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로의 시련(2)] 종교학의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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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임 작성일26-03-11 15:29 조회27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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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학의 방법
인류학 공부를 시작하며 초심자인 내가 자주 들은 이름은 클로드 레비스트로스(1908~2009, 프랑스)이다. 그리고 작년부터 종교 인류학으로 미르체아 엘리아데(1907~1986, 루마니아)를 공부하고 있다. 두 분이 모두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1854~1941, 스코틀랜드)의 『황금가지』를 읽고 신화를 연구했다니 같은 계열의 학자들이라고 짐작했다. 그런데 『미로의 시련』에서 엘리아데가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를 비판하는 부분을 보니 조금 당황스럽다. 그들은 다른가? 생각해 보니 레비스트로스는 인류학자이고 엘리아데는 종교학자였다. 그렇다면 종교학자인 엘리아데의 배경 사상과 학문적 방법은 무엇이고 다른 학문과 무엇이 다른가?
하부구조와 상부구조
엘리아데는 신석기 혁명으로 일련의 신앙, 신화, 의례가 새로 구축되었다고 한다. 이 말은 ‘기술적, 경제적, 사회적 변화들’이 인간의 정신에 영향을 미친다는 말이다. “실존하는 인간에게, 성스러움의 경험은 특정한 몸, 특정한 정신, 특정한 사회적 환경을 매개로 일어나는 것”이다.(210)성스러움의 경험은 초월적인 경험이지만, 그 시대의 정신 구조와 사회 구조를 초월하지는 않는다. 이는 카를 마르크스(1818~1883, 독일)의 물적 토대(생산양식: 기술, 도구, 노동력)인 하부구조가 상부구조(정치, 법률, 종교, 문화, 예술, 이데올로기)를 규정한다는 유물론적 관점과 유사해 보인다. 이런 역사적이고 ‘유물론적인’ 과학에서 어떻게 성스러움을 경험하게 되는가?
해석학적 태도
엘리아데는 ‘마르크스와 마르크스주의자들, 프로이트, 레비스트로스와 구조주의자들’이 공통으로 갖고 있는 ‘비신비화’ 작업을 비판한다.(214)비신비화 작업은 세계를 근대의 합리성과 과학으로 연구하고 이해함으로써 신비로움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래서 성스러운 우주는 그냥 자연이 되었고, 인류는 성스러움의 경험을 잃었다. 엘리아데는 이러한 ‘의미의 부재’를 현대인의 위기로 바라본다.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지 못할 때, 이것은 종교적인 문제와 연관된다.(235)그러므로 ‘의미의 부재’를 인식하고 찾는 일은 종교적이라 할 수 있다.
엘리아데의 종교적 해석학은 “어떤 종교적 사상이나 현상이 시간을 통하여 가졌던 뜻이나 의의, 의미들을 탐구하는 것”이다.(205)이러한 의미 작업을 통해서 세속화된 세계를 재성화 시킬 때 성스러움은 다시 체험할 수 있다. 근대 학문의 영역은 사실의 발견과 사실관계의 설명에서 멈췄지만, 종교학은 한 발 더 들어가 의미를 해석하려 한다.
과학적 태도와 종교적 태도
책에서 질문자인 앙리 로케가 “어떻게 과학적 태도와 종교적 태도가 화해합니까?”라고 질문한다.(210)엘리아데는 여기에 직접적인 대답은 하지 않는다. 그동안 우리는 과학적 태도가 합리적이고 타당한 방법이라 배웠다. 반면 무문자 사회의 신화적인 사고에 대해 유치한 사고이거나 덜 발달한 사고방식이라 생각했다. ‘보이는 이 세계가 전부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지각할 수 있는 세계 너머에 영적인 세계가 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접점은 없을까?
오늘날의 영성은 제도 종교를 벗어나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엘리아데는 삶의 의미를 찾는 것 자체가 종교성이라 말한다. ‘성스러움의 체험’을 초월의 경험이라는 협의의 개념에서 해방시켜 보자. 삶의 근원적인 의미를 찾고 죽음을 해석하려는 태도를 가지게 될 때 우리는 신비와 의미로 가득한 세계에 살게 될 것이다. 이때 과학적 태도는 영성의 길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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