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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와 비극> 13강 『오셀로』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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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소정 작성일25-07-09 22:24 조회4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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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과 오셀로, 그리고 근대인을 생각하다

 

 

오늘 세미나에서는 햄릿을 가지고 먼저 얘기하였습니다. 햄릿은 12장의 첫 번째 독백에서 약한 자여, 그대의 이름은 여자이니라!’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대사를 약한 자여, 그대의 이름은 근대인이니라!’라고 바꿔야 하지 않을까합니다.

햄릿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삼촌 클라우디우스에 대한 복수를 계속 지연합니다. 이러한 행위의 지연은 근대인의 특징입니다. 햄릿은 정말로 나는 복수를 요구하는가, 복수는 정당한가를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이러한 햄릿의 고민은 그가 이미 시작된 연극 속에 갑자기 그의 위치에 놓였기에 일어납니다. 때문에 그는 필요한 행위를 할 때에 늘 시간이 부족하게 됩니다. 또한 잘못된 시간 속에 놓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햄릿의 운명은 근대인의 운명을 대변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지금 나는 왜 여기에 있지?’ 또는 이런 일을 하는 것이 올바른 행위인가를 문득문득 질문하는 근대인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햄릿과 마찬가지로 오셀로도 현대인의 욕망, 감정들을 증폭시켜서 보여주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오셀로를 저는 30여 년 전에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손수건을 쥐어짜면서 이아고를 욕하고 오셀로의 어리석음을 한탄하면서 읽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다시 읽으면서는 차라리 아침 막장 드라마가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오셀로의 내용에 집중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왜 일어난 것일까요? 아마도 내면을 들여다보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생긴 듯도 합니다.

오셀로가 끊임없이 데스데모나를 의심하고 이아고의 감언이설에 속아 넘어가는 것은 이아고가 갈등을 조장해서가 아닙니다. 이아고에게 조정당하기 전에 오셀로는 이미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본인이 흑인이고 한량들 같이 고상한 교제술에 능하지 않고 나이도 많다는 것에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오셀로는 자신의 콤플렉스 때문에 모든 것을 의심하고 한쪽 편으로만 해석하는 편집증적 환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오셀로의 불안감, 증오, 편집증을 대변해주는 인물이 이아고였던 것입니다. 오셀로는 이아고의 계략 때문이 아니라 이미 스스로 몰락해갔습니다. 오셀로의 콤플렉스는 사실을 사실로 볼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 망상 속에서 몰락해가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편집증적 망상세계는 우리 근대인에게도 존재합니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과오를 처음에는 알 수 없고 나중에 알아야 되는 인물이었는데 반하여 오셀로는 자신의 과오를 알아도 소용이 없는 인물이었습니다. 과오가 행해지는 것을 저지할 수 없는 인물이었던 것입니다. 오셀로가 모든 앎이 다 반대로 해석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셀로가 의식적으로 하는 말들은 무의식이 다 뒤집어버립니다. 이렇게 오셀로는 인간 욕망이 얼마나 왜곡되어 있는지를 말해주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햄릿오셀로를 다 읽은 지금, 저는 햄릿에게는 감정이입이 되지만 오셀로에게는 감정이입이 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세계에 갑자기 던져졌다는 불안한 느낌과 무엇을 해도 잘못된 시간에 존재하고 있다는 초조함을 가진 햄릿을 연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불안감, 증오, 편집증으로 스스로 몰락하는 오셀로는 근대인의 어떠한 면을 대변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연민할 수 없다는 느낌이 듭니다. 차라리 김치 싸대기를 날리는 아침 연속극의 주인공에게 더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마도 사랑이라는 열정에 편집증적 증세를 보이기에는 너무 살아온 날들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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