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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의 시련](3) 엘리아데가 무인도에 간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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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coolyule 작성일26-03-18 16:48 조회4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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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세종 종교인류학_『미로의 시련』(3)_김유리_ 20260318

 

엘리아데가 무인도에 간다면

 

 

‘외딴 섬에 간다면 어떤 책을 가지고 가시겠습니까?’ 여러 가지로 변주되는 흔한 형식의 질문인데 이에 대한 엘리아데의 대답이 간단치 않다(미르체아 엘리아데, 『미로의 시련』, 북코리아, 2011, 267~268쪽). 그는 무인도에 도서관이라도 만들려는 것 같다. 먼저 발자크의 작품 몇 권으로 시작한다. 당대 프랑스의 전체상을 그리려고 한 작가(297쪽 각주)를 통해 프랑스를 다 들고 갈 속셈인 것이다. 가져갈 책 목록이 이어진다. 두꺼운 러시아 소설, 세상 모든 지식을 알고자 했던 파우스트 이야기, 흑마법사였던 성자의 마술적인 전기와 시, 셰익스피어, 독일 낭만주의 작가들, 유배를 “자기 영감의 원천”(155쪽)으로 삼은 단테, 그리고 더…….

대담자는 외딴 섬에 들고 갈 중요한 책 한 권을 예상했을 텐데 엘리아데의 답은 방주에 태울 동물들을 호명하는 듯 끝이 없다. ‘성서는요?’ 성서는 서양인들이 단 한 권의 책을 꼽아야 할 때 떠올릴 만한 책이다. 엘리아데는 본인에게 깊고 풍부한 의미와 가치를 주었던 성서의 각 편들을 열거하다가 이어서 성경책을 읽는 여러 가지 방법들을 설명하기 시작한다. 애초에, 망명객이자 종교해석학자인 엘리아데에게 할 질문이 아니었다. 엘리아데는 무인도에 보내진다고 해도 작업을 이어갈 사람이었다.

엘리아데는 책 속에서 새롭고 심오한 의미를 발견하는 것을 좋아한다. 책을 해석하는 중에 그전에는 몰랐던 깊은 의미들이 드러나면서 독자 자신의 존재의 의미도 재발견하게 된다. 엘리아데는 의미 추구가 인간 누구에게나 꼭 필요한 일이라고 여긴다. 주어진 조건 속에서 무미건조하고 황폐하고 권태롭게 살아가는 사람이 자기 조건을 “시련”으로 받아들여 그 의미를 찾아나서는 모험에 뛰어들 때 그가 인간답다는 것이다. 살다보면 무너지고, 황폐하고, 고장나고, 막힌 것 같이 느껴지는 상황에 처할 때가 있다. 엘리아데에 의하면 이런 곳에서 잃어버린 의미를 묻는 모험이 시작된다. 질문들이 시작될 때 우연하고 무가치한 고난들이 위장을 벗고 입문자의 시련에 찬 삶을 고양시키는 의미로 변한다. 우리의 실존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통해서 우리는 무의미한 삶의 감옥에서 구원받는다. 우리를 구원하는 것과의 만남이 성스럽다.

그렇다면 성스러운 것은 어디에 있을까? 엘리아데는 모든 속된 일상이 성스러움을 감추고 있다고 말한다. 외딴 섬마저도 황량한 유배지로 위장하고 있는 성소일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시련 속으로 들어가 의미를 찾는 노력을 하는 사람에게 성스러움은 스스로를 나타난다. 성스러움과의 만남을 통해서 속되기만 하던 일상이 감추어진 전체성을 드러낸다. 무의미해 보이던 속(俗)이 성(聖)과 함께 총체성을 이룬다. 성스러움은 일상을 떠나 드러날 수 없고, 일상은 그것만으로 다인 것이 아니다. 성과 속이 대립하며 보완하는 특별한 전체를 이룬다. 이와 같이 엘리아데에게는 전체라는 개념이 매우 중요하다. 그가 무인도에 가지고 가려고 한 책들은 전체의 중요성을 드러내는 것들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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