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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코 혹은 예술의 탄생/마네』라스코, 인간다움의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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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오켜니 작성일25-10-14 07:43 조회5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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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인류학 조르주 바타유, 라스코 혹은 예술의 탄생/마네/2025.10.14./오켜니

 

라스코, 인간다움의 완성

 

라스코 벽화보다 더 완벽하고 인간다운 발명품은 없다. 동굴의 바위들이 우리네 삶의 시작을 증언하고 있는 셈이다.(p40)

주권적인 라스코인의 삶(p42)

동물적 삶의 움직임을 그려낸 풍요롭고 한량없는 라스코의 이 벽화들 앞에 서 있는 지금, 이 풍요로운 움직임을 그림으로 품었던 라스코인들이 어찌 가난 때문에 고통받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들의 삶이 환희의 분출로 채워지지 않았었다면, 어찌 그 삶이 이토록 단단한 힘이 서린 그림으로 표현될 수 있었겠는가? 하지만 우리가 보기에 분명한 것은, 그 삶이 라스코인들을 인간다운 방향으로 움직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동물성의 이미지 역시 인간답다. 동물성이 구현한 삶은 동물성 안에서 아름답게 그려진 것이고, 실제로 아름다웠으며, 그러므로 주권적이었기 때문이다. 이 삶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비참함의 저편에 있다.

주권적이란?(p42)

누구에게도 무엇에도 종속되지 않은 상태, 자기 자신이 전권을 휘두를 수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 바타유는 특히 현대 인간이 모두 노동과 미래를 위한 기획에 예속되어 있기 때문에 주권적이지 못하다고 비판하며, 예술과 문학, 웃음, 에로티슴 등 그가 내적 경험혹은 소통이라고 말하는 것들을 통해 주권성에 닿을 것을 역설한다.

호모 파베르

호모 사피엔스

인간이 짐승으로부터 서서히 분리되는 과정 중

짐승과 명확히 구분됨

웃는 법을 알았을까?

고통의 누그러짐에서 웃음의 탄생

호모 파베르(도구의 탄생),

예술의 탄생

생존 활동

생존에 목적을 둔 세계에 대한 항의(예술, 놀이)

50만 년 전 호모 파베르의 등장

호모 사피엔스, 후기 구석기 시대에 등장(5만 년 전)

 

네 번째 빙하기(뷔름 빙하기) 이후 날씨가 온화해짐

 

호모 사피엔스 출현 이후에 물질문명(도구와 노동의 수준)에는 큰 차이가 없었지만, 예술과 놀이 활동으로 이전의 세계는 전복되었음

중기 구석기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어른과 아이 무덤(유럽과 팔레스타인)

- 금기의 작동

- 인간의 유해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임

물건의 분류

신성하고 금지된 것 vs 세속적이고 제한없이 접근 가능한 것

노동의 세계는 성과 죽음의 세계와 대립한다

노동 때문에 인식능력이 발전함

사피엔스의 구분점은 인식이 아니라 예술(미학적 활동)에 방점이 있다, 호모 루덴스

 

놀이-인간, 웃고 유혹하는 인간

아무튼 인간이 자신의 자부심을 그대로 결부시킨 모습으로써의 신체적 용모를 띠게 된 것은, 놀이할 때부터, 그리고 놀이함으로써 놀이에 영속성을 부여하고 예술 작품에 경이로움을 불어넣게 된 때부터다.(p68)

놀이는, 그것이 매번 일시적으로나마 서글픈 욕구에 따른 것이었다 하더라고, 우리를 해방시켰고, 우리로 하여금 어떻게든 풍요로음의 경이로운 표출에 다가서도록, 그리고 그럼으로써 각자가 비로소 탄생했음을 느끼도록 했다.(p69)

금기는 노동으로 조직된 세계를 죽음과 성을 끊임없이 끌어들이는 혼란들로부터 보호함으로써 노동 세계를 유지시킨다.(p69)

금기 앞에서 물러서거나 멈춰 서는 태도에 대한 필연적 반대급부로서 일종의 위반이라는 움직임이 존재했다.(p70)

 

위반은 예술이 스스로를 발현시킨 순간에서부터만 존재하는 것이며, 예술의 탄생은 순록 시대에 있어서는 놀이와 축제의 소란과 맞닿는다는 사실을, 동굴 깊숙한 곳의 형상들에서 삶은 빛나며, 삶이란 늘 죽음과 탄생의 놀이 속에서 스스로를 극복하고 완성시킨다.(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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