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이성비판강의 에세이
페이지 정보
작성자 이혜진 작성일25-09-07 00:29 조회60회 댓글0건본문
베토벤 ‘환희의 송가’의 종교 편향 논란에 관하여
베토벤 <9번 교향곡>을 둘러싼 2023년 대구시립예술단의 공연 해프닝
2023년 4월, 대구시립예술단의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공연을 앞두고 종교 편향성 논란이 불거졌다. 대구 종교화합자문위원회 소속의 한 위원이 제4악장 ‘환희의 송가’의 가사에 ‘신’이나 ‘창조주’ 같은 기독교적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는 이유로 해당 작품이 특정 종교에 편향적이라고 주장하며 공연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당시 대구시 조례는 시립예술단 공연 프로그램의 종교 중립성 안건에 대해 자문위원 전원 찬성을 요구했고, 그 결과 단 한 명의 반대로 공연이 무산될 위기에 놓였다. 이에 대구음악협회장을 비롯한 대구 지역의 음악인들과 예술 애호가들은 베토벤 <교향곡 9번>은 “특정 종교를 넘어 인류의 평화와 화합을 노래하는 인류 문화유산”으로, 위원회의 결정은 “예술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라며 강하게 비판하며 시위를 벌였다.
다행히 민간 오케스트라와 다른 시립 합창단이 참여하면서, 당초 기획되었던 대구시립예술단은 빠졌지만 결국 베토벤 <교향곡 9번>은 무대에 오를 수 있었다. 이 논란이 커지자, 대구시는 해당 조례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종교화합자문위원회를 폐지했다. 또한, 시립예술단 예술감독이 종교 편향으로 물의를 일으킬 경우 해촉하고, 관리 책임자들을 징계하는 등 종교 편향 방지 및 종교 중립 의무를 강화하는 새로운 정책을 수립하기도 했다.
대구 공연 논란은 다양한 쟁점들을 불러일으켰다. 정책적으로는 ‘만장일치 의결 방식의 부당성’과 ‘사전 검열 논란’을, 음악적으로는 ‘베토벤 합창 교향곡의 기독교 편향성 여부’를, 사회적으로는 ‘예술의 자율성과 공공기관의 종교 중립성 충돌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그러나 이 모든 논의는 단순히 사건을 수습하는 데만 집중했을 뿐, 사태의 본질이나 근본 원인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과는 거리가 멀다.
예술과 종교
<교향곡 9번 ‘합창’>은 1824년에 초연된 베토벤의 후기 교향곡이다. 이 교향곡의 첫 세 악장은 장대한 규모이고, 전체 길이는 한 시간이 넘는다. 마지막 합창에는 독창과 합창이 등장하는데, 이는 교향곡이라는 장르의 역사에서 최초로 시도된 것이었다. 여기에서 베토벤은 실러의 『환희의 송가』(Ode an die Freude) 가운데 ‘환희를 통한 보편적 형제애’와 ‘영원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강조하는 연들을 선택하여 가사로 사용했다.
베토벤이 살았던 시대에는 종교가 개인의 삶에 깊이 영향을 미쳤지만, 베토벤은 특정 종교에 얽매이지 않고 인간의 숭고한 정신과 보편적 인류애, 이성적인 가치 등을 추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합창 ‘환희의 송가’에 신을 찬양하는 일부 종교적 가사가 포함되어 있지만 그가 전달하고자 한 메시지의 본질은 특정 신에 대한 종교적 신념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이것은 프랑스 혁명을 거리를 두고 지켜보았고 자신이 이상화했던 나폴레옹에게 실망한 후 왕정복고라는 정치적 억압 속에서 말년을 보냈던 베토벤이 인류애와 형제애를 강조한 보편적인 메시지에 보다 근접해 있다.
종교적 논쟁이 불거진 또 다른 음악 작품의 예로 헨델의 영국 오라토리오 <메시아>(1741)가 있다. <메시아>는 구약의 예언에서 시작하여 그리스도의 삶을 거쳐 부활에 이르기까지 구약과 신약 성서에서 가져온 텍스트를 사용하여 ‘구속’이라는 기독교적 개념에 대해 성찰하는 작품으로, 프랑스 서곡을 비롯해 이탈리아의 레치타티보와 다 카포 아리아, 독일의 코랄 푸가, 영국의 코랄 앤섬 양식까지 다양한 전통 요소를 혼합함으로써 그의 전형적인 음악적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다. 특히 이 작품이 만들어진 배경에는 한 가지 일화가 전해진다. 헨델은 시인 제니스로부터 자신의 시에 음악적 생명을 불어넣어 달라는 내용의 편지와 함께 <메시아> 대본을 받았는데,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우연히 대본을 다시 보게 되었고, ‘위로받으라’로 시작하는 첫 부분에서 엄청난 영감을 얻는다. 그 후 그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작업에 몰두하여 연주 시간이 두 시간 반이 넘는 대작을 불과 24일 만에 완성했다. <메시아>를 신의 은총으로 탄생한 작품이라 여긴 그는 이 작품을 자선 무대에 올려 얻은 수익으로 감옥에 갇힌 죄수들을 구제하고 병원을 후원했다.
그런데 헨델의 <메시아>를 종교적 숭고함을 고취하기 위해 성경을 바탕으로 한 종교음악으로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이 작품은 단순히 극장에서 흥행을 목적으로 무대에 올려진 신성한 오락물에 가깝다. 그는 불과 얼마 전까지 화려한 이탈리아 오페라를 상연했던 오페라 극장에서 해당 오페라 가수들을 섭외하여 콘서트 형식으로 오라토리오를 공연함으로써 밋밋한 무대와 합창 음악만으로 화려한 무대장치에 익숙한 영국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또한 오라토리오의 막 사이나 중간 휴식 시간에 오케스트라와 함께 독주 부분에 즉흥적인 비르투오소 연주가 많이 포함된 오르간 협주곡 연주를 기획하여 청중의 이목을 끌었다. 실제로, 700명에 달하는 청중이 관람한 <메시아>의 초연은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그는 숭고한 종교적 내용을 교회가 아닌 극장에서 연주했다는 이유로 신성 모독죄로 무려 10년 가까이 비난을 받았다.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나 헨델의 <메시아>를 두고 단순히 종교음악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다소 문제가 있다. 그 외양에 드러난 종교성이 해당 종교의 신념을 그대로 표방한다거나 작곡가 개인의 신앙심과 직접 연결된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종교와 완전히 무관한 작품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작곡가의 음악관은 개인의 종교관, 그리고 그가 살았던 시대와 지역의 종교적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베토벤 ‘환희의 송가’를 둘러싼 종교 편향 논란은 불필요한 논쟁일 수 있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비롯된 논쟁이 유익한지 아닌지를 따지는 것보다 더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바로 특정 종교를 비판하는 사람의 사고에 어떤 전제가 깔려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구성적’ 원칙과 ‘규제적’ 원칙
칸트의 ‘초월적 논리학’ 중 ‘분석학’은 감성론, 범주론, 도식론에 이어 원칙론을 다룬다. 칸트는 지성의 종합을 수학적 종합과 역학적 종합으로 구분한다. 수학적 종합은 동종적인 요소들을 결합하며, 이는 연장적 크기(양의 범주)와 밀도적 크기(질의 범주)의 종합으로 나뉜다. 역학적 종합은 이질적인 요소들을 결합하며, 현상들 간의 물리적 결합(관계의 범주)과 형이상학적 결합(양상의 범주)으로 구분된다. 수학적 종합은 양과 질이라는 직관에만 관여하는 반면, 역학적 종합은 현상 자체의 존재가 아닌, 현상들 사이의 관계에 관여한다. 칸트는 특히 수학적 종합을 ‘구성적’(constitutive) 원칙이라 부르는데, 이는 현상들을 선험적으로 규정하고 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역학적 종합은 현상의 존재가 아닌 그 관계에 대해서만 선험적으로 규정할 수 있으므로 ‘규제적’(regulative) 원칙이라고 지칭한다.
특히 칸트가 정의한 ‘규제적 원칙’은 단순한 양적 비례 관계를 넘어선다. 이는 ‘신: 무한한 정의 = 인간: 유한한 정의(x)’처럼, 실체와 양을 가늠할 수 없는 질적 관계의 동등성을 다룬다는 점에서 철학적으로 큰 의미를 지닌다. 칸트가 강조하는 핵심은 바로 지성의 적용 범위에 대한 것으로, 우리는 이 관계에서 신이 무한한 정의를 갖는다면 인간은 유한한 정의를 가진다는 비례적 관계만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신은 기계적 인과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삶을 해석하기 위해 필요한 도덕적 요청으로서, 우리와 ‘규제적으로만’ 관계하는 대상이다. 지성이란 경험 가능한 한계 내에서만 작용해야 하며, 마치 신과 같은 존재가 실재하듯 실체적인 경험 대상으로 간주하거나 경험 너머의 초험적 영역까지 확장하여 ‘구성적인’ 원칙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나가는 말
대구시에서 불거진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의 종교 편향성 논란에 맞서, ‘베토벤의 교향곡은 기독교라는 특정 종교를 표방한 작품이 아니다!’, ‘공공기관은 종교적 중립성을 지켜야 한다!’, ‘예술에 종교적 잣대를 적용해서는 안 된다!’ 등과 같은 주장들이 나왔다. 이 말들은 모두 옳다. 하지만 이 주장들은 사건의 본질적인 원인이 아니라, 그로 인해 파생된 결과이자 표면적인 현상만을 다루고 있다. 어떤 사태를 파악할 때 파생물과 본질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베토벤 ‘환희의 송가’의 종교 편향 논란을 더 깊은 차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자신이 믿는 신이나 종교가 절대적이라는 전제에 있다. 이 전제야말로 예술 현장에서 벌어지는 종교 편향 논란과 관련된 다양한 갈등을 낳는 진짜 원인이다.
특정 종교를 맹목적으로 비판하는 이들은 사실 그 자신도 또 다른 종류의 믿음에 빠져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들은 ‘규제적으로’ 다뤄야 할 신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오용하여 ‘구성적인’ 신으로 만들 위험이 있다.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에 작곡가 자신의 깊은 종교적 신념이 담겨 있다면 어떤가? 오히려 이는 “우리 삶을 우연에 맡기지 않기 위해 우리와 신의 필연적인 관계를 상정하는 어떤 신학적, 또는 목적론적 사용”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예술을 감상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물론, 신을 ‘규제적인’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한정된 이야기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