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폭력 세미나] 3주차 씨앗문장 - 의무와 원칙으로 살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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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파랑소 작성일26-03-30 04:32 조회28회 댓글0건본문
의무와 원칙으로 살아가기
남아프리카에 거주하는 인도인을 통제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암흑법”에 대항하기 위해 간디를 포함한 인도인들은 “사티아그라하” 운동을 시작한다. 그들은 지문을 바탕으로 한 신상 정보 등록을 거부하는 동시에 <인디언 오피니언>이라는 신문을 발행한다. 영어와 구자라트어로 발행되는 <인디언 오피니언>으로 투쟁 소식을 널리 알려졌다.
그러던 중 스뫼츠 장군이 교섭안을 제안해온다. “인도인이 자발적으로 등록할 경우 법의 적용을 받지 않으며, 새 등록증의 세부 사항은 정부가 인도인 사회와 상의해서 결정하고, 대다수 인도인이 자발적으로 등록하면 정부는 암흑법을 폐지”(178쪽)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암흑법 폐지라니! 인도인들이 그토록 원했던 일이 아니던가? 하지만 스뫼츠 장군의 말을 믿을 수 있겠느냐는 여러 사람의 의구심이 있었지만 간디는 의심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인간성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야말로 사티아그라히 신념의 핵심”(182쪽)이기 때문이다. 지금으로선 사티아그라히의 신념에 따라 정부를, 곧 스뫼츠 장군의 말을 믿고 등록해야만 했다.
한편 트란스발에는 보어전쟁 때 병사로 넘어온 50여명의 파탄인이 살았다. 이들은 평소 간디의 의뢰인으로 친하게 지냈다. 파탄인은 순진하고 용감하기도 했으며 분노하면 형제일지라도 서로 죽고 죽이는 것을 일상으로 보내기도 했다고 한다. 파탄인은 정부 교섭안에 반대했는데, 그들 중 미르 알람이라는 자가 지문을 날인하러 등록사무소에 가려던 간디를 곤봉으로 가격하게 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간디가 향하는 길에 반대파를 포함한 어떤 시련이 분명 있으리라고는 예상했다. 간디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그렇게 행동한 것일 테고 내가 이번에 주목한 부분은 쓰러진 간디를 보살펴준 도크라는 목사네 가족이다.
도크 씨와 그의 선량한 부인은 내가 편히 쉴 수 있도록 배려했고, 부상 당한 뒤 나의 정신적인 활동을 보고 고통스러워했다. 그들은 그 일로 내 건강이 손상되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들은 내 침대 주변에서 모든 사람이 떠나도록 신호를 보내고, 나에게 글 쓰는 일조차 그만두게 했다.(193쪽)
침례교 목사로 할 수 있는 한 도움을 주려한 도크씨. 목사라는 직업이 백인의 헌금으로 생계가 유지되는 직업인만큼 간디는 도크씨가 이렇게 자신을 돌보아주는 것이 고맙기도 했지만 걱정이 되기도 한다. 참으로 섬세한 간디! 이에 대해 도크시는 명확하게 설명한다.
예수의 신도로서 백인에게 조금이라도 모범이 되고자 한다면 나는 이 투쟁에 공공연히 참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종파가 나를 버린다고 해도 유감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가 신도의 헌금에 의존해 사는 것이 사실이지만, 생계를 위해 신도와 관계를 유지한다거나, 그들이 나에게 일용할 양식을 준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일용할 양식은 신이 주시는 것입니다. 신도는 매체에 불과합니다. 나와 신도의 관계에는 불문율이 있습니다. 나의 종교적 자유에 아무도 개입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나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인도인에게 은혜를 베풀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의무로 이 투쟁에 참가하는 것입니다.(196쪽)
텍스트에서는 목사 도크씨 이외에 인도인들을 도와준 다른 백인들도 살펴볼 수 있다. 월급이 10파운드에서 3파운드로 줄어도 인쇄소를 맡아준 웨스트씨, 인도인들과 함께 삼등칸에 타며 월급을 더 받는 것을 주저한 솔직하고 적극적인 소녀 슐레신 등등. 이들은 자신의 “의무”와 “원칙”으로 행동한다. 감옥에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오히려 체포되기를 바라고) 어떤 비난을 받을지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은 어떤 의무와 원칙을 지니고 살아가고 있는 걸까.
며칠 전 치과에 다녀왔는데 갑작스럽게 큰 지출을 하게 되었다.(무려 90만원!) 둘째 아이가 아직 어린 터라 거의 근근이 버티는 생활을 하는 중이라서 또 이렇게 갑작스런 지출이 걱정되기도 하고 할부를 몇 개월을 할 것인지 또 학원비는 어떤 방법으로 결제해야하는지 하는 고민 자체가 번거롭게 느껴졌다. (돈을 좀 넉넉히 벌어서 이런 고민을 안 하고 싶었다!)
그러던 중 줄어든 급여에도 전혀 개이치 않고 자신의 할 일을 하는 간디를 돕는 친구들을 만났는데,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 내가 공부하며 살아가는 일상, 그러니까 좋아하는 일로 생계를 유지하고 운동하고 아이를 키우는 일상이 꽤 든든해졌다. 물질이 아니라 마음의 단단함을 추구하는 삶. 돈을 좇는 것이 아니라 어떤 정신적인 평온함을 유지하는 삶을 살아가는 일상에서 편안함과 확실함을 느낀다. 그렇게 생각하니 돈에 대해서 조금의 수고로움을 충분히 감수할 수 있을 듯했다.(적금에 든 돈을 쓰면서 차차 고민해보기로 한다.) 나의 신념도 이렇게 책을 읽고 텍스트의 멋찐 인물들과 문장을 만나며 하나씩 만들어가는 것 같다. 인생을 살아가며 그때 그때 나의 옳음에 따라 결정할 뿐이고, 그게 아니라면 시간이 지나 내가 변한다면 간디처럼 또 바꾸면 된다. 누가 뭐라고 하든 나는 나의 갈길을 가는 것으로!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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