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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 비교 글쓰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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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나침반 작성일25-08-09 20:51 조회7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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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을 비추는 비극

 

 

고대 그리스의 현자 살레노스는 인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태어나지 않는 것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지만, 일단 태어났으면 되도록 빨리 왔던 곳으로 가는 것이 그 다음으로 가장 좋은 일이라오.” 인간에 대한 이러한 관점은 삶을 고통으로 바라본 그리스인들의 염세주의 사고를 보여준다. 그들은 이와 같은 허무주의를 어떻게 극복했을까? 니체는 그 해법이 비극에 있다고 보았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비극을 통해 고통스러운 삶을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삶을 긍정했다. 이러한 삶의 자세를 니체는 그리스적 명랑성이라고 부르면서 고대 그리스 비극이 사라진 걸 아쉬워하였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 비극은 서양 비극의 원형으로서 시대에 따라 다르게 변형되며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특히 르네상스 시대에는 인간중심의 세계관이 등장하며 고대 그리스 시대와 같이 운명과 도덕적 갈등을 다루며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였다. 그러나 시대와 문화가 달라지면 비극이 표현하는 윤리적 갈등 요인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고대 그리스 시대의 대표적 작가인 소포클레스와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분석하고 시대별로 어떤 윤리적 성찰을 하였는지 고찰한다.

 

 

소포클레스의 비극과 윤리

안티고네는 신법과 국법이 팽팽히 대결하는 작품이다. 안티고네는 치욕스럽게 살고 싶지 않다며 국법에서 금지한 오빠를 매장한다. 안티고네의 행위는 누구의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니다. 칸트가 말하는 윤리적인 주체로서 정언명령에 따라 한 행위였다. 매장한 후에 나는 인간의 법이 아니라 신의 법을 따랐습니다.”라고 말하며 가족의 윤리가 보편적인 윤리임을 주장한다. 하지만 국가 최고 지도자인 크레온의 처벌로 리빙데드가 되고 끝내 자살한다. 반면에 국법을 수호하려던 크레온은 아들과 부인이 자살하고 국가공동체마저 파괴되어 리빙데드로 전락한다. 크레온의 비극은 국가가 전부 포섭할 수 없는 윤리의 영역이 있음을 너무 늦게 깨달아서 발생하였다.

오이디푸스 왕은 인간의 한계인 무지로 인해 발생한 죄이지만 책임을 지는 모습을 나타낸 작품이다. 오이디푸스가 역병의 원인인 라이오스 왕을 살해한 범인이 누구인가를 추적하다가 자신이 범인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친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결혼하여 자식을 낳을 것이라는 끔찍한 운명을 피하려고 했지만 결국은 신탁이 실현되었다는 사실에 극심한 윤리적 고통을 느낀다. 그리고 운명 앞에서 무지인 인간의 한계로 발생한 행위였지만 회피하지 않고 윤리적인 주체로서 책임을 진다. 스스로 눈을 찔러 시력을 잃고 평생을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추방자의 삶을 선택한다. 이로써 공동체 윤리는 회복된다.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는 죄의 대가로 추방자의 삶을 산 오이디푸스가 환대받으며 안식을 찾는 모습을 나타낸 작품이다. 죄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자, 오이디푸스는 자비의 여신이 사는 땅에서 흔적 없는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도시를 지키는 신성한 존재가 되어 신의 질서에 편입되어 윤리성을 회복한다.

 

 

셰익스피어의 비극과 윤리

햄릿은 갑자기 던져진 아버지의 복수라는 운명 앞에서 끊임없이 내적 갈등을 겪는 근대인의 특성을 나타내는 작품이다. 햄릿은 선왕인 아버지의 복수를 해야 하는 운명이 다가오자 복수가 윤리적으로 옳은 행위인지 아닌지 끊임없이 회의한다. 복수를 요구하는 유령의 말이 진실인지 알아내기 위해 쥐덫이라는 극중극을 공연한다. 선왕을 살해한 장면을 그대로 재현하고 왕의 반응을 관찰한다. 연극의 효과로 왕은 자신을 성찰하며 죄의식을 느끼고 뛰쳐나와 기도한다. 왕이 아버지를 살해한 범인임이 증명되었다. 이젠 유령의 명령이 아니라 윤리의 주체로서 아버지의 복수를 할 정당성이 확보되었다. 그러나 햄릿은 자기 의지와 실행 사이에서 또 고민하며 왕의 살해를 늦춘다. 이와 같은 행동의 지연으로 인해 햄릿은 죽지만, 운명을 받아들이고 죽어가면서 아버지의 복수를 실행한다.

멕베드는 권력의 야망과 죄의식 사이에 갈등하는 인간의 심연을 나타내며, 관객에게 너의 야망은 무엇인가라는 윤리적 질문을 하게 하는 작품이다. 충직한 신하였던 멕베스는 왕이 될 것이라는 자신의 내면의 소리인 마녀의 예언을 듣고 권력욕이 커져 왕을 살해한다. 왕관을 차지했지만, 내면의 정언명령이 작동하여 죄의식으로 잠도 못 자고 음식도 먹지 못한다. 강력한 경쟁상대인 벤쿠오를 죽인 후에는 죄의식이 더 커져 스스로가 만들어낸 망령까지 본다. 망령이 왕의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자리에 앉지도 못한다. 도덕적으로 왕의 정당성이 없음을 무의식적으로 인정한 셈이다. 그러나 왕권을 지키려는 열망이 죄의식은 점점 약하게 하며 사람을 더 죽인다. 결국은 전쟁에서 패하여 죽는다.

오셀로는 편집증으로 스스로가 만든 망상으로 자신을 파멸하는 심리를 나타내는 작품이다. 정숙하고 아름다운 아내와 결혼한 오셀로는 흑인이며 나이가 많고 교제술에도 능하지 않다는 열등감에 빠져있다. 유능한 장군이었지만 자기 불신과 열등감으로 자기중심적인 해석을 하며 아내의 불륜을 의심한다. 증상이 심해진 그는 이성을 잃고 자신의 명예를 실추했다는 감정에 휩쓸려 아내를 살해한다. 뒤늦게 진실을 알고 자살하여 비윤리적인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진다.

 

 

소포클레스와 셰익스피어 비극의 특징

소포클레스의 비극은 기원전 5세기 고대 그리스 시대의 윤리의식을 보여준다. 신과 운명이 지배하는 세계로 공동체의 윤리를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다. 오이디푸스와 같이 친족을 살해하거나 근친상간으로 공동체의 윤리를 어길 땐 질서 유지를 위해 반드시 처벌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가족의 윤리도 명확하다. 안티고네를 통해 가족의 매장은 반드시 실천해야 할 윤리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비극의 주인공이 윤리를 실천할 때 망설이거나 고뇌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안티고네의 경우 신성한 범죄를 저지르겠다는 의지를 표현하고 바로 실행한다. 오이디푸스도 자신을 환대하지 않고 이용만 하려는 자식에게 고민하지 않고 저주를 내리며 환대의 중요성을 알린다. 또한, 신탁은 사람들이 행동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하며 반드시 실현된다. 그래서 운명을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인 무지로 인해 비극이 발생한다. 그러나 피할 수 없는 운명에 의해 발생한 비윤리적인 행위일지라도 책임을 지는 모습을 재현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나침반처럼 방향을 제시한다.

셰익스피어의 비극은 르네상스 시대 인간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윤리적 갈등을 보여준다. 고대 그리스대에는 당연히 해야 할 의무였던 아버지의 복수가 망설임의 대상이 되었다. 햄릿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운명 앞에 모든 것이 불확실하여 끊임없이 회의하는 근대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멕베스는 신탁이 아니라 내면의 욕망으로 비극이 발생한다. 그러나 비극을 통해 명확한 삶의 방향을 제시하지 않는다. 권력욕과 죄의식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의 심리를 보여주며, 윤리의 주체로서 살지 못하고 내면이 욕망과 망상에 잠식당할 때 어떤 위험이 발생하는지 우리의 심연을 거울처럼 보여줄 뿐이다. 두 시대의 비극을 비교해 본 결과 시대별로 윤리적 갈등 양상이 다르다. 그러나 공통으로 비극을 통해 윤리의 주체로서 보편적인 윤리를 실천하고, 비윤리적인 행동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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