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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철학의 질문들] 불온한 신화 4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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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andi 작성일26-04-01 11:06 조회3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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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동꾼의 해탈

라자수야 희생제가 한창이었다. 유디슈티라 형제의 왕국이 가장 넓어진 날, 온 나라의 왕들이 모여 첫 공양물을 올리는 자리. 비슈마가 크리슈나에게 야르가를 바치라 했을 때, 시슈팔라가 일어섰다. 그는 욕을 퍼부었다. 희생제를 뒤엎으려 했다. 왕들을 선동했다. 잔치를 망쳤다.

크리슈나의 원반이 날아가 그의 목을 쳤다. 그 순간, 시슈팔라의 몸에서 빛이 솟아올라 크리슈나 안으로 스며들었다. 난동꾼이 해탈했다.

나라다 선인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시슈팔라는 비슈누의 문지기였다가 인간계로 떨어진 존재, 세 번을 신의 원수로 살다 돌아가게 된 운명이었고, 이번이 그 마지막이었다. 그는 크리슈나에게 뛰어들어 죽임을 당해야만 신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었으며, 그러니 잔칫날의 난동은 난동이 아니었다. 귀환의 방식이었다. 그렇다면 크리슈나의 원반은 폭력인가.

바가바드 기타에서 아르주나는 비슷한 자리에 서 있었다. 친족이 맞서 있는 전장, 활을 들지 못하고 무너지는 전사. 크리슈나는 말한다. 결과를 버리고 행위하라, 네 의무를 다하라, 죽음은 끝이 아니며 네가 죽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다할 뿐이다. 아르주나는 듣는다. 그리고 싸운다. 세미나에서 혜선 샘이 바로 그 지점에서 멈췄다. 결과에 대한 책임이 유보된다면 어떤 폭력도 의무라는 이름으로 통과될 수 있지 않느냐고, 나는 아직 이것에 동의하지 못하겠다고. 그 물음은 옳다. 다만 거기서 멈추면 시슈팔라의 빛이 보이지 않는다.

단디 샘이 뇌 이야기를 꺼냈다. 뉴런이 한번 길을 내면 그 길로만 다닌다는 것, 그리고 그 길을 바꾸려면 기존의 뉴런을 끊어야 한다는 것, 끊는 것은 뇌 입장에서 보면 폭력이라는 것. 마음을 먹는다고 되지 않는다. 다르게 살겠다는 결심은 명시적 기억일 뿐이고, 몸이 바뀌려면 오래된 길이 실제로 차단되어야 한다. 그 차단은 조용하지 않다. 시슈팔라가 잔칫날 왕들 앞에서 욕을 퍼부은 것처럼, 아르주나가 스승의 얼굴을 보면서도 활시위를 당긴 것처럼, 무언가가 끊어지는 순간은 언제나 소란스럽고 때로는 잔인하다. 그러나 그 소란 없이는 새 길이 나지 않는다. 뇌도, 신화도,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한주 샘이 웃으며 말했다. 지금 우리나라가 되게 평온한 상태예요, 시끄럽잖아요, 근데 그게 평온한 거예요. 처음엔 농담처럼 들렸는데, 마하바라타 전체가 그 말을 하고 있었다. 영광은 찰나다. 라자수야 희생제가 끝나고 나면 주사위 놀음이 오고, 드라우파디가 욕을 당하고, 전쟁이 온다. 신이 함께해도 세상은 잠시도 잠잠하지 않고, 잠잠해지는 것이 끝이라고 신화는 말한다. 지금도 다르지 않다. AI가 에너지를 빨아들이고, 전쟁이 어딘가에서 멈추지 않고, 정치판에는 늘 시슈팔라가 있다. 그 난동꾼이 어쩌면 자신도 모른 채 낡은 뉴런을 끊는 역할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세미나가 끝나고도 한참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잔치를 망친 자가 빛이 되어 돌아갔다. 끊어짐이 귀환이었고, 소란이 완성이었다. 원반이 날아가는 그 장면을, 나는 아직 다 읽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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