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코 혹은 예술의 탄생/마네]를 읽고 생각한 것 > 목요 인문세 대중지성

목요 인문세 대중지성

홈 > Tg스쿨 > 목요 인문세 대중지성

[라스코 혹은 예술의 탄생/마네]를 읽고 생각한 것

페이지 정보

작성자 coolyule 작성일25-10-14 17:49 조회37회 댓글0건

첨부파일

본문

수요 종교인류학 김유리 2025-10-14

 

 

조르주 바타유의 “라스코 혹은 예술의 탄생”을 읽으며 생각한 것

 

 

“지금까지 알려진 모든 인류에게 있어 노동의 세계는 성과 죽음의 세계와 대립되며, 인류는 언제나 바로 이 지점에서 지금의 우리와 일치한다……. 노동에 필수 불가결한 조건인 사태들의 질서를 교란시키는 것, 고정적이고 따로따로 명확히 구분되어 있는 물건들의 세계에 동질적이지 않은 것, 탈주하거나 돌발하는 삶 같은 것들은 즉시 격리되었어야 했으며, 경우에 따라 불길한 것, 성가신 것, 신성한 것으로 여겨졌다. 굳이 말하자면, 성적인 것과 신성한 것 사이에 명확한 구분은 없다……. 여전히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신성이라는 이 문제적 영역은, 노동에 종속되지 않은 삶이라는 이유로 동물적 삶으로 환원되어 버렸다는 사실을 말이다. 지금 이 책에서 우리를 홀리고 있는 것 역시 바로 이 문제적 영역이 풍기는 마력-라스코동굴의 마력-이다(62).”

 

조르주 바타유가 “라스코 혹은 예술의 탄생”에서 금기에 대해 설명한 위 문장들을 읽으며 깜짝 놀랐다. 선사 인류들이 동물에서 인간으로 변하는 과정을 따라 읽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인간은 노동하기 위해 자기를 홀리는 영역을 금기로 제한해두어야 했는데, 노동에 도움이 되지 않는 영역인 죽음과 성을 신성 또는 동물성으로 바꾸었다. 그런데 그러한 영역들에 홀리듯 이끌리는 것이 인간의 속성이었다. 그러니까 바타유의 설명 속에서 인간은 신적이고 동물적이라는 주장에 도착하는 것 같아서 흠칫했다.

바타유는 인간을 동물이 아닌 인간이게 하는 것을 지능과 외형이라고 보는 견해와 함께 놀이를 추가하여 강조했다. 도구와 노동의 인간 호모 파베르가 생존에 유용한 것과는 반대되는 가치를 지닌 놀이 활동을 할 때 예술이 탄생한다. 인간은 도구를 써서 무기와 작업 장비 같은 것을 만들고, 지시 언어를 써서 사물을 고정시키고 추상화해왔다. 그런데 인간은 예술작품을 만들어냄으로써 분리했던 즉각적 감각성을 되찾는다고 한다. 바타유는 라스코 벽화에서 예술의 탄생을 감지한다. 노동하는 인간다움을 초월하는 모든 것이 거기에 있다. 여기서 다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죽음, 성, 도취, 기적의 출현 등이 그것이다.

인류학자들이 인간을 동물로부터 분리하는 면면에 관심을 기울이고 설명하는 한편으로 인간은 동물성(또는 비인간성) 속에서 자신의 인간다움을 만끽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라스코 ‘동굴 인간’은 알고 보니 ‘순록 인간’이었다. 라스코동굴이 있는 베제르 계곡은 후기 구석기 시대에 순록 무리들이 봄철 오르베르뉴의 목초지로 이동하는 통로였을 것이라고 한다. 순록의 장엄한 이동은 계곡 거주자들에게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빙하기의 시베리아 같은 추위에 찾아온 봄날, 순록의 대이동이 만들어내는 진동과 광경 속에서 그들은 최초로 인간다운 삶을 경험하였을 것이라고 한다. 빙하기 이후의 인간은 바타이유에 의하면 순록이 낳은 결과다. 벽화가 많이 나온 이 시대를 순록의 시대라고 부르는 까닭이다. 인간은 순록이 낳았다.

바타유는 인간이 풍요롭고 햔량없는 동물적인 삶의 움직임을 동굴 그림으로 품었다고 한다. 동물성이 구현하는 삶이 바위에 출현한 것이다. “큰 어려움을 해결해내는 천재적 재능과 행복감의 결과가 이렇게 뚜렷이 나타나기도 드문 일이다. 라스코 벽화보다 더 완벽하고 인간다운 발명품은 없다. 동굴의 바위들이 우리네 삶의 시작을 증언하고 있는 셈이다(40).” 예술이란 순록 인간과 바위의 결혼으로 탄생한 것이라고 표현해도 될까?

라스코동굴은 오랫동안 숨겨져 있다가 2만 년 후에 발견되었다. 나무뿌리가 뽑혀 생긴 틈 안으로 기어 들어갔던 마을 아이들이 이 그림들을 발견했다. “천일야화의 보물과 같은 이 동굴로 이끄는 길(23)"을 안내한 것은 나무뿌리였다. 바타유의 표현을 읽다보면 인류는 동물이 낳았고, 예술은 순록이 바위와 결혼해서 낳았고, 나무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 같은 연결하는 상상을 하게 된다.

 

“‘라스코인’은 무에서 예술의 세계를 창조했으며, 이 세계에서 정신들의 소통이 시작된다. 그리하여 ‘라스코인’은 자기의 먼 후손인 현재의 인류와도 소통하고 있다(18).”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