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탐구 세미나] S2 3주차 후기
페이지 정보
작성자 Vedehi 작성일26-05-14 10:15 조회97회 댓글1건본문
‘죽음’이라는 주제어를 놓고 함께 생각해 보는 세 번째 시간. 아쉽게도 우주님, Luis님, 인경님 결석으로 조촐한 오인(五人)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두둥~
『장자』는 읽을수록 지금의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포정(庖丁)의 이야기는 우리를 ‘나는 어떤 자세로 타인을 대하고 있는가’, 라는 생각으로 이끌었다. 선한 사람을 선한 자세로 대하기는 쉬우나, 악한 사람을 선하게 대하기는 정말 어렵다. ‘날 없는 칼’로 소를 잡는다는 포정의 이야기는 신기에 가깝다. 19년을 쓰고도 방금 간 칼처럼 날이 새것이라니, 힘을 줄 필요도 없었다는 말씀인데, 이에 대한 노하우를 포정은 ‘소의 타고난 결을 따른다’고 설명하고 있다. “저는 기(技)를 따르지 않고 신(神)을 따릅니다.” 쿨하다.
타고난 결을 따른다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이런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내가 화가 나는 이유는 상대가 선하지 않아서이기 전에 ‘나의 기준이 옳다’는 생각이 바탕에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는 서로 다른 기준이 가로놓여 있고, 그것들을 한 발 떨어져 볼 수만 있어도 관계는 평화로워질 것이다.
타인에게는 예의 바르면서도 편안한 남편에게는 속마음을 내지르는 나, 기쁘게 베풀면서도 생색을 내고자 하는 나, 사랑하기 때문에 자식에게 병주고 약주는 나. 우리의 이러한 모순된 마음을 헤집어 보며 장자의 심재(心齋)를 떠올려 보았다. ‘마음을 굶긴다’는 것은 자신도 모르게 옳다고 여기며 붙잡고 사는 삶의 기준들을 버림을 말하는 것일 거다. 나의 기준을 버리면 너의 기준을 이해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이니, 꽉 쥐고 있는 것을 놓아!
그런데 양생(養生)을 말한다면서 왜 ‘노자의 죽음’이 들어있는 것일까? 아마도 죽음에 대한 태도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기 때문이지 않을까. 이 세상에 태어난 것도 때를 만났기 때문이고, 세상을 떠나는 것도 순리일 것이니, 죽음이란 하늘님의 매닮에서 풀려나는 것일 뿐. 죽음을 이렇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현재 나를 얽매고 있을 고정관념들을 놓아버릴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빅터 프랭클의 글처럼 살겠다는 본능이 강렬하게 지배하는 환경 속에서 죽음을 ‘현해(懸解)’로 볼 수 있는 마음의 힘이 가능할 것인가. 우리의 대화는 의심과 내적 자유에 대한 확신 사이에서 오락가락하였다. 어쩌면 내적자유란 극단의 상황을 살아내는 본능적인 생존 전략인 것이다.
인간세(人間世)편의 키워드는 단연 ‘쓸모없음의 쓸모’였다. 태어나면서부터 ‘쓸모’를 주입 받으며 살았고, ‘쓸모’를 향해 달려왔으며, 다음 세대들에게도 ‘쓸모’를 열심히 전달했던 우리들. 나이를 먹으니 이제 장자의 무용지용(無用之用)이 마음속으로 훅 파고든다. ‘쓸모’라는 말은 얼마나 폭력적이냐. 나의 기준, 우리의 기준, 인간의 기준을 강요하는 생각이었음을 절절히 느끼는 대화가 오고 갔다. 우리에게는 정말 ‘쓸모’에서 벗어나 타고난 결을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데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였다.
동서(東西)라는 공간적 거리와 이천 년이 넘는 시간적 벌어짐에도 불구하고, 장자와 빅터 프랭클 두 사람은 전쟁터의 한복판에서 살아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전혀 다른 말을 하고 있을 때조차도, 그 말들의 끝에서는 내면의 중심을 잃지 않고 삶과 죽음을 받아들이는 지혜를 읽을 수 있다. 죽음에 대한 탐구는 삶의 자세로 이어진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이 말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말과 동의어임을 발견한다.
댓글목록
라다크님의 댓글
라다크 작성일장자의 깊이와 넓이는 어디까지일까요? 빅터 프랭클로 인해 문득 선명해지는 부분이 있네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느낌적인 느낌으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