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인의 형이상학(1)] 안티 나르시스와 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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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유현지 작성일26-06-24 13:22 조회25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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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인류학] 2학기/『식인의 형이상학』 4주차
안티 나르시스와 식인
유현지
인류학은 오랫동안 타자를 바라보는 학문이었다. 서구의 연구자는 보고, 기록하고, 분류하고, 해석했다. 원주민은 말하는 자라기보다 말해지는 자였고, 사유하는 자라기보다 사유의 대상으로 놓였다.
에두아르두 비베이루스 지 까스뜨루가 『식인의 형이상학』에서 말하는 안티 나르시스는 바로 이 구도를 뒤집으려는 시도다. 그는 원주민의 사유를 인류학 이론의 재료로 삼지 않는다.
안티 나르시스의 목표란, 진부하지 않은 인류학 이론들은 모두 원주민적 인식 실천의 여러 버전들이라는 주장을 예를 들어 설명하는 것이다. 그런 설명을 통해, 인류학의 견지에서는 역사적으로 “대상의 위치”에 존재해왔던 집단들의 지적 화용론과 그 진부하지 않은 인류학 이론들이 엄격한 구조적 연속성 안에 위치하게 된다.(『식인의 형이상학』, 18-19쪽)
오히려 진부하지 않은 인류학 이론들이 이미 원주민적 인식 실천의 여러 버전이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인류학자가 새롭게 만들어냈다고 여겨온 날카로운 개념들,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를 다시 묻고, 주체와 객체의 자리를 흔드는 이론들은 사실상 “대상의 위치”에 있던 원주민들이 예전부터 실천해온 일인 것이다. 따라서 『식인의 형이상학』에서 식인은 단순한 풍습의 이름이 아니다. 그것은 타자를 내 안으로 받아들이되, 내 방식으로 안전하게 소화해 없애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타자가 나를 먹게 두는 사유의 방식이다.
안티 나르시스란 결국 거울을 깨는 일이다. 우리는 타자를 볼 때 자주 자기 얼굴을 본다. 동물을 보면서 인간의 고유성을, 원주민을 보면서 서구 문명의 우월성을 찾는다. 그러나 안티 나르시스는 그 거울 앞에서 한 걸음 물러난다. 타자를 통해 나를 더 선명하게 보려는 게 아니라, 타자에게 ‘식인’으로 먹혀 결국 경계가 흐려진다.
인문세 공부를 하며 해당 책에 내 관점을 덧붙이는 게 아니라 글쓴이의 생각에 흠뻑 빠지는 연습을 하고 있는데, 이게 바로 ‘안티 나르시스’를 체화하는 연습이었구나 다시금 깨닫는다. 사실상 우리가 인류학을 공부하는 것도 타자가 기꺼이 나를 먹게끔 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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