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와 비극> 11강 2교시 수업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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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나침반 작성일25-07-01 20:19 조회55회 댓글0건본문
<윤리와 비극> 11강 2교시 수업 후기
이번 주 비극 수업 내용은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였다. 이 작품은 가족법으로 오빠의 장례를 지내려는 안티고네와 이를 국법으로 막으려는 크레온의 대립을 다루고 있다. 수업 초반에는 이 대립을 역지사지로 생각할 수 있는가? 에 관하여 숙고하였다. 역지사지란 타인의 입장을 고려해서 이 입장에서 저 입장으로 평평하게 되돌아가는 것이 가능할 때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신법과 국법 둘 다 양립할 수 있을 때 역지사지가 가능하다. 국법은 국가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서 반역자는 매장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신법은 신의 이름으로 누구나 매장을 해야 한다. 이렇게 신법과 국법은 서로 양립할 수가 없어서 팽팽히 맞선다. 역지사지의 개념을 면밀하게 따져 본 결과 국법과 신법의 대립이 더욱 선명해졌다.
둘의 대립은 작품의 비극성을 예고하고 있다. 안티고네는 국법에 반하여 오빠를 매장하고 리빙데드가 되어 감옥에 갇힌 후 자살한다. 죽은 후 그녀의 행위는 사람들 사이에서 숭고한 행위로 칭송받는다. 그러나 국법을 지키려던 크레온은 안티고네로 인해 국가 공동체가 흔들리게 되고 자식과 아내가 죽고 리빙데드로 전락하는 반전이 일어난다. 크레온의 비극은 너무 늦게 안티고네를 풀어주려고 한 것이었다. 이런 앎의 지연이 그를 파멸로 몰아넣었다. 그러나 이러한 무지가 우리 삶의 조건이라고 한다. 칸트는 신앙을 위해서 지식을 폐기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무지의 상태에서 윤리적 행위를 먼저 하고 살아가야 하는 존재인 것이다. 막막함을 느낄 때 이런 우리 삶의 조건을 긍정하면 조금은 위로가 될 거 같다.
안티고네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국법으로 금지된 오빠의 장례에 관하여 안티고네와 이스메네가 나누는 대화였다. 이스메네는 “나는 지하에 계시는 오빠에게 용서를 빌고 통치자들에게 복종할래요!”라고 말하며 국법에 순응한다. 그러나 안티고네는 “나는 아무리 괴로운 일을 당하더라도 비열하게 죽고 싶지 않아!”라며 오빠를 매장할 결심을 한다. 안티고네가 이렇게 말하는 장면이 칸트가 말하는 주체의 자유가 드러나는 윤리적 순간이라고 한다. 국법에 맞서 신의 불문율인 혈족의 장례를 지내려는 안티고네는 목숨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에 반해 이스메네는 국법을 따른다. 이스메네의 모습에서 사회가 요구하는 것을 그대로 따르며 기계처럼 살아가는 내 모습이 보여 마음이 불편해진다. 그러나 안티고네처럼 목숨까지 담보하며 윤리적 주체로서 자유를 발휘할 자신은 없다. 칸트의 자유가 너무 크고 무겁게 다가온다. 생명까지 걸어야만 자유를 발휘할 수 있는 것인가? 라고 다른 샘이 질문하셨다. 이 질문에 대해서 수영 샘은 비극에서는 죽음으로 상정되었지만, 우리 삶으로 이야기하면 매 순간 죽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한다. 어느 순간 어떤 공간에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자기의 정체성을 다 버리고 새로운 공간으로 올 때가 자유를 실현하는 순간이라고 한다. 그러나 새로운 공간에 와서도 생활하다 보면 또 새로운 정념이 생겨나서 다시 깨져야 한다고 한다. 이 설명으로 칸트의 자유가 조금은 가볍게 느껴졌다. 그러나 공부의 장을 찾아왔음에도 정념들이 나를 짓누른다. 정체성을 버리고 윤리적 주체가 되는 순간이 다가올지 의문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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