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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 비교글쓰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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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회청 작성일25-08-09 19:54 조회6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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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글쓰기 2 / 수성/ 2025. 8. 13/ 신소희

 

 

행동하게 하는 원인들

 

 

그리스인들은 삶이 고통으로 가득차 있다고 보았다. 이런 삶의 운명성에 대해 그대로 받아들이고 계속 살아나가고자 했다. 그런 삶의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 없는 어떤 것을 신탁으로 표현하는 듯하다. 이에 반해 거의 2천년이 지나 발표된 셰익스피어의 비극에서 신탁은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그와 비슷하게, 확실하게 존재하거나 증명해낼 수 없는 신비한 요소들인 유령, 마녀의 예언들이 등장한다. 유령과 마녀는 신탁과 같은 역할을 하는 듯하다. 유령의 말이나 마녀의 예언들로 인해 주인공들은 움직일 수밖에 없게 된다. 그렇지만 보다 근원적인 요소는 개인의 내면 안에서 일어나는 갈등, 욕망 등에 의해 움직이는 것 같다. 소포클레스의 비극과 셰익스피어의 비극 안에서 어떤 요인들에 의해 인물들이 갈등하고 행동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소포클레스의 비극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안티고네>는 그리스 비극으로 신탁이 등장한다. 그리스 비극에서 신탁은 인간으로서 거부할 수 없고 무조건 따라야만 하는 절대적인 명령이고 이것을 따르다가 많은 사건들이 일어난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제 어머니와 결혼을 하여 자식까지 낳을 것이라는 이 저주스러운 아폴론의 신탁을 피하기 위해 도망다녔지만 그 운명대로 되었다.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하고, 자신의 어머니와 결혼을 하고 그 사이에서 자녀를 넷이나 낳았다. 살해, 근친상간, 그 자식들, 인간으로서 너무 고통스러운 치욕스런 죄이다. 그로 인해 오이디푸스는 자신에 대한 분노로 자신의 두 눈을 찔러 장님이 되게 한다. 자살을 택하는 것보다 더한 형벌을 스스로에게 내렸다. 다음 왕이 될 것 같은 크레온에게 자신을 추방해달라 간곡히 청하지만 크레온은 도시의 판단에 맡긴다며 극은 마무리된다.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에서 오이디푸스는 신탁에 의해 콜로노스 왕 테세우스와 약속을 하여 추방자로 떠돌며 들판에서 죽을 운명이었지만, 그 나라의 시민으로 받아들여지고 죽음을 고귀하게 맞게 된다. 테세우스는 오이디푸스를 시민으로 환대한 대가로 신탁에 의해 오이디푸스로부터 콜로노스를 앞으로 다른 나라의 침략에서 보호하고 번영하도록 돕겠다는 맹세를 받는다.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에서 오이디푸스는 <오이디푸스>의 오이디푸스와는 다른 성격을 보인다. 눈을 찔러 장님이 되게 하여 자신에게 죄를 내린 그 오이디푸스로부터 많은 시간이 지나 노인이 된 오이디푸스이지만 그 시간 때문일까?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운명에 대해 세월이 흘러 내 고통도 모두 가라앉고 내가 홧김에 지난날의 과오를 너무 지나치게 벌주었다고 느끼기 시작했을, 그때서야 비로소 도시가 나를 억지로 나라에서 내쫓으려 했다’(437)라고 말한다. 이전 오이디푸스의 생각과 행위와는 많이 다른 말이다. 좀더 인간적인 표현이 아닌가 한다. 오이디푸스 내면에서 일어난 자신에 대한 생각들이다. 콜로노스의 노인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무의식을 표현한 것 아닌가 한다. 젊은 오이디푸스는 왕으로서 자신이 뱉은 말을 지켰다. 나라가 역병으로 시달리고 있을 때 오욕을 지닌 자를 추방하거나 피를 피로 갚으라는 신탁이 내려졌다. 이것은 죽은 라이오스의 시해자를 찾아 벌하라는 것이었고 그 살해자를 숨겨주거나 모르고라도 그자를 만나기만 해도 벌을 내리겠다고 선포했다. 그런데 그 살해자가 오이디푸스 자신이었으니 그런 형벌을 내린 것이기도 하다.

<안티고네>에서는 신탁이 등장하지 않는다. 안티고네는 오빠인 폴뤼네이케스가 반역자라는 이유로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시신이 들판에 버려진 것에 대해 크레온 왕에게 장례를 허락해달라고 청하다가 죽음에 처해진다. 안티고네가 왕의 명령을 어기면서 장례를 치르려는 이유는 가족에 대한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어떤 법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신탁의 절대성에 의해 움직인 것이 아니고 가족에 대한 윤리를 지키려고 행동하였다. 이에 대해 동생 이스메네는 국가의 명령이므로 장례를 치르려 해서는 안 된다고 안티고네에게 동의하지 않는다. 이스메네의 입장은 국가의 윤리를 대변하고 있다. 근대인의 관점에서 본다면, 안티고네 안의 표현되지 않은 갈등을 이스메네를 통해 나타내는지도 모른다. 안티고네는 폴뤼네이케스의 장례를 치르는 것에 주저함이 없다. 죽음이라는 두려움을 의식한다면 죽을 것을 알면서 왕에게 대항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셰익스피어 비극

햄릿은 광기가 있는 인물로 나온다. 자신의 아버지가 죽고 아버지의 동생인 클로디어스가 왕이 되어 자신의 어머니와 결혼을 하는데 그 과정에서 미쳐 간다. 햄릿에게 아버지의 유령이 나타나 아버지의 죽음이 클로디어스의 독살임을 알게 되고 아버지 유령은 복수를 해달라고 말하고 사라진다. 햄릿은 복수의 실행에서 갈등에 빠진다. 복수가 정당한지 계속 의심한 것이다. 하지만 쥐덫이라는 연극을 클로디어스 앞에서 공연함으로써 아버지 유령의 말이 사실임을 확신하고 복수를 결심한다. 유령의 말이 얼마나 신빙성이 있느냐보다는 미쳐가는 햄릿의 광기를 보여준 것은 아닌가 한다.

오셀로는 무어인으로 명망이 높은 장군이었음에도 그의 내면에는 무어인이라는 열등감이 컸고 그래서 백인인 데스데모나의 사랑을 온전히 믿지 못했다. 자신에 대한 혐오감이 자신 안에 가득차 있었지만 그것을 의식하지 못했고 자신만의 이야기에 갇혀 진실과 거짓을 분간하지 못하게 되었다. 자기가 세운 생각의 체계로 모든 것을 해석하려는 경향을 편집적이라고 한다. 오셀로가 편집적이 된 이유는 자기 안에 깊이 새겨진 자신에 대한 혐오일 것이다. 그것이 스스로를 파멸하게 만들었다.

맥베스는 마녀로부터 3가지 예언을 듣는다. 글래미스 영주, 코도의 영주, 왕이 된다는 말을 뱅쿠오와 함께 듣는다. 뱅쿠오도 같은 자리에서 마녀로부터 왕을 낳을 자라는 예언을 듣는다. 처음부터 두 사람이 마녀의 예언을 믿지는 않았지만 맥베스가 이미 글래미스 영주인 것을 맞혔고, 코도 영주가 되자 왕이 된다는 것은 마음 안에서 진리가 되었다. 맥베스 부인의 강력한 주장으로 맥베스는 왕을 죽이고 왕권을 차지한다. 그리고 왕의 후손을 낳는다는 뱅쿠오 역시 맥베스에게는 강력한 위협이 되어 그도 죽인다. 이런 잇따른 살인속에서 맥베스와 맥베스 부인은 정신적으로 무너져 간다. 맥베스는 계속 뱅쿠오 유령 등 여러 유령을 보고 잠을 못 자게 되고 맥베스 부인도 미쳐서 자살을 한다. 이 유령들은 어떤 예언을 하려고 등장한 것보다는 맥베스 안의 죄의식에 의한 환영들일 것이다.

 

 

비극 수업을 마치며

우리는 어떤 운명에 놓여 있고 그것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에 때로는 괴롭다. 고대 그리스에서도, 근대 셰익스피어의 시대에서도 그들이 고뇌했듯 우리의 삶도 그러한 듯하다. 우리 안에 자리하는 갈등의 요소들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비극 속에서 고통과 슬픔만이 아닌 다른 위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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