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로의 시련] 엘리아데 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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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임 작성일26-03-04 17:37 조회35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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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아데 입문
『미로의 시련』은 미르체아 엘리아데(1907~1986, 루마니아)의 말년에 대담 형식으로 그의 사상을 정리한 책이다. 책에서 엘리아데는 『인도 철학사』를 읽고 책의 저자인 캘커타 대학의 다스굽타 교수와 교수의 후원자인 마하라자에게 인도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편지를 썼다. 교수는 인도로 엘리아데를 초청했고 마하라자에게 추천서도 써 주었다. 이에 마하라자는 엘리아데의 공부를 5년 동안 후원 하겠다는 약속을 한다. 이렇게 인도에 가게 되는 일련의 과정은 극적이다. 엘리아데의 거침없는 용기와 여기에 응답하는 진리를 사랑하고 공부하는 자를 돕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1928년 인도로 떠날 때 그의 나이는 21살에 불과했다. 인도에 머무는 3년 동안 2년은 다스굽타와 함께 인도 철학을 공부했고, 1년은 명상과 요가 수행을 한 후 군 복무를 위해 1931년 12월 루마니아로 돌아왔다.
『미로의 시련』에서 엘리아데는 인도에서의 교훈 중에 ‘신석기인의 발견’에 대해 말한다. 이것은 그의 종교 사상사에 있어 중대한 변곡점으로 보인다. 그가 말하는 구석기인의 종교성와 신석기인의 종교성에 대해 알아보자.
신석기: 농경, 순환과 재생의 종교
신석기 혁명(약 1만 년 전)이 일어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농경의 발견이 있다. 농사로 식량이 안정적으로 공급되자 인구가 증가했다. 사람들은 어로와 수렵채집을 위해 이동하던 생활에서 마을을 만들어 정착하여 살게 되었다. 이렇게 생활이 바뀌게 되자 종교도 농경을 기반으로 변화하게 된다.
엘리아데는 중앙 인도에 살고 있는 산탈리(Santali) 원주민들에게서 “생명과 죽음과 재생이 단절되지 않은 순환으로서의 자연에 대한 세계관을 기반으로 하는 신석기 문명”(94)을 보존하고 살아가는 모습을 발견했다. 농경으로 인해 인간은 특정한 종교체험을 하게 된다. 인간은 ‘나서 죽고 다시 살아나며 무한히 순환하는 식물의 운명을 공유’하게 되면서 ‘식물의 생명과 신비한 연대성’을 획득하게 된다. 또한 “인간이 순환의 관념, 태어나 살다 죽고 재생하는 것을 깨닫고, 그것을 우주적 순환 주기에 통합시킴으로써 그 자신의 존재에 가치를 부여”하게 되었다.(97) 식물은 싹을 틔우고 자라나고 죽고 씨앗을 맺고 봄에 다시 살아나는 순환을 반복한다. 사람들은 의례에서 죽음과 해체와 재탄생의 의식을 통해 식물처럼 재생하기를 희망했다.
식용 식물 기원 신화에는 신적 존재를 살해하고 매장하자, 그 유해에서 알뿌리 식물과 과일나무 등이 솟아났다는 이야기가 있다. “식용 식물, 곡식은 주어진 것이 아니며, 태초부터 존재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자신의 땀과 주술로 수확물을 창조한 것이다. 사냥꾼과 비교하여 커다란 차이가 나는 것은, 고대인들은 피의 희생 없이는 아무것도 창조될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98) 곡식은 신을 살해하고 얻은 산물이기 때문에 농경과 함께 ‘피의 희생제의’가 중요해졌다. 농사가 잘되기를 빌며 동물들을 바치는 제의가 행해졌고, 이것은 신년 의례나 농신제, 기우제의 형식으로 지금도 행해지고 있다.
구석기: 원시 사냥꾼의 종교
엘리아데는 구석기 시대까지 200만 년 동안 고대인들의 종교는 원시 사냥꾼의 종교와 비슷하다고 한다. “수렵채집의 사회에서 동물은 식물처럼 신이 희생하여 창조한 것이 아니었다. 고대인들에게 동물은 세상에 있고, 주어진 것이었다.”(97) 어로와 수렵채집은 자연에 ‘주어진 것’을 얻는 행위이다. 이에 반해 농경은 땅을 개간하고 씨를 뿌리고 거름을 주는 등 인간이 자연에 힘을 가해 변형시켜서 얻은 것이다. 이에 반해 구석기 시대의 사냥꾼들은 “사냥감을 죽였어도 결코 살해자라고 불리지 않”았고, “그들 자신이 살해의 책임을 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98) 원시 사냥꾼들은 그 자신과 잡은 동물들이 주술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신비한 연대감이 있었다. 시베리아 종족들 및 다른 고대인들은 동물을 친족이라 여겼고, 과거에 내가 먹이가 되어 동물을 살렸었고, 이번에는 동물이 먹이가 되어 나를 살리는 것이라 여겼다.
토테미즘(Totemism)은 특정 부족이 자신과 특별한 친연관계가 있다고 믿는 특정 동물, 식물, 또는 자연물(토템)을 숭배하는 신앙이다.고대인들은 동물들이 인간과 달리 초자연적인 힘을 부여받은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토템을 조상이나 수호신으로 신성시하며 숭배했다. 선사시대의 알타미라 동굴과 라스코 동굴에는 수많은 들소 떼와 말과 사슴의 그림이 웅장하게 그려져 있다. 주술과 의례가 행해졌을 동굴에 동물들의 그림을 그려 성소에 신성한 분위기를 만들었을 것이다.
우주적 종교성
엘리아데가 ‘신석기인의 발견’이라 말하는 우주적 종교성은 무엇인가? 그는 “사물이나, 샘, 나무, 봄철 등에 우주적 리듬을 통한 성스러움의 발현”이라고 한다.(96) 이러한 우주의 순환은 구석기에도 존재했지만 신석기에 와서 농사를 생업으로 하게 되고 ‘식물과의 신비스러운 연대감’을 획득하게 되면서 우주적 종교성으로 발전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방향 설정’이다. 미지의 세계에 던져진 인간은 공간과 시간에 방향을 설정하는 ‘우주화(cosmicized)’를 통해 신성을 경험한다. 공간을 신성하게 하는 방법은 중심을 세우는 것이다. 농경민들의 마을은 우주의 중심이었고, 마을의 중심에는 신성한 성소가 있고, 성소는 하늘과 땅과 지하를 이어주는 세계의 축이 된다. 시간은 “신화적 시대에 신들에 의해 성취된 우주 창조(cosmogony)는 인간의 우주화의 모델이 되고 또 영원히 제의적으로 반복”함으로써 성스러움을 경험하게 된다.(384) 세계는 무의미했던 속(俗)의 상태에서 우주화를 통해 방향과 질서를 되찾고 다시 성(聖)스러움을 회복하게 된다.
인간화의 과정
“엘리아데에게 신들은 우주적 성스러움의 원천으로부터 그들의 점진적인 분리를 의미하는 ‘인간화’(humanization)의 과정을 겪고 있”고 한다.(383) ‘우주적 성스러움의 원천’으로서의 신은 우주와 자연 자체에서 점점 분리되면서 초월이 일어나게 된다. 인간이 자연과 분리되는 것에 비례하여 ‘신들의 초월’이 발생한다. 이를 엘리아데는 ‘인간화’로 명명했다. 구석기 시대의 신은 자연과 우주 그 자체였다. 사람들은 모든 삶에서 성스러움을 경험하며 자연의 일부로 살았다. 신석기 시대의 신은 자연과 분리되어 태양신, 대지모신 등의 인격적 의지적 존재가 된다. 이 때의 사람들은 의례를 통해 성스러움을 경험하게 된다. 다음 시대에는 자연에서 완전히 초월하여 존재하는 유일신이 등장하게 된다. 지금의 우리들은 자연과 완전히 분리되었다. 그리고 분리되는 것에 비례하여 불안이 증가한다. 불안을 줄이고 의미로 가득한 충만한 세계를 살기 위해 종교가 필요하다. 자연과 자연의 힘과 함께하는 감각을 회복하는 애니미즘의 공부가 지금의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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