 많이 경험할 수 있음도 알았다. 이미 몸에 익어 능숙한 자리로 돌아가고 싶어서가 아니다. 처음 품은 뜻을 계속 이어가고 싶어서 두렵고 겁이 난 것이다. 헤매면서도 지금 잘 가고 있음을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택산함괘 구사의 위에는 구오가 든든한 등을 보이며 자리하고 있다. 구오효(九五, 咸其脢, 無悔)는 굳셈으로서 가운데 자리를 제대로 차지하고 있으니, 마치 널찍한 등심처럼 편안해하며 망동하지 않는다.(같은 책, 802쪽) 순간 순간 다가오는 하나의 생각에 어떻게 응하느냐(一念之應)에 따라 나는 언젠가 구오의 자리에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고통이 혼자 앞서려 할 때 그 고통은 내 안에 배움에 대한 열망이 있어서임을 인식하며 스스로 미숙하다 생각되는 마음에도 온기를 불어넣어보려한다. ‘아, 내가 지금 또 동동왕래하고 있구나’라고 알아차리고 깊게 호흡하며 마음결을 읽어내며 다시 주역 앞에 고요히 머물러 보는 것, 그것이 내 속도와 진폭으로 만날 ‘정(貞)’함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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