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종교사상사2] 3학기 에세이 "악의 기원" > 목요 인문세 대중지성

목요 인문세 대중지성

홈 > Tg스쿨 > 목요 인문세 대중지성

[세계종교사상사2] 3학기 에세이 "악의 기원"

페이지 정보

작성자 coolyule 작성일25-09-23 17:31 조회53회 댓글0건

첨부파일

본문

 

 

종교인류학 에세이 20250923 김유리

 

 

악의 기원

 

 

 

 

 

 

악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대체 왜 신은 악 같은 것을 창조한 것일까? 선과 악이 실재하는 우주에서 신은 무엇을 하며,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악의 기원을 설명하는 두 개의 종교를 비교하고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보자.

 

 

악의 기원

이란의 주르반교의 창조 신화에 따르면, 악은 위대한 신의 아들이자, 선한 신의 쌍둥이 형제로 등장한다. 최고신 주르반이 악을 잉태하게 된 까닭은 부주의 때문이다. 신은 아들을 낳기 위해 희생 제의를 드리던 중에 의심을 품는 바람에 쌍둥이를 가지게 되었다. 신적 존재가 신중하지 못했던 결과로 죽음과 악이 생겨났다고 설명하는 신화는 전 세계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고대 종교에서 지고한 존재는 현실의 전체를 구성하기 때문에 “역의 합일” 상태이다. 선을 탄생시키려고 하면 불가피하게 악이 함께 생성된다. 주르반교 신화에서 악은 뜻하지 않게 태어났다. 그리고 악의 존재는 피할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주르반교 신화에서 악은 자율적이고 고유한 존재론적 지위를 갖지는 못한다. 악은 신의 파생물이다. 악은 의례상의 과오가 낳은 비참한 결과로서, 악의 탄생은 의도치 않은 창조자에 의존하고 있다. 더군다나 악은 창조자에게 그의 존재를 시공간적으로 제한받으며 그 운명이 종속되어 있다. 위대한 신 주르반은 악이 너무 어둡고, 악취가 풍겨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자기 아들들에게 지배권을 물려주긴 하지만 그들의 통치에 시간적 제한을 가하기로 결정한다. 선한 아들과 악한 아들은 서로 대립하는 신으로서 주어진 시간 동안 투쟁하고 교대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영원의 시간으로 흡수될 것이다. 시간의 원천이자 운명의 관장자인 주르반은 우주적 양극성과 대립이 공존하는 원초적인 신의 형태를 보여준다.

유대교에서는 악이 인간의 불복종이나 천사의 타락에 의해 생겨난다. 악은 그 기원부터 불복하는 “죄”와 연결되어 있어서, 이점이 주르반교의 악의 기원과 다르다. 한편, 악은 야훼의 적대자로 명확하게 구체화되지 않는다. 사탄에 대한 최초의 언급을 보면 그는 천상의 궁정에 속해 있었고 인간에 대해 악의를 품었지만 야훼에 적대적인 존재는 아니었다. 그러나 헬레니즘과의 대립이 절정으로 치달으며 전개되는 유대 묵시문학에서 사탄은 악의 원리를 구현한 하느님의 적대자로서 주연급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현세와 내세로 두 왕국, 두 시대가 분리된다. 이 세상은 사탄의 세력이 승리하는 “사탄의 왕국”이고, 성 바울은 사탄을 “이 세상의 신”이라고까지 부른다.

종교에서 이원론이 명확한 형태를 띠는 경우는 종교적이로나 정신적으로 특정한 위기를 겪은 후라고 한다. 위기란 전통적인 신학에 의문이 제기되고 그중에서도 삶, 실재, 신성의 부정적인 면이 인격화되는 등의 사건이며 이는 이원론을 만들어낸다. 그전까지 선과 악은 낮과 밤, 삶과 죽음 등과 같이 상반되는 것의 교대에 근거하여 진행되는 보편적인 과정의 한 국면으로 인식되었다. 고대 종교에서 야훼와 같은 창조주는 실재하는 것들의 절대적 총체다. 창조주는 악을 포함한 모든 대립이 공존하는 역의 합일로 인식된다. 이른 시기의 전승에서 야훼는 악령까지도 부리는 위대한 신이다. 그러나 종교적 위기를 겪으면서 야훼의 원초적인 이미지가 분열된 결과, 사탄이 야훼와 배타적인 악의 기능을 갖추게 된다. 유대교의 이원론은 이란의 영향을 받아 발전했을 것이나, 그보다 완화된 형태의 이원론이라고 할 수 있다. 사탄은 태초부터 하느님과 공존했던 것은 아니며, 또 영원하지도 않다.

 

 

악의 기능

악이 적대자로 등장하는 우주론은 종말론을 전제한다. 악은 선하게 창조된 세계를 습격하여 파괴하고 부패시킨다. 이러한 악의 공격은 부지불식간에 선의 완전함과 승리를 촉진한다. 왜냐하면, 악의 공격이 없었다면 가만히 있었을 선이 악에 대항하여 싸우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선은 악의 세력을 격퇴하고 창조 세계에 혼입된 악으로 인한 오염과 훼손을 복구한다. 선의 승리는 인간의 몸을 포함한 물질 세계에 악이 미친 영향을 정화한다. 원래부터 선하게 창조된 세계는 처음의 모습을 되찾고 인간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지복의 상태로 들어간다.

이와 같이 본의 아니게 선의 대항력을 깨우고 선의 승리를 촉진한다는 역설적인 악의 기능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사로잡았던 것 같다. 사탄은 악의 화신으로서 기독교의 형성과 역사에 중대한 역할을 담당하며, 그후 수없이 변형된 형태로 18~19세기 유럽 문학의 유명한 등장인물이 된다. 한편 악마 숭배에 대한 경계가 정통 종교에서 줄기차게 나타나는 것도 흥미롭다. 악에 이끌리는 것은 왜일까? 힘에 대한 숭상일까? 심리적인 원리일까? 거부할수록 더욱 이끌리는 것을 우리는 마력이라고 부른다.

 

 

인간의 일

선악의 우주적 투쟁 신화에서 인간의 위치를 살펴보자. 이란의 신학자들은 이원론적 우주론에서 인간의 위치를 신의 선한 아들 오르마즈드의 가장 강력한 조력자로 배정한다. 인간은 선하고 완전하게 창조된 원초적 인간의 자식으로서 불멸의 영혼과 육체를 부여받았다. 다만 악이 육체를 오염시켜 죽음을 초래했을 뿐 몸은 영혼과 유사한 실체로부터 창조된 것이다. 영혼은 몸을 통해 활동하고 장차 기운차게 몸을 회복시킬 것이다. 인간은 선과 악을 자유롭게 선택함으로써 자신의 구원을 보증할 뿐만 아니라 오르마즈드가 펼치는 구원의 사업에 동참할 수 있다.

유대 종말론에서 구원은 오로지 야훼의 일이다. 유대 묵시문학에서 인간은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실현될 영적인 완전성에 대한 어떠한 기대도 포기하고, 전능한 하느님과 그의 구원의 약속에 대한 믿음을 더욱 두텁게 하고자 했다. 종말의 때에 그들이 열광하며 기다렸던 세계의 변용이 일어나면 인간은 간접적이거나 거의 자동적으로 완전하게 바뀔 것이었다. 구원론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유대의 종말론은 이란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모든 종말론이 가지고 있는 “창조를 통한 세계의 갱신과 원초적 인간의 완전성으로의 회귀라는 주제”를 공유한다.

 

 

풀리지 않는 문제

이란과 유대의 두 종교에 나타난 악의 기원 신화를 비교하면서, 죄의식과 결부되지 않은 악을 생각해 본다. 이란 주르반교 신화에서 악은 있을 법한 실재이다. 그리고 악의 공격을 받았다고 해도 창조는 그 자체로 선한 것이며, 정화되고 회복될 만한 미덕이다. 선과 악이 모두 창조된 것이고 이 세상도 창조된 것이다. 이란의 종교는 창조의 귀중한 가치를 주장한다. 이에 비해, 악이 있을 만한 것이 아니고,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볼 때 악은 죄와 결부되며 죄의식이 발생한다. 그러나 악을 죄와 결부시키지 않는 종교에서 볼 수 있듯이, 악의 위험에서 자유롭기를 소망한다고 해서 꼭 죄의식에 시달릴 필요는 없을 것이다. 죄의식에 시달리면서도 악에 대항하는 영혼의 힘을 더 활달하게 키울 가능성이 생길 수 있을까? 죄의식은 어두운 감정이고 이란 주르반교의 악신 아리만의 속성인 그림자를 닮았다. 선이 악과 교대하고 악이 무력화되는 원리가 생각보다 복잡하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