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그러니까 나인 동물(3)] 그는 정말 왜 이러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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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민숙 작성일26-06-17 16:58 조회34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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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26-06-17 16:5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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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정말 왜 이러는지
자크 데리다의 『동물, 그러니까 나인 동물』을 읽기 시작한 후 계속 갈피를 잡지 못하다가 결국 한 권이 끝나가는 지점이 왔다. 자크 데리다는 자신의 저서 『동물, 그러니까 나인 동물』에서 인간 중심주의 철학자들을 소환하여 그들의 논리를 하나하나 비틀어 가며 인간 중심에서 동물에 대한 사유로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4부에서는 재미있게도 정말 내가 묻고 싶었던 「왜이러는지」를 소제목으로 잡아 얘기를 펼쳐 나간다. 4부에 소환된 주인공은 하이데거이고, 그의 저서 『형이상학의 근본 개념들: 세계-유한성-고독』이라는 책에서 나온 동물에 관한 내용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동물이 결여하고 있는 것, 그것은 “그러한 것으로서의/자체로서의(en tant que tel)” 것, “~로서 의 구조(als Struktur)”(270쪽) 자크 데리다의 설명을 조금 부연하면 동물이 결여하고 있는 것, 그 러니까 그것은 “자체로서의 타자”(같은 쪽)라고 한다.
이 뜬금없는 ‘자체로서’가 어떤 의미인지를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동물은 존재자와 관계하지만 자체로서의 존재자와는 관계하지 않는다는 하이데거의 말을 자크 데리다가 가져온다. 더 나아가서 이 ‘자체로서’가 언어에, 로고스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한다고 한다. 조금 더 설명을 해보면 동물을 존재자로서 주어지지 않는 것인데, 즉 동물의 행동은 어떤 것을 어떤 것으로 지각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은 관계성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이다. 내면으로 독립적이기를 원한다고 하더라도 외면적으로 그것을 고집하며 살아가기 힘든 존재이다. 그래서 인간은 타자가 중요하다. 아마도 하이데거는 동물은 그런 타자와의 관계성에서 배제된다고 보는 것 같다. 그렇지만 반드시 그런 것일까? 요즘은 예전과 다르게 어디를 가나 반려 동물과 함께 다니는 사람을 흔하게 본다. 그들이 반려묘나 반려견과 나누는 정서는 키우지 않는 사람에게는 때때로 이해 불가인 경우가 많다. 동물이 인간에게 보이는 충성스러움 또한 내내 회자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동물 자체로서, 자체로서의 타자 여부는 논란이 될 만하다.
하이데거가 동물로서 동물의 문제에 접근하는 세미나의 ‘제2부’에서는 세계의 문제를 구체화 하는데 그것은 세계, 외로움, 유한성에 대한 질문들이다. 그런데 이 세 가지 질문은 시간과 연결되며 다시 유한성으로 공통화한다. 왜냐하면 인간과 동물의 공통점이 유한성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과 동물은 모두 죽는다. 생명이 유한하다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인간이 유한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인간은 세계 형성적이다’라고 말한다.
하이데거는 1929~1930년의 세미나에서 핵심적인 명제들을 제시한다. 돌, 동물, 인간, 특히 ‘세계 빈곤(weltarm)’이 그것이다. 하이데거는 죽지(mourir) 않고’ ‘사멸하는(crever)’동물, 끝이 있지만 엄격히 말해 죽지는 않는 동물이 동물과 인간의 결정적인 차이라고 본다.
자크데리다는 ‘자체로서의’ 것을 확대하는 전략을 써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이 동물에게 박탈한 것을 주는 대신, 인간도 어떤 면에서는 역시 ‘결핍되어’ 있다는 점, 그리고 순수하고 단순한 ‘자체로서’는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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