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종교사상사2] 20장 발제 로마의 비극과 번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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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딥바둑 작성일25-08-05 15:23 조회49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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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종교사상사 20장 발제 이성근_로마의 비극과 번영.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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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인류학 『세계종교사상사2』 20장 발제 2025-08-20 이성근
로마의 비극과 번영
빠르게 흡수해서 철저히 실용노선을 택했던 로마의 종교
현대 문명은 유럽의 합리적이고 실전적인 과학문명과 자본주의가 주도하고 있다. 그들의 문화는 상당부분 로마에서 왔다. 도대체 로마는 어떤 종교적 특징이 있었기에 무려 2200년간 존속할 수 있었을까?
161. 로물루스와 희생제물
로마는 기원전 756년 우르부스에서 건국되었다. 토착 신석기인들과 인도-유럽의 침략자들의 두 인종의 융합에서 비롯되었는데, 이것은 제국의 2200년 통틀어 역사의 민족적, 문화적, 종교적 과제였다.
신화를 살펴보면, 로마 건국은 로물로스가 쌍둥이 형제 레무스를 죽여서 시작되었다. 삼촌의 배반으로 실비아는 강제로 여사제가 되었다. 그리고 마르스신에 의해 임신이 되었고, 로물로스와 레무스를 낳았다. 티베르 강둑에 버려진 아이는 늑대의 젖으로 키워졌고, 양치기에 의해 구조된다. 성인된 그들은 힘을 합하여, 삼촌을 제거하고, 아버지를 왕으로 복기시켰다.
그들은 어린 시절 보냈던 곳으로 돌아가 도시를 세우기로 결심하고, 점을 친다. 거기서 레무스는 점복의 신호인 6마리 독수리를 보았다. 숫자 6의 의미는 서양의 수비학으로 보면, 배우자를 ‘선택할 수 있음’ 이다. 그래서 타로카드에서 Lover로 널리 그려졌고, 그만큼 능력이 있고, 가정을 꾸리고 양육과 교육할 수 있는 강력한 카드이다.
그런데 로물로스는 12마리의 독수리를 보았다. 12의 의미는 1을 뜻하는 내가 2를 뜻하는 사회의 기준을 3으로 강력히 펼친다는 뜻이다. 타로카드에서는 Hangman 으로 거꾸로 세상을 달리 봐서 자신의 원칙을 정하는 강력한 카드이다.
그래서 그런지, 로물로스는 자신의 성벽을 넘은 레무스를 죽이고 ‘로마’를 세운다. 여기서 우리가 살펴야할 것은 역사적으로 반복되고 있는 ‘희생’과 ‘재창조’이다. 삼촌의 배신으로 험난한 어린생활를 보냈고, 이는 영웅이 극복해야 할 입문의레적 시련이
다. 그리고 결국 협력했던 쌍둥이 형제를 죽여 그의 희생은 제국의 창조로 이어졌다.
이 신화는 로마인의 뿌리 깊은 의식에 영향을 주었다. 피의 희생을 통해 로마인들은 자신에게 저주라는 짐이 지워져 있다고 믿게 된 것이다.
162. 인도-유럽 신화의 “역사화”
로마인들은 인도-유럽신화의 위대한 주제들을 “역사화”시켰다. 이는 로마인들의 비형이상학적이고 현실적인 종교성을 보여준다. 그렇다. 이들은 눈에 보이는 우주적 삶과 역사가 드러나는 직접적인 실재들에 열광했다. 무언가 전조로 보이는 현상들, 특히 의례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그들은 인도-유럽 민족에게서도 확인되는 3기능을 가지는 신들을 숭배했다.
첫째, 주술적/법률적 지배기능(유피테르, 바루나/미트라, 오딘) > 사제
둘째, 전쟁을 주관하는 전사신(마르스, 인드라, 토르) > 전사
셋째, 다산과 번영을 반영하는 신들(퀴리누스, 쌍둥이 나사티야, 프레이르) > 목축/농경민
이러한 신들은 스칸디나비안 인들의 신화와 무척 유사하다. 그래서 이러한 유사성을 볼 때, 로마 종교의 기원을 원시적 신앙에서 찾아서는 안 된다고 엘리아데는 말하고 있다.
163. 로마 종교성의 고유한 특징들
로마인들은 이상적인 규범이 연례적인 순환의 규칙성과 계절의 연속성에서 드러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비정상적이고 불가사의한 것들은 신들과 인간들 사이의 관계에 있어서 위기를 암시한다. 그것을 해석하는 예언기술이 매우 중요해졌는데, 오직 집정관들이나 군 통솔자들만 그것을 설명할 수 있었다. 때로 그들은 그것을 자신의 입맛에 맞게 무시하곤 했다.
이러한 기이한 사건들은 점점 구체화되고 개별화되며 신들은 더욱 많아졌고 복잡해졌다. 예를 들어 어떤 신들은 태어난 아기가 울고 말하도록 돕고, 어떤 신들은 아이가 먹고 마시는 것을 돕는다.
로마인들의 이렇게 구체적이고 실용주의적 특징은 무엇보다 가족, 씨족, 조국이라는 집단의 “신성화”를 특징으로 한다. 점점 나라가 팽창되고 많은 노예를 거느리면서 국가를 위한 집단과의 관계가 매우 중요해졌다. 이는 개인적인 인간에 대한 평가절하로 나타났는데, 후대에 그리스 철학과 오리엔트 의례에 의해서 개인의 인격이 갖는 종교적인 중요성을 발견했다.
타인과 관계를 중시하는 성격은 “피에타스”라는 용어에 의해 표현된다. ‘평화롭게 하다’, ‘불결함을 제거하다’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즉 의례들과 규범들을 매우 중요시했고, 일례로 아들은 아버지에게 무조건 복종해야 했다. 이를 어긴다면 자연의 질서에 반하는 흉악무도한 행위로 여겨졌다. 아마도 이는 그동안 무수한 신화들 속에서 아들이 아버지를 배반하고 왕위를 찬탈하는 행위를 뿌리봅기 위한 로마인들의 방책이 아니었을까 싶다.
164. 사적인 의례: 페나테스, 라레스, 마네스
화덕을 중심으로 수행된 가정의례는 로마 역사상 거의 변화가 없었다. 매일같이 음색 제물을 올렸고, 한 달에 세 번은 꽃을 받쳤다. 바로 가족의 수호신 페나테스와 집이 수호신인 라레스에게 드려졌다.
죽은 자의 영혼 마네스에 대한 정기의례를 살펴보자. 2월의 대축제인 “파렌탈리아” 동안에는 신전들은 폐쇄되고, 어떠한 결혼도 이뤄지지 않는다. 죽은 자는 땅으로 돌아와 자신의 무덤에서 음식을 먹는다. 고대 로마의 달력에서 2월은 마지막 달이다. 두 개의 시간적 순환 사이에 놓여있기에, “혼돈적이고, 유동적인” 상태에 놓인다. 그래서 죽은 자들은 땅으로 돌아올 수 있다.
동양에서도 최고의 명절 중 하나가 바로 음력1월 1일 “정월 초하루”이다. 절기로는 새해를 여는 ‘입춘’이고, 양력으로 보면 역시 2월 달이다. 2월을 명리학에서는 인월(寅月)로 부르며, 호랑이가 꿈틀거리며 봄을 시작하는 달로 보았다.
마네스와 관련된 또 다른 의례인 “데보티오”를 살펴보자. 전쟁의 승리를 위해 진행되었으며, 집정관은 자신의 생명과 적군의 병사들을 제물로 받친다. 이는 “창조적 살해”로서 인간 희생이라는 고대의 개념을 보여준다.
165. 사제, 점복관, 신도 집단
왕은 사제 계급중의 최고의 지위를 가졌다. 일명 “사제왕” 이었다. 왕의 집은 집회 장소였고, 왕의 역할은 대사제들이 행하는 기능들을 한데 모으는 것이었다. 로마의 종교는 “분화와 특화”를 중요시했기에 수많은 사제들마다 제각기 엄청나게 다양한 역할이 부여되었다.
예를 들어 대사제들 다음 계급으로 “유피테르의 사제들”은 로마를 떠날 수 없었고, ‘이음새’가 있는 어떤 것도 입을 수 없었다. 또한 군대를 봐서도 안 되고, 불결한 것, 죽음 등을 암시하는 어떤 것하고도 접촉을 해서는 안되었다.
사제들은 “역사적 밖에서” 자신들의 의무를 다했다. 새로운 상황을 해석하거나 해결할 만한 힘을 갖지 못했다. 사제단(최고 신관)은 종교적 행위와 관련된 회의에 참여했고, 축제를 관장했다. 또한 대사제들과 베스탈들을 뽑고 가르칠 수 있었다. 6명의 베스탈들은 사제단에 속해있었는데 6-10세 소녀들 중 사제단에 선택을 당하여, 30년간 순결을 강요받았다. 그들은 도시의 불꽃을 절대로 꺼지지 않게 지켜야했다. 만약 순결을 지키지 못하면, 산채로 매장 당했다.
하늘의 의지를 해석하거나, 새로운 징조를 해석하는 것은 점복관의 역할이었다. 사제단만큼이나 오래되고 독립적이었는데, 이들은 미래를 알아내는 것을 요구받지는 않았다. 여러 종교관련 일들이 적절한지만 밝혀내면 되었다.
신도 집단들은 공적 의례를 행하는 다수의 폐쇄된 집단들이었다. 국제법과 외교, 전쟁과 평화등과 관련된 임무를 수행했다.
166. 유피테르, 마르스, 퀴리누스 그리고 카피톨리움의 삼위신
그리스와 다르게 역사시대가 시작되어서야, 로마인들은 고대의 삼위신(유피테르, 마르스, 퀴리누스)들과 야누스, 베스타를 더해 위계 조직을 만들었다. 유피테르는 성스러움의 근원으로 번개를 내리고, 정의를 수호한다. 또한 우주적인 다산과 창조를 보증한다. 마르스는 전쟁을 관장한다. 그들은 자신의 영역을 넘어서 “제국주의적” 경향을 보여준다. 퀴리누스는 풍요와 다산을 상징한다.
야누스는 “태초”를 수호하는 신이다. 프리마(최초의 것)은 유피테르가 가지고 있는 숨마(최고의 것)에 가치가 낮다. 그러나 그는 한해의 시작을 지배하고, 모든 것은 “떠나고 들어감”이 있기에 두 개의 얼굴을 가졌다고 상상되었다.
베스타는 “태우다”라는 인도-유럽어의 어근에서 유래했다. 로마의 화덕을 구성하고, 여신들의 모든 힘은 땅에서 나온다. 그런데 신상은 없다. 왜냐하면 모든 로마신은 신상이 없다.
에트루리아의 지해 하에 삼위신이 “유피테르, 유노, 미네르바”로 바뀌었다. 유노는 로마의 여신 중 가장 중요한 위치를 갖는다. “생명력”을 뜻하는 어근에서 비롯되었고, 한 달의 시작, 달의 “재생” 등과 관련된 다양한 축제를 다스린다. 그리고 인도-유럽적 이데올로기의 세가지 기능인 “왕권, 군사력, 풍요”의 역할을 모두 맡아 조정한다고 ‘뒤메질’은 말한다.
미네르바는 예술과 예술가들을 수호한다.
167. 에트루리아인들: 수수께끼와 가설들
로마는 초창기부터 상당히 발전된 문명의 에트루리아와 만났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의 언어를 모르기에 후대 라틴어로 된 자료들로 추정, 짐작 하고 있다. 그들의 문명은 철기와 함께, 요새화된 도시를 짓고, 대형 함대를 보유했다. 정치체제는 도시들의 연합체제였고, 여러 인종들의 섞여 살았다. 또한 예술과 종교에 한해서는 그리스와 로마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
특이점은 거들은 오리엔트적 기원을 갖는 신화를 가지고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점복술이 발달하였다.
무덤들은 살아있는 거주자들의 도시 옆에 세워졌다. 남성의 무덤은 무기로, 여성의 무덤은 보석으로 치장되었고, 여성들이 우월한 지위를 차지했다. 그들은 얼굴을 가리지 않았고, 만찬에 참석하는 등 많은 자유를 누렸다.
기원전 1세기, 초자연적인 계시들을 책에 보존했다. 「천둥번개의 책」, 「내장점에 관한 책」, 「운명의 책」 등등.
번개의 교의는 하늘을 16개 구역으로 나누어 기상현상을 관측하고, 각기 다른 번개들은 각각의 신들에 조정되며 의미를 밝혔다.
내장점은 희생자의 내장에 나타난 징조들을 해석하여, 신-우주-인간의 3가지 지평의 준거점들 간의 일치를 가정한다. 그래서 인간의 오장육부의 특징으로 역사적 사건을 예언했다. 이러한 대우주-소우주의 상응이론은 후대 헬레니즘 과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운명의 책」에 의하면, 인간의 생명은 12단계에 걸쳐 전개되는데, 모든 단계를 지나면 사람들은 영혼으로부터 빠져나오고, 신들도 더 이상 신호를 안 보낸다고 한다. 여기서 신기한 것은 동양의 고대 명리학도 ‘대운’을 12단계로 나누어서 새로운 운을 10년마다 받는다고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음양오행의 기법으로 도교에서도 120세를 인간의 천수(天壽)로 보고 있다.
기원전 4세기부터는 그리스 문명의 영감을 받아 무덤에 사후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죽으면 다른 세계로 인도되는데, 동물을 희생하여 그 피를 신들에게 받침으로서 영혼이 신성해지고, 즐거움으로 충만한 사후의 삶을 알게 된다.
168. 위기와 재난들: 갈리아 지역의 지배에서 제2차 포에니 전쟁까지
기원전 496년경, 에트루리아인 마지막 왕이 추방되고 공화정이 시작된 후, 새로운 삼위신(케레스, 레베르, 리베라)를 위한 신전이 세워졌다. ‘케레스’의 어원은 인격화된 성장을 의미한다. ‘리베르’는 출생과 추수를 보증해주는 사람이다. 이들은 생식과 우주적인 풍요를 도와준다. 그러나 이 삼위신은 데메테르, 디오니소스, 페르세포네로 구성된 삼위신에게 동화된다. 또한 로마인들은 그 전부터 그리스 신들을 빠르게 동화시켰다. 전쟁이 끊이지 않고, 정세가 불안한 시기에 그들은 빠르게 ‘신’의 도움을 빌어 해결하고자 했을 것이다.
기원전 4세기, 무려 25년간 켈트족의 침입은 헬레니즘과 접촉을 방해했고, 로마를 철저히 폐허로 만들었다. 커다란 위기는 새로운 기회를 불러오는 것이 순환의 원리이다. 기원전 295년경, 로마는 드디어 갈리아의 지배에서 해방되었고, 영토 확장으로 이탈리아 지역에서 가장 큰 세력이 되었다. 그러나 제2차 포에니 전쟁은 로마의 존립을 위협하게 되었고, 이때 종교는 심각한 변화를 겪는다. 그들은 모든 신들에게 기도를 올렸다. 그들에게 전쟁의 패배는 의례의 과오로 인한 것이었다. 「시빌라의 신탁집」의 지시에 따라, 인간을 희생하는 등등 수많은 수단들을 강구했다. 또한 최초로 아시아의 신인 ‘키벨레’를 도입했다.
기원전4세기 이후 지중해 전역에서 그랬듯이, 로마에서도 개인의 종교적 경험에 대한 필요성이 커졌다. 이것은 “비의 종교” 형태로 널리 퍼졌고, 원로원들은 강력히 이것을 통제했다. 기원전 186년에 열린 바쿠스제(오르지적인 신비의례)를 발견하고, 수천 명을 처형했다. 그들은 자신의 통제하에 놓이지 않는 종교들을 심하게 의심했고, 철저히 탄압했다. 이는 300년 후 기독교인들의 박해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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