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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 특강] 4주 라듐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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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andi 작성일26-02-20 10:26 조회5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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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프리카에서 독립운동의 성과가 쌓여가던 무렵, 간디는 인도에 있는 형 락스미다스에게 편지 한 통을 보냈다. 그동안 변호사로 벌어 보내던 돈을 이제부터 한 푼도 보내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무소유를 실천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형은 자신을 유학까지 보낸 동생에게서 이런 편지를 받고 격렬하게 항의했다. 간디가 인도로 돌아가기 전에 형은 죽었다.

그는 이때의 충격을 감추지 않았다. 상상할 수 없는 최악의 슬픔이라고 썼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이 충격들로 인해 내 마음속에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더욱 사라져버렸다. 애도 자체에는 이기적인 면이 있다. 다른 사람의 죽음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것은 그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상실감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상실감의 뿌리는 자신의 죽음에 대한 공포다. 이것이 바뀌지 않으면 다라사나에서 손을 내릴 수 없다.

그는 아힘사의 구성 요건을 세 가지로 말했다. 비폭력, 죽을 각오, 미워하지 않을 것. 이 셋 중에 죽을 각오가 가장 쉽다고 했다. 죽음을 불사하면서도 재산은 내놓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목숨은 걸면서도 사랑하는 이를 잃는 것은 참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미움 없이 죽겠다는 것, 이것이 고난도의 경지다. 다라사나에서 손을 내린 채 곤봉을 맞은 사람들은 죽을 각오를 한 것이 아니라 미움을 내려놓는 훈련을 한 것이었다. 형의 죽음 앞에서 간디가 도달한 것도 같은 자리였다.

1930년 3월, 간디는 소금 행진을 시작하기 전 총독 어윈에게 편지를 보냈다. 행진의 날짜, 경로, 목적을 상세히 적었다. 이달 11일, 아슈람의 동료들과 소금법을 무시하는 행진을 할 것이다. 당신이 나를 체포해 계획을 좌절시키든 말든 그것은 당신의 자유다. 총독은 어떤 정부 수뇌가 받은 편지보다 이상한 편지라고 했다. 전략적으로 불리한 이 행동을 간디는 왜 했는가. 비밀은 민주주의의 참된 정신을 방해한다는 것이 그의 대답이었다. 몰래 해야 하는 일이 생기는 순간, 그것은 이미 공포가 작동하고 있다는 신호다. 아무도 믿을 수 없어서 극소수에게만 알리고, 새 나갈까 봐 숨기고, 그러다 구멍이 생긴다. 말과 행위가 어긋난 채 자기 합리화를 쌓아가면, 상황이 불가피했다고 시작했다가 어느새 자신이 반대하던 것을 옹호하는 자리에 서게 된다. 총독에게 미리 알린 것은 전술이 아니라 아힘사의 실천이었다. 공포 없이 행동하는 것을 일상에서 증명하는 방식이었다.

간디는 비폭력을 라듐에 비유했다. 그의 말은 이러했다. 라듐은 악성 종양 안에 극미량만 투여되어도 지속적으로 조용히 부단히 활동하다가 마침내 병든 조직을 건강한 것으로 변화시킵니다. 비폭력도 소리 없이 미묘하게 보이지 않게 활동하며 사회 전체를 서서히 변화시킵니다. 퀴리 부인이 라듐을 발견한 것이 1898년이었다. 1911년 그의 두 번째 노벨상이 세계 과학계의 화두가 되던 그 시기에, 간디는 방사성 원소의 성질에서 비폭력의 작동 방식을 읽어낸 것이다.

폭력은 즉각적이다. 곤봉을 휘두르면 곧장 쓰러진다. 그 즉각성이 폭력을 합리적 수단처럼 보이게 한다. 라듐은 다르다. 보이지 않고 소리가 없고 느리다. 다라사나에서 손을 올리지 않은 사람들이 쓰러지는 장면이 세계 언론으로 퍼졌을 때 영국이 잃은 것은 피가 아니라 정당성이었다. 그 손실은 즉각 계산되지 않는다. 그러나 종양 안의 라듐처럼 조직을 안에서부터 바꾼다.

라듐은 병든 조직 안에 투여되어야만 효과를 낸다. 안전한 거리에서는 작동하지 않는다. 그리고 라듐이 병든 조직을 바꾸려면 라듐 자체가 충분히 순수해야 한다. 다른 물질과 섞이면 활성이 약해진다. 두려움이 남아 있으면, 집착이 남아 있으면, 말과 행위가 어긋나 있으면, 아힘사는 작동하지 않는다. 수행자들만의 윤리가 아니라 모든 사람의 것이어야 한다는 간디의 주장은 이상이 아니었다. 비폭력이 효과를 내려면 삶 전체를 관통하는 방식이어야 한다는, 라듐의 조건이었다.

명랑함이라는 말이 아슈람의 수련 지침에 등장하는 것도 이 맥락이다. 명랑함은 상황을 가볍게 여기는 태도가 아니다. 집착을 내려놓을수록 찾아오는 상태다. 두려움이 줄어드는 만큼 세계가 열리고 그 열림이 일상을 흥미롭게 만든다. 간디는 감옥에서도 행복하다고 썼다. 야외에서 자는 것이 건강에 좋다고 믿었던 그에게 감옥의 맨바닥은 불행이 아니었다. 대중이 그를 신뢰한 것은 이 일관성 때문이었다. 어떤 판단을 내리든 그 판단 아래에 사심이 없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아보았다.

1930년 4월 5일 새벽, 간디는 바다에 들어갔다가 해변으로 돌아와 파도가 남긴 소금을 한 줌 집어 들었다. 78명이 맨발로 24일 동안 하루 36킬로미터를 걸어 도착한 자리였다. 행진 중에도 매일 한 시간씩 물레를 돌렸고 일기를 썼다. 61세의 간디와 함께 걸었던 청년들이 힘들다고 했을 때, 그는 말했다. 요즘 세대는 너무 응석을 부린다고.

그 소금은 나중에 경매에서 500달러 이상에 팔렸다. 상징의 값이 그만큼이었다. 그러나 소금 행진의 의미는 상징에 있지 않다. 맨발로 걷는 것, 걸으면서 물레를 돌리는 것, 철책 앞에서 손을 내리는 것, 형에게 돈을 끊겠다고 편지를 보내는 것, 총독에게 행진 계획을 미리 알리는 것 — 이것들이 하나의 삶의 방식으로 합쳐질 때 비로소 라듐이 활동하기 시작한다. 다라사나의 철책 앞에서 손을 내린 채 곤봉을 맞은 사람들이 훈련한 것은 기술이 아니었다. 두려움이 없는 몸을 만드는 일이었다. 그 몸이 철책 앞에 섰을 때, 세계는 무엇이 폭력인지를 보았다. 소금 한 줌의 무게는 거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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