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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포클레스와 셰익스피어 비교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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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소정 작성일25-08-09 17:43 조회4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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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 삶을 말하다 

예전에는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질문을 종종했었다. 그러나 그 질문에 답을 찾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삶의 순간순간에 멈칫거렸던 것 같다. 그런데 비극을 읽으면서 오이디푸스와, 햄릿은 자신들이 이 세상에 던져진 이유를 찾지는 않았지만 삶이 아무리 힘들어도 한발 한발 계속 디뎌나갔음을 볼 수 있었다. 그러한 그들의 발걸음은 어디에 도착하는 것일까?

 

비극, 무엇에서 만들어지는가

오이디푸스 왕은 기원전 436~433년에 쓰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 작품은 소포클레스(BC 497- BC 406)의 최대 걸작으로 평가되며, 아리스토텔레스도 시학에서 비극의 모든 요건을 갖춘 가장 짜임새 있는 드라마라고 극찬하고 있다.

오이디푸스는 테베의 왕이었다. 그는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 정도로 영민했고, 길가에서 자신을 위협하는 사람들을 혼자서 물리칠 정도로 용맹했다. 하지만 나중에 자신에게 내려진 저주 같은 신탁이 그대로 실현되었음을 알고 절망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에게 내려진 신탁은 그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다는 예언이었다. 그는 그와 같은 신탁을 벗어나기 위해서 자신이 친부모라고 생각했던 양부모의 나라를 떠난다.

아리스토텔레스는어떤 것이 없던 상태에서 내어놓음을 야기하는 것이 poiesis(예술)’라고 한다. 이는 뭔가가 은폐되어 있어서 밖으로 끌어내놓는 것을 말한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truth(진리)라고 했다. 그렇다면 오이디푸스가 은폐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권력에의 지향이 아니었을까한다. 오이디푸스가 자신이 친부모라고 믿고 있었던 양부모를 정말로 사랑했다면 양부모의 나라를 떠나지 않고도 신탁에서 벗어날 방법을 강구할 수 있었을 듯하다. 그가 신탁대로 살지 않겠다는 표현으로 왕권을 포기하고 부모와 함께 일상을 살아나가는 방법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이디푸스는 신탁을 듣자 부모의 나라를 떠났고 그의 여정은 비극의 출발점이 되었다.

햄릿1600년에 발표되었다. 이 작품은 윌리엄 셰익스피어((AD 1564- AD 1616)의 비극작품이다. 그의 극작품은 인간의 수많은 감정을 총망라할 뿐 아니라, 인류의 역사와 철학까지도 깊이 있게 통찰하고 있다고 평가 받는다.

햄릿은 덴마크의 왕자였다. 그는 현명하고 용맹스러운 왕인 아버지와 아름답고 현숙한 왕비인 어머니 사이에서 근심걱정 없이 살고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갑자기 사망한다. 그로 인해서 그는 갑자기 비극적 상황에 내던져졌다. 오이디푸스가 나중에야 자신이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결혼한 사실을 알게 된 반면에 햄릿은 처음부터 아버지가 숙부에게 살해되었음을 유령이 된 아버지의 고백으로 알게 된다. 이제 햄릿은 아버지의 복수를 해야만 하는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 그런데 그의 복수는 계속 지연된다. 햄릿이정말 내가 복수를 요구하는가? 복수는 정당한가?’를 계속 번민했던 것이다. 그래서 결정적으로 숙부가 기도하는 순간에 그를 죽일 수도 있었지만 실행하지 않았다. 숙부를 그 순간에 죽인다면 숙부는 죄 없는 영혼으로 저승에 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햄릿이 은폐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그것은 혼자의 힘으로 온전한 복수를 실행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을 것이다. 햄릿은 숙부가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사실을 친구나 어머니, 연인 그리고 신하들에게 처음부터 말하지 않았다. 그럼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햄릿을 오해하게 만들었다. 또한 어머니와 연인, 친구, 자신을 죽음이라는 비극의 길로 내몰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무수한 선택지들 중에서 비극적 삶의 행로를 각자가 스스로 선택한 것은 아닐까?

 

비극, 어떤 윤리와 함께하는가

오이디푸스와 햄릿이 서로 다른 비극의 모습을 보여주는 이유는 소포클레스와 셰익스피어의 시대가 다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기원전 5세기 초 그리스와 페르시아 사이에 전쟁이 발생하자 아테네는 스파르타를 비롯한 폴리스들와 힘을 합쳐 페르시아의 침략을 막아냈고 이후 아테네는 페리클레스의 지도 아래 민주 정치의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이 시기의 아테네는 민회가 입법권을 행사했으며, 국가의 중요 정책을 시민이 민회에서 토론과 투표로 결정했다. 또한 장군직을 제외한 모든 공직자와 배심원을 추첨으로 뽑았고, 이들에게 공무 수당을 지급하여 가난한 시민의 정치 참여를 보장했다.하지만 소포클레스가 비극 작품을 발표한 당시는 페리클레스가 실권한 후의 펠로폰네스 전쟁 시기였다. 펠로폰네스 전쟁은 고대 그리스의 도시 국가였던 아테네와 스파르타 사이의 전쟁으로, 기원전 431년부터 404년까지 지속되었다.

오이디푸스 왕의 비극적 상황은 아테네의 비극적 상황과 겹쳐진다. 그 당시 아테네는 전염병이 창궐했으며 전쟁에서도 패배하여 국가는 전멸의 위기 상황에 봉착해 있었던 것이다. 오이디푸스 왕에서도 테베는 전염병이 창궐하며 국가적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그래서 오이디푸스 왕이 그 원인을 찾는 것으로 연극은 시작된다. 그런데 연극에서 국가 위기의 원인은 바로 오이디푸스왕 자기 자신의 과오에 있었음이 밝혀진다. 그가 예전에 정당방위로 사람을 죽인 행위가 아버지를 살해하는 행위였음이 알려진 것이다. 아테네 시민들은 지금 전염병으로 사람들이 죽어가고 전쟁의 패배로 국가가 붕괴되는 상황에서 이러한 오이디푸스의 비극을 봤다. 그들은 오이디푸스에게 인간적인 연민과 공포, 카타르시스를 느꼈으리라.

16세기 중반(1558)에 왕위에 오른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는 영국교회를 로마로부터 독립시키며 성공회를 부활시켰고 성공회는 로마가톨릭과 청교도의 양극단 사이에서 중도를 유지하는 교회로 발전하게 된다. 또한 17세기 영국은 명예혁명을 통해 의회의 권한이 강화되었으며, 입헌군주제로의 전환이 이루어졌다. 영국은 이렇게 엘리자베스 1세와 그 다음 왕의 통치 아래에서 번창했다. 이 시대는 셰익스피어 희곡 등의 예술과 문학이 꽃을 피운 시기이기도 했다.

셰익스피어 희곡 햄릿1600년의 영국이라는 번영한 사회에서 탄생한 비극작품이다. 햄릿은 무고한 일상에서 갑자기 아버지의 복수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던져지면서 시작된다. 이에 햄릿은 아버지의 살해자인 숙부를 가장 용서 받을 수 없는 상태에서 살해하려고 마음을 먹는다. 그래서 그는 계속 복수가 정당한지, 언제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그와 같은 지연 때문에 햄릿 자신도 나중에는 죽음에 이르게 된다. 햄릿이 아버지의 복수를 완벽하게 이루는 순간이 자신의 삶도 막을 내리는 순간이 되었던 것이다. 이에 반해서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눈을 찔러서 장님이 됨으로 인해서 계속 삶을 영위해나간다.

자신도 모르게 비극의 무대에 올려 진 것은 오이디푸스와 햄릿이 같았지만 어떤 행동을 하는가에 대한 선택은 달랐다. 오이디푸스는 스스로 눈을 찔러서 내부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이렇게 내부로 행한 그의 시선은 고통을 바라보는 새로운 윤리에 다가설 수 있게 만들었으리라. 반면에 햄릿은 숙부가 왕비와, 햄릿의 친구와 자신을 죽이는 순간에 숙부를 살해한다. 숙부는 죄가 가장 많이 쌓인 모습으로 죽게 된 것이다. 이에 비록 햄릿은 복수의 순간에 죽었지만 가지고 있던 복수의 윤리를 완성시킨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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