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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종교사상사] 수업 후기 "베단타, 상키야, 요가 학파"의 구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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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coolyule 작성일25-07-22 14:05 조회3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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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인류학』수업 후기 2025-7-22 김유리

 

브라만교와 힌두교

: 아리아화된 인도의 종교 사상에 나타난 최초의 철학과 구제의 기법

 

 

인간은 왜 괴로운 것일까?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괴로움의 원인을 뇌과학, 장내미생물, 정신분석, 의학적 진단 등에서 찾는다. 해결책은 휴식, 상담, 약물, 즐길거리 등에서 찾는다. 그런데 그것은 종교가 오랫동안 담당해온 분야다. 붓다 출현 이전 축의 시대 인도의 종교 사상은 고통에 대한 형이상학적 인식과 구제 기법에 천착했다. 

 

“인간은 자기 스스로 만든 세계 속에서 태어났다.”(『샤타파타 브라흐마나』) 인간은 무지 때문에 자기가 만든 세계 속에서 고통받는다. 브라만교에서 유래한 세 학파인 베단타(우파니샤드), 상키아, 요가 학파는 위 명제를 밝히고 해법을 찾고자 했다. 보편적인 고통에서 인간을 구원하지 못하는 지식은 의미가 없었다.

무지는 고통의 원인이고 지식은 해탈로 가는 길이다. 인간을 고통 받는 존재로 보는 것은 비관론이다. 하지만 고통에서 벗어날 방법이 있다고 보는 것은 낙관론이다. 한편, 존재의 고통의 원인을 내부에서 찾는다는 점이 흥미롭다. 인도의 종교사상에서 구원은 “눈뜸”, 혹은 “처음부터 존재하고 있었지만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던 상태에 대한 인식을 획득”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베단타(베다의 끝)의 구원론

 

베단타(우파니샤드)는 세계의 다양한 “실재”는 마야(환상)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브라흐만만이 실재한다. 수행자는 요가적 명상 수행을 통해 자신에게서 브라흐만과 동일한 아트만을 직관할 수 있다. 베단타의 중요한 통찰은 브라흐만과 아트만의 동일성이다. 그것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려는 노력들이 펼쳐진다.

 

상키야-요가학파의 학설

 

상키야 및 요가 학파가 베단타 학파와 다른 점은 세계가 실재라고 주장하는 점이다. 그러나 세계가 지속되는 이유는 정신의 무지 때문이다.

 

〇창조는 프라크리티의 전개

 

프라크리티(원초적 실체)는 실재하고 영원하다. 프라크리티는 역동적이고 창조적이다. 균질하고 평형 상태에 있는 프라크리티가 스스로 (1)위대한 에너지 덩어리로 자신을 드러내고 (2)지각능력이 있는 단일한 덩어리로 발전한 후 (3)외적 우주와 내적 우주를 창조한다. 원초적 실체는 자체의 전개 운동의 과정에서 개별화된 지각능력으로 뭉쳐진다. 이 뭉치는 내적 우주와 외적 우주라는 두 갈래의 세계를 창조한다. 원초적 실체는 무한히 복잡하고 차이나는 형태들을 계속 생성시킨다. 우주와 함께 인간도 자아로 뭉쳐진 후 신체와 지성의 구조와 활동을 갖춘다. 이 우주론에서 우주와 인간은 정도의 차이만 가진다.

-> 물질도 정신도 프라크리티의 창조 결과다. 물성과 심성이 같은 것이다. 우주론과 인간론이 종합되어 있다.

-> 개별화와 고통. 개물individual은 괴롭다. 에고를 가지면 괴롭다. 나와 다른 것 사이에서 부딪치면 아픈 것이다. 존재의 고통은 존재론적 동등성이다.

 

〇프라크리티와 푸루샤의 관계: 창조의 목적은 정신의 해탈

 

전 우주의 무수하고 복잡한 형태들은 정신(푸루샤)을 위해 생겨났다. 모든 물질적이거나 비물질적인 형태들은 정신이 지고의 인식에 도달하는 것을 돕도록 창조되어 있다.

 

〇지성과 영성

붓디(지성)은 푸루샤(정신)을 반영한다. 수정(지성)에 꽃(정신)이 비친 것과 같다. 무지한 자는 수정을 꽃이라고 오해한다. 정신은 영겁의 과거부터 환상의 포로가 되어있다. 정신은 영원하고, 부동한다. 정신은 원하거나 미워하지 않는데, 인간은 ‘나는 원한다’, ‘나는 미워한다’라고 생각한다. 환상은 환상을 낳고 환상으로 생겨난 행위는 또 다른 행동을 일으킨다.

정신은 심리와 같지 않다. 정신을 정신 아닌 것과 구분하는 인식이 괴로움을 소멸시킨다. 키는 길이다. 올바른 인식은 계시에 의해 얻어진다. 계시의 직전 단계는 지성의 작용이다. 지성의 활동은 해탈을 촉진한다. 지성은 정신이 아니지만, 정신은 지성이 아니고는 드러나지 않는다.

신적 지성에서 파생된 개체의 지성이 지고의 상태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이 고통의 원인이다. 무지는 세계의 지속의 원인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세계는 정신의 해탈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브라만에서부터 마지막 풀잎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은 정신이 지고의 인식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창조되어 있기 때문이다.”(『상키야수트라』)

축의 시대에 영적 합일에 대한 갈구가 높아진다. 해탈하여 보편적 고통을 넘어가는 개인의 구원이 공통의 화두가 되었다. 축의 시대의 현자들은 인간이 자기를 벗고 지혜와 진리를 추구함으로써 구원에 이른다고 여겼다.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을 쓴 미국 종교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모든 종교가 신비주의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종교에는 지적 활동을 찢고 폭발하는 영적 체험이 존재한다. 참된 의식은 (1)의지적인 것일 수 없다. (2)일시적이지만 압도적이어서 그 이후의 삶을 바꾼다. (3)논리를 초월한 인식이다. 그것은 신적 차원의 정신 작용이다. 지성을 넘어선 영성의 차원의 경험이다.

 

〇푸루샤 개념의 도입

푸루샤(정신)는 순수하고 영원하고 자유롭다. 푸루샤는 자율적이고 무관심하다. 그것은 얽매이지도 않고 활동적이지도 않다. 자신의 해탈을 적극적으로 추구하지도 않는다. 관계도 맺지 않고 사로잡히는 일도 없다. 고통은 정신의 외부에 존재한다. 해탈은 사람이 정신의 영원한 자유를 자각하는 일이다. 정신에 대한 올바른 인식으로 괴로움은 소멸한다.

엘리아데는 종교 사상의 교리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종교 사상에 새로 개념이 들어오는 과정을 보여준다. 푸루샤는 해탈을 위해 생겨난 개념이다. 힌두교는 우주론적 철학으로 구원론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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