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탐구세미나]S1<죽음의 부정> 5주차 발제, 김소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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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라다크 작성일26-02-24 10:19 조회41회 댓글0건본문
2부 영웅주의 실패 / 제9장 정신분석의 현재 성과 / 발제: 김소현
‘인간이 더 정상적이고 건강하고 행복하다면, 자신을 더 성공적으로 억압하고 대체하고 부정하고 합리화하고 극화하고 타인을 기만할 수 있다면 고통스러운 진실로부터 신경증의 고통이 찾아온다“ –오토랑크-
랑크는 신경증이 인간 삶의 거의 모든 문제를 포괄하기 때문에 이를 일관된 체계로 정리하지 못했으며(반면 프로이트는 몇 가지 원리로 단순화함), 신경증은 포괄적으로 실존적 진실을 견디기 어려운 현상, 개인마다 고유한 양식적 반응을 만들어내는 사적 현상, 과거 사회적·이데올로기적 장치가 사라지며 의료·정신분석 영역으로 이동한 역사적 현상이라는 세 가지 상호 의존적 측면을 가지는 특성이 있다.
다음으로 신경증의 유형을 분류해보면 3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개인 성격의 문제로서의 신경증으로 세상에 대해 지나치게 움츠러드는 경우와 세상에 대해 지나치게 개방적인 경우이다
1-1. 세계를 부분화(Partialization), 절편화하기
세계를 부분화·절편화하는 신경증은 공포와 불안을 피하기 위해 세계를 좁히고 경험을 차단하는 인간의 보편적 방식이며, 프로이트가 말한 억압이 정상적 자기보호이자 창조적 자기제약·본능의 대체물이라는 점에서 정상성과 신경증은 모두 현실을 거부하며 불안을 다루려는 동일한 현상으로 이해된다. 프로이트는 이를 전이신경증으로 표현함. 예) ① 연인에게서만 구원을 찾음 ②손 씻기, 확인하기 등
1-2. 부분화와 절편화에 어려움을 겪는 유형의 인간.
이 유형의 신경증은 너무 많은 경험과 세상의 너무 많은 부분에 관여한다. 이들은 고립과 개별성을 느끼며, 현실 전체가 근심거리로 다가와 온갖 고통을 겪게 된다.
랑크는 이를 어떤 사람은 분리되지 못하고, 어떤 사람은 통합되지 못한다고 설명. 이상적 상태는 실존적 진실을 견디기 어려운것과 개인마다 고유한 양식적 반응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것이며, 균형을 맞추지 못하는 이유는 개인의 인생사 속에서 찾아야 함.
즉, 신경증은 단순한 병리라기보다 삶과 죽음, 통합과 분리 사이에서 균형을 찾지 못하는 인간의 실존적 문제로 이해할 수 있다.
1-3. 예술가는 가장 신경증적.
예술가는 세상을 총체적으로 받아들여 그로부터 대체로 상징적인 문제를 만들기 때문에 가장 신경증적이다. (예: 토머스 칼라일)
예술가와 광인의 차이는 생산유형에 따라 창조적 과정을 객관화할 수 있는지 여부에 달려 있으며, 일상적 광기로는 힘들고 어려운 업무에 태연히 복귀하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참고로, 임상적 문제로서의 신경증이란 장애를 일으키는 증상이나 산다는 것에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임.
둘째, 현실과 환각의 문제(정상성과 신경증의 결합문제)
인간은 자신이 끄떡없다는 환각이 거짓임을 직면해야 한다. 랑크에 따르면 현실을 진실로, 겉모습을 본질로 받아들일수록 더 잘 적응하고 행복해지며, 이러한 자기기만·위장·실수의 반복적 과정은 병이라기보다 인간이 삶에 적응하는 방식이다. 이런 환각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신경증 환자들은 삶으로부터 도피를 선택, 이는 삶이 환각을 유지해야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말함. 일례로 문화적 환각은 집단으로 공유하는 상징적 믿음이나 이데올로기를 말하며, 이는 인간이 삶을 지탱하는 집단적 상징체계로 이를 잃으면 존재 자체가 흔들리게 된다. 예로 원시인의 문화를 말살을 들 수 있으며, 이 문화 말살은 그들을 죽이거나 그저 싸우고 교미하는 동물 수준으로 전락시킴. (예: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문화적 말살)
셋째, 역사적 차원에서의 신경증. 이는 성격 차원과 문화적 환각·창조적 놀이의 차원이 결합한, 가장 포괄적이고 중요한 접근으로 이해된다. 전통사회에서는 일상적 의무만으로도 영웅성을 확보할 수 있었지만, 현대인은 집단 이데올로기 보다는 스스로에게만 의존하는 ‘심리학적 인간’이 되었다. 과학적 심리학은 인간의 불행을 개인 인생사로만 축소해 영적·도덕적 기반을 제공하지 못한 채 신이 사라진 자리를 대신에 하려 했으나 인간이 원하는 경이와 의미를 주지 못했다. 즉, 정신분석은 인간의 내성을 치료하기보다 인간에 대한 심리학적 설명만 강화했기 때문에 치료로서 실패했다.
#랑크와 키르케고르: 죄와 신경증의 융합
둘의 결론은 과학적 설명이 끝나는 지점에서 신학이 자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의 갈등과 죄책감을 흡수하고 어떤 영웅적 신격화 가능성을 제시하는 세계관)
죄와 신경증이 같다는 두 가지 방법으로는 죄와 신경증은 모두 개인이 큰 존재와의 조화를 거부하고, 고립된 자아 안에서 과도하게 팽창된 세계를 만들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닮았으며, 이는
① 자신을 실제보다 더 큰 존재로 부풀려 우주적 의존성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
② 피조물성을 거부한 비현실적 자기팽창이 결국 강화된 자의식에 대한 형벌로 돌아와 자기비판과 고통을 심화시키는 과정으로 나타난다. 전통종교의 죄의식은 신 앞에서 ‘아무것도 아님’을 받아들이게 하지만,신경증은 ‘아무것도 아닌 자신’을 견딜 수 없어 고통스러운 공허와 비참한 소멸감에 빠진다는 점이다.
#이상으로서의 건강
인간은 본래 모순을 안고 살아가는 태생적 신경증을 지니지만, 개인적 위기나 영웅주의의 붕괴가 심화되면 신경증은 정신의학적으로 문제가 드러난다. 랑크와 키르케고르는 이를 치유하는 길로 피조물로서 자신을 받아들이는 세계관을 제시했으나, 현대인은 논리·인과·가시성을 중시하는 시대에 살기 때문에 이러한 영적 확장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러나, 신경증 환자는 현실을 너무 명료하게 인식해 영적 확장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환자(광인)와 정상인의 차이는 가끔은 세상을 대충 가볍게 넘길 수 있는 능력여부에 있다.
결국 랑크가 말한 치료는 정당한 어리석음의 회복. 즉, 자유·존엄·희망을 주는 환각 말하며, 이런 환각 통해 인간이 겪는 신경증적 불안이 창조적인 삶으로 바뀔 수 있음을 뜻한다. 즉, 삶, 죽음, 현실에 대해 거짓말을 하지 않는 미더운 환각, 스스로의 명령을 따를 만큼 미더운 환각, 자신을 정당화하려고 죽이지 말 것, 타인의 생명을 뺏앗지 말라는 것으로 랑크는 이를 이상적 기독교에서 찾았으며, 그의 평생에 걸친 정신분석학 연구를 이 사상전통으로 끝맺는다.
추가로, 프로이트와 융이 로마에 끝내 들어가지 못한 일화는 그들의 내적 갈등과 상징적 부담을 보여주는 사례로 남는다.
# 함께 의견 나누어보아요
1)인간에게 필요한 ‘정당한 어리석음’이란 무엇인가?
2)왜 심리치료는 신이 사라진 자리를 완전히 대체하지 못하는가?
3)현재 정신분석이 실패한 이유는? 이성적, 논리적, 과학적 사고가 영적사유를 대체하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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