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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와 비극> 14강 1교시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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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동엽 작성일25-07-20 13:36 조회3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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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와 비극> 141교시 후기

 

이번 강의에서는 순수이성비판의 초월적 분석학에 마지막 부분과 초월적 변증학의 도입 부분을 공부했습니다. 지난 시간에 초월적 분석학의 중요한 결론, 개념의 경험적 사용은 가능하지만 초월적 사용은 잘못된 것이라는 점을 배웠습니다. 즉 지성은 범주를 오직 감성적 직관이 주어질 때만 사용할 수 있고 이것을 경험의 한계 너머에 적용하면 가상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오직 현상만을 인식할 수 있을 뿐이며 사물 그 자체는 알 수 없습니다. 여기서 현상체와 예지체의 구분이 생기는데 예지체는 감성의 참월을 방지하기 위한 한계 개념이며, 단지 소극적 의미만을 갖는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초월적 반성

그런데 이런 결론을 위배하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요? 지성을 초월적(초험적)으로 사용하면, 즉 경험하는 것을 물자체라고 하면 무슨 문제가 발생하는 것일까요? 이번 시간에는 이를 라이프니츠 철학과의 비교를 통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칸트는 지성의 초월적 사용의 대표적 예로 라이프니츠를 들었습니다. 라이프니츠는 우리가 경험하는 것이 곧 사물 그 자체라고 하면서 감성과 지성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하나(동종성)라고 했습니다. 이는 시간과 공간이라는 선험적 형식이 나라는 인식 주체에 있기 때문에 감성과 지성은 철저하게 구분(이종성)된다는 칸트의 견해와는 다릅니다. 시공간이 우리가 아닌 사물에 있고 우리는 물자체를 인식할 수 있다는 라이프니츠의 견해에 따르면 인간이라는 유한자가 신이라는 무한자가 되는 모순이 발생하게 됩니다. 따라서 칸트는 이런 라이프니츠와는 달리 개념들이 어느 인식능력에 속하는 것인지 따져보는 초월적 반성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이는 어떤 개념들이 있을 때 이것이 순수지성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감성을 위한 것인지 구별하는 것입니다.

 

칸트의 라이프니츠 비판

라이프니츠는 감성을 무시하고 모든 현상을 지성적 범주로 다뤘기 때문에 그것들을 논리적으로만 비교하면 충분하다고 보았습니다. 라이프니츠는 초월적 반성 없이 개념을 불확실하게 사용한 결과 순수한 지성객관과 현상을 혼동한 데 기인한 사이비 종합적 원칙들을 만들었습니다. 이번 강의에서는 이 중에서 세가지를 다뤘습니다. 첫째는 구별불가능자의 동일성 원칙으로 이는 개념상으로 구별되지 않는 것은 실재상으로도 같은 것이라는 원칙입니다. 만약에 내적 규정상으로 완전히 동일한 물방울이 두 개 있다고 할 때 이를 개념상으로만 보면 다른 것으로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물방울이 공간상의 현상이라면 장소 a에 있는 물방울과 장소 b에 있는 물방울은 다른 것입니다. 칸트는 개념들에게만 타당한 그의 무구별자 원칙을 감관의 대상들에 까지도 연장하였기 때문에 오류라고 지적합니다. 둘째는 (순전한 긍정으로서) 실재들은 서로간에 결코 논리적으로 상충하지 않는다는 원칙입니다. 실재는 ~이다라는 술어인데 긍정의 술어끼리는 아무리 통합해도 개념의 관계에서는 서로 상충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연에서 실재적 상충은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3-3=0, 팽팽한 줄다리기의 긴장, 고통과 만족의 상충을 라이프니츠 철학은 포착하지 못합니다. 그는 모순의 상충만을 알고, 상호파괴의 상충은 알지 못했기때문입니다. 셋째는 우주는 단자(monad)라는 무한수의 실체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원칙입니다. 실체는 외부에 의존하지 않고 자기 스스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실체는 합성이나 분할되어서는 안되고 가장 단순한 것이어야 합니다. 즉 내적인 어떤 것이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이런 단자론은 한 모나드가 다른 모나드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 설명할 수가 없다는 문제에 봉착합니다. 결국 라이프니츠는 신에 의해 조화롭게 규정되었다는 예정조화론으로 설명하지만 여기서는 우주라는 물리적 관계 자체가 사라져 버리게 됩니다. 칸트에 의하면 내적인것과 외적인 것의 차이를 순전히 지성과의 관계에서만 표상했기 때문에 단자(monad)는 잘못된 개념이 됩니다.

 

초월적 변증학

칸트는 이렇게초월적 분석학의 효용(이점)을 보여준 뒤에 초월적 변증학으로 넘어갑니다. 변증학은 대화술로써 이데아(참된 것)를 포착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가상이라는 환영을 벗겨내는 작업입니다. 그런데 초월적 변증학은 그 대상이 경험적 가상이나 논리적 가상이 아니라 초월적 가상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나뭇가지를 뱀으로 본 것과 같은 감각적 착오나 형식 논리학의 규칙을 위반한 오류에서 발생한 논리적 가상과 달리 초월적 가상은 주관적인 필연성에 따른 인식을 사물들 자체에 대한 인식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에서 발생한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가상입니다. 따라서 비판작업은 제거가 아니라 가상성에 대한 지적이고, 그것의 올바른 사용법에 대한 제시에 그칠 수밖에 없습니다.

지성이 규칙들의 능력이라면 이성은 원리들의 능력입니다. 이성은 지성 개념들을 전체적으로 통일해 주는 일종의 초점과 같은 기능을 합니다”. 지성이 판단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면 이성은 추리하는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삼단 논법에서 대전제 말고 매개념이 되는 소전제를 필요로 하는 것이 이성추리입니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는 대전제가 있을 때 가이우스는 죽는다는 결론을 가능하게 하는 매개념은 가이우스는 사람이다라는 소전제입니다. 이성은 그 본성상 가이우스에서 사람으로, 사람에서 모든 사람으로 좀 더 보편적인 개념으로 나아갑니다.

이렇듯 이성은 무조건적인 개념 안에 모든 경험을 종속시키고자 하는 욕망이 아주 강한데 그 결과 순수이성이 갖는 자신의 개념을 초월적 이념이라고 합니다. 칸트는 이념은 그것에 합치하는 아무런 대상도 감관에 주어질 수 없는 필연적인 이성 개념이라고 말합니다. 이념은 그에 합치하는 대상이 없기 때문에 인식을 가능하게 하지는 않지만 지성 개념들을 통일하여 도덕적 실천을 가능하게 합니다. 이 통일은 세 가지가 있는데 사고하는 주관의 절대적 통일, 현상의 조건들의 계열의 절대적 통일, 사고 일반의 모든 대상들의 조건의 절대적 통일입니다. 이는 영혼의 불사성, 자유, 신이라는 전통적 형이상학의 주제와 연결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초월적 변증학의 오류추리에서 초월적 영혼론, 초월적 우주론, 초월적 신학이라는 이름으로 차례로 다루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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