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탐구 세미나] S1 <죽음의 부정> 1주차 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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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라다크 작성일26-01-20 18:42 조회73회 댓글0건본문
[죽음 탐구 세미나] S1 / 『죽음의 부정』 발제 1, 2장 / 20260121 고은경
“베커가 이 책에서 밝히고자 하는 것은 ‘죽음의 공포는 보편적’이라는 것이다.
그는 오토랑크의 사상체계를 따라 죽음의 공포가 보편적이라는 것을 논증하고자 한다.”
1장. 인간 본성과 영웅적인 것
영웅주의라는 개념은 우리(동양)에게 친숙한가?
서양에서 영웅주의 개념은 에머슨, 니체, 윌리엄 제임스 등에 의해 오래전부터 알려져 왔다. 영웅주의를 이해하는 핵심에는 프로이트의 업적인 ‘자기애’가 있다. 전쟁에서 사람들을 총구 앞으로 행진하게 하면서 내심 자신이 죽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것을 자기애라 할 수 있다. 인간은 자신의 정체성과 활동을 의식적으로 ‘불멸’이라고 느낀다. 인간에게 자존감, 자기가치감과 자기애는 분리할 수 없다. 자기애는 상징적이고 자신의 가치에 대한 추상적 관념이다. 죽어가는 순간에도 영원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인간이다.
평소 자기애, 자기 가치감이 드러나는 상황은?
아동의 형제간 경쟁은 존재를 돋보이려는 욕망, 피조물 중 뛰어난 것이 되려는 욕망의 표출이다. 타고난 자기애가 자존감과 결합하면 자신을 일차적 가치의 대상으로 여기는 피조물이 탄생한다. 인간은 자기가치감을 상징적으로 받아들이며 주변 존재들과 비교하여 자신이 2등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안간힘을 쓴다. 인간은 자신이 우주에서 제일 가치있는 존재임을 증명하여 영웅이 되고 세상에 최대한 기여하여 자신이 누구보다 중요한 존재임을 입증해야 한다.
사회에서 영웅주의를 부추기는 이유는?
사회는 영웅체계를 세우고 사람들에게 그 역할을 충족하도록 독려한다. 따라서 영웅주의는 억눌린 힘을 분출하여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사회는 세속적 영웅주의를 매개로 각 구조는 나름대로 고유하며 문화마다 각각의 영웅체계가 있다. 인간의 바람은 사회에서 창조하는 것이 영속적 가치와 의미를 갖는 것, 자신이 죽음과 부패보다 오래 살아서 빛나는 것, 자신과 자신의 산물이 인정받는 것이다. 문명사회에서 사회와 돈, 재화는 인간을 어느 동물보다 중요한 존재로 만드는 희망찬 신념이자 항변이다.
인간은 영웅적 느낌을 얻으려고 행하는 일에 대해 얼마나 스스로 의식하고 있을까?
영웅주의 욕구의 진실을 누구나 쉽사리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에는 비열한 영웅성이 존재한다. 히틀러 같은 파괴적인 영웅성과 소비재의 획득과 과시, 돈과 특권의 축적과 같은 천박한 영웅성이 있다. 영웅성의 문제는 자기애에 바탕을 두며 자존감에 대한 아동의 욕구를 토대로 삼는다. 소비에트 종교, 마오주의 종교, 과학 종교, 소비 종교 등등 사회는 종교적이다. 오토랑크는 인간의 문화 창조물에 담긴 이 종교적 성격을 심리학적으로 밝힌다. 키르케고르에서 프로이트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150년 동안의 정수를 살펴보자.
2장 죽음의 공포
영웅주의와 관련해 무엇이 영웅성에 특유한 성격과 원동력을 부여하는지 밝혀보자. 인간을 움직이는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죽음의 공포’라는 사실이다. 영웅주의란 무엇보다 죽음의 공포에 대한 반사작용이다. 우리 자신이 죽음 앞에서 얼마나 용감할지 자신이 없기때문에 우리는 죽음에 맞서는 용기에 깊이 감동한다. 인류의 진화가 시작된 이래로 영웅은 인간적 영예의 중심에 자리 잡았다. 영웅은 죽음의 세계에 들어갔다가 산 채로 돌아온 사람들이었다. 기독교는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 초능력의 치유자(예수)를 내세워 승리했다. 부활절이 죽음에 대한 승리이자 바로 그 기쁨이다. 이 숭배는 죽음과 죽음의 공포라는 ‘최대의 악’으로부터 면제받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모든 종교는 삶의 끝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종교로부터 주도권을 넘겨받은 철학 또한 죽음의 문제를 그리스에서 실존주의에 이르기까지 진정한 뮤즈로 취급한다. 이 주제는 종교, 철학, 과학에서 방대한 저작과 사유를 배출해 왔다.
두 가지 주장들
첫 번째 주장은 죽음에 대한 공포는 인간에게 자연스럽지 않으며 우리가 이를 타고나지 않았다고 한다. 아동은 3-5살 전에는 죽음을 전혀 알지 못하고 죽음의 필연성에 대한 인식은 9-10살이 되어야 한다고 한다. 이 불안은 사회가 만들어내는 것이며 개인을 복종시키는데 이용된다는 것이다. 인생 초기에 나쁜 경험을 한 사람들이 죽음 불안에 지독히 사로잡힘을 알 수 있고 죽음 불안 개념이 실존주의자와 프로테스탄트 신학자에게 수입되었다고 주장한다.
두 번째,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자연적이고 모든 사람에게 존재하며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기본적인 두려움이자 위장하더라도 면제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윌리엄 제임스는 ‘죽음을 행복한척하는 인간의 중앙에 자리 잡은 벌레’라고 했다. 죽음은 진짜 얼굴을 보여주지 않기에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정신활동에는 죽음에 대한 불안이 늘 상존하는데 그것은 자기 보전본능, 생명을 유지하는 원동력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편안하게 살아가려면 이 두려움을 적절히 억압해야 한다.
생물 진화론에 따르면 동물은 생존을 위해서 두려움 반응을 통해 보호받아야 했고 인간은 불안해할 이유가 없을 때조차 그럴 이유를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초 불안적 동물이라고 한다. 정신분석학에서 아동의 독특한 세계인식 방법은 미성숙한 에고로 인해 과장된 잠재력과 과도한 공포를 경험한다고 한다. 적어도 한동안은 다른 동물이 겪지 않는 내적 혼돈감을 지닌 채 살아간다. 죽음 자체는 단순한 상태가 아니라 복합적 상징이며 그 의미는 사람마다 문화마다 달라질 수 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어떻게 사라진 것일까?
억압이 대다수에게서 죽음의 복합적 상징을 처리한다. 피부 전기반응으로 피험자가 ‘자신이 죽음에 대한 의식을 억압하고 있음을 부정하는 현상’을 파악하는 연구가 늘고 있다.
억압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억압은 인간이 생명 에너지로 살아가며 이를 창의적으로 활용하게 한다. 유기체는 삶의 경험에 자신을 확장하고 영속화함으로써 스스로 나약함에 적극적으로 맞선다. 움츠러들기보다는 더 많은 생명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아동이 죽음이라는 개념을 쉽게 억압할 수 있는 것은 자기애적인 활력 덕에 죽음에 맞서 강해지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내적 떠받침을 더 많이 가지고 있어 심각한 위기뿐 아니라 급격한 성격 변화까지도 쉽게 헤쳐나갈 수 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의 복합적 상징의 세기는 발달과정의 성격과 부침에 의존한다.
성격 방어는 자신을 돋보이지 않게 하고 사람과 문화적 외부의 힘에 자신을 적응하는 법을 배우게 한다. 만약 억압이 더는 작동하지 않고 활동의 추진력을 낼 수 없을 때 사람들은 정신증적 발작을 일으킨다. 인간이 불안할 필요가 없도록 억압이 여러 방법을 통해 그들의 불안을 가라앉힌다. 인간은 죽음에 대해 서로 다른 이미지를 그리고 선택할 수 있다. 어느 이미지와 동일시하기로 선택하는가는 그 자신에게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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