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마니즘]_굿, 성(聖)과 속(俗)의 변증법적 실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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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수정 작성일26-04-08 16:40 조회28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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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인류학 [샤마니즘]2 굿, 성과속의 변증법적 실현.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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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26-04-08 16:4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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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인류학]_ 『샤마니즘』(2)
굿, 성(聖)과 속(俗)의 변증법적 실현
2026.4.8. 최수정
“샤만이 벌이는 굿은 속(俗)의 조건을 파기함으로써 가능해지는 새로운 상태를 실현시키자는 것이다.”(미르치아 엘리아데, 『샤마니즘』, 216p, 까치)
4월 1일 제주 칠머리당 영등굿은 하루 종일 진행됐다. 그곳에는 특별한 의미로 장식된 공간에서 특별한 옷을 입고 일상과 구분된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알록달록 비일상적인 복장을 하고 긴 시간 영등굿을 주재하는 심방은 어떤 보이지 않는 힘과 대결하고 있는 것처럼 비장해 보였다. 끝없이 울리는 북, 설쒜, 대양 소리가 멀리 앉아 있는 내 몸까지 도달해 진동을 일으키고 있는데, 심방은 그 무구(巫具)들의 강한 리듬의 힘에 사로잡힌 것처럼 보였다가, 사로잡히지 않기 위해 고통스럽게 투쟁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가, 너무 어지러웠다. 무구들의 울림 때문인지 계속 피어오르는 강한 향 때문인지 나는 어느 순간 내가 누군지 여긴 어딘지 종잡을 수 없게 되고, 현기증으로 위태로워졌다.
특정 사회의 샤먼
나는 제주 칠머리당 영등송별제에서 굿이란 무엇일까를 생각해 봤다. 이 사회에 샤먼이라는 직능이 왜 필요했을까? 샤먼이 존재하는 사회는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믿고 있는 것을 전제로 한다. 샤먼은 굿을 시작하기 전에 자신의 내력을 읊는다. 신이라 믿는 보이지 않는 존재 앞에 자기가 어디에 살고 있으며, 누구인지부터 알리고 후손으로서 자기의 계보를 밝힌다.
‘샤마니즘’이라는 말로 총칭되는 원초적인 믿음체계 속에서 각각의 종족들은 형태적으로 다양한 그들만의 무속적 요소를 보존하고 있다. ‘특정 사회’(33p)가 용인하는 방식으로 샤먼 입문과정이 있고, 입문과정을 통하여 기억과 문화가 전승된다. 엘리아데에 따르면 꿈조차 전통적인 규범을 따르며 특정한 공동체의 방식으로 입문식을 치른 샤먼의 효력은 그 부족사회의 구성원에게만 영향력이 있다. 아무리 영험한 샤먼이라 해도 그 문화를 벗어난 곳에서는 효력을 발휘할 수 없다. 이는 각 사회가 목표하는 정신적 지향점, 의미가 다르기 때문이다. 굿을 통해 샤먼은 특정한 사회의 의미를 정당화한다. 샤먼의 무복과 무고도 부족 공동체를 떠날 수 없다. 무복은 샤만이 차지하고 있는 공간이 주위의 속계(俗界)와는 다른 종교적인 소우주가 되었음을 나타낸다. 무복을 입고 서 있는 샤먼의 자리가 특정한 사회의 중심이 되고, 무복과 무고에는 조상의 “영신들”이 깃든다.
엘리아데의 『샤마니즘』에 의하면 샤먼 입문자가 배우는 것은 부족의 계보, 전통, 신화와 특수한 어휘다. 이것들은 샤먼이 속한 공동체의 기억이다. 여기에는 그 부족의 영신인 동물들에 대한 기억도 있다. 동물 영신들도 이 공동체의 조상이 되는 것이다. 제주 영등굿의 심방이 쓴 갓에는 새의 깃털이 꽂혀 있었다. 이것으로 칠머리당 영등굿의 동물 영신은 새일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영등굿은 자연현상인 바람까지 그들의 조상으로 여겨 부족의 계보에 넣고 그 앞에서 염원을 빈다. 심방의 입을 통해 조상의 기억이 불려 나올 때 그 공간은 조상과 함께 있는 공간이 된다. 제주 심방은 끝없이 가슴을 파고드는 무구의 소란한 리듬이 마치 무구에 깃든 조상들의 노랫소리인 것처럼 그에 맞춰 격렬한 춤을 춘다.
샤먼은 조상인 영신들과 함께 현실의 영혼들을 인도하고 치유한다. 제주 심방은 마을 공동체의 영혼을 위로하고 치유하기 위해 먼저 열명(列名)올림의 제차를 통해 굿에 참여한 해녀와 선주의 성명과 나이를 신에게 고한다. 뿐만 아니라 이날 굿에 참여한 외부인도 이 열명올림에 참여할 수 있다. 인문세 선생님들은 각자 제물을 바치는 의미로 소액의 지폐를 붙인 종이에 자기 이름과 나이를 써서 올렸다. 내 이름이 심방의 입을 통해 불려 나오자 나도 모르게 대답을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아주 오래 나열된 이름을 부르는 심방을 보고 있자니 ‘특정 사회’로 좁혀진 샤만의 효력 범위를 이해할 것 같기도 했다. 그것은 샤먼이 부를 수 있는 이름에 대한 범위가 아닐까. 어째서 심방에게 이름이 불리는 것만으로 위로가 되는 기분이 드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순간 샤먼의 역할이 무엇인지는 조금 알 것도 같았다.
저승으로 잠수하는 해녀
시베리아 부르야트, 알타이의 무복은 비슷한 구조를 갖고 있지만 특정한 기호를 이용해 자신들의 문화를 변별한다. 특히 야쿠트인의 샤먼들은 접신 여행을 할 때마다 갈매기, 논병아리 같은 물새를 대동한다. 그런데 이러한 물새의 이미지는 바로 ‘잠수’, 즉 지하계 하강을 상징 한다.(221p)
제주 영등굿을 주재하는 마을 공동체의 주체는 해녀다. 마을 공동체 구성원인 해녀가 주체가 되어 그들만의 특정한 사회의 공감대와 유대감으로 굿을 이끈다. ‘잠수’로 해산물을 수확하는 해녀는 날마다 지하계 하강을 하며 죽음을 체험하는 샤먼이라 해도 될 것 같다. 잠수한 상태를 ‘탈혼망아’ 상태라고 부르는 부족도 있다. 많은 에스키모 종족, 특히 해안에 사는 종족은 저승을 바다 밑에다 상징하고 있다.(222p) 섬인 제주도도 용왕이 살고 있는 바다 밑을 저승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바다 밑 죽음의 세계에서 삶을 위한 먹을거리를 구해오는 해녀는 샤먼과 같은 존재다. 해녀들에게 바다는 죽음과 가까운 곳이지만 하늘보다 훨씬 더 삶과 밀접하다. 저승에서 가져온 먹거리를 이승에서 먹고 사는 우리는 이승과 저승 양쪽에 발을 걸치고 있는 존재가 아닌가?
샤먼은 보이지 않는 조상의 ‘영혼’과 접신해 들은 이야기를 인간에게 전달한다. 이것으로 샤먼은 현실적 속(俗)의 세계에 보이지 않는 초월적 성(聖)의 세계, 즉 저승의 진실성을 증명해 보인다. 샤먼은 ‘통상 성(聖)의 영역에 속하기도 하는 저승’(206p)에 갔다 온다. 이것이야말로 속(俗)을 파기하며 성을 현현하는 샤먼의 큰 능력이고 샤먼은 이를 통해 엘리아데가 말한 성의 변증법을 실현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제주 해녀는 속(俗)과 성(聖), 두 경계를 오가는 샤먼적 존재다. 매일 매일 저승으로 잠수하며 그곳에 살고 있는 성스러운 먹거리를 속세의 현장으로 끌어올려 생명을 먹이고 살리면서 삶과 죽음을 연결한다.
바람신과 함께 삶을 전복(顚覆)
제주 영등송별제는 바람신(영등신)에 대한 제사라는 점에서 특히 흥미롭다. 음력 2월 세찬 북서계절풍은 제주 바다를 뒤집어 놓는다. ‘바람’ 자체가 전복(顚覆)의 이미지다. 이는 마치 쟁기가 땅을 뒤집어 흙이 씨를 받기 수월하게 만드는 것처럼, 바람이 바다를 뒤집는다. 하늘과 땅, 삶과 죽음을 휘저어 섞어 경계를 없앤다. 영등굿은 말 그대로 뒤집힘을 반기고 축하하는 자리다. 이런 바람신을 맞이하고 보내는 주체가 해녀다. 자신을 살게 하는 숨을 참고 죽음에 다가가 먹고살 음식을 건져서 아슬아슬 돌아오는 그들에게 바람신은 숨을 되돌려준다. 바람신이 지나간 자리는 풍요과 굶주림, 기쁨과 고통, 삶과 죽음이 동시에 뒤섞인 채 떠오른다. 그 안에서 재빠르게 삶을 건져 올린 사람들은 살아남았다. 죽음 후에 삶이 탄생하듯이 맵고 차가운 바람을 잘 보내드리면 곧이어 부드럽고 따뜻한 바람이 온다. 바람이 뒤집고 간 바다는 풍요를 불러온다. 약속된 풍요를 믿고 이날만은 많은 음식을 준비해 신에게 바치면서 함께 먹고 논다. 새로운 삶을 보장받은 이들은 위풍당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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