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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철학의 질문들] 시즌3-1 결혼이라는 제의, 관계라는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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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andi 작성일25-12-08 09:21 조회3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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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라는 제의, 관계라는 신

슈뢰딩거는 결혼을 하고도 굉장히 자유로운 연애 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 시대로서는 파격적인, 어떻게 보면 방종으로까지 보일 수 있는 삶이었다.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그저 바람둥이 과학자의 일화쯤으로 치부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슈뢰딩거와 관계했던 여성들의 증언에는 원망이나 배신감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랑이 끝났는데도 관계는 지속되었고, 몇 년이 지나서도, 때로는 평생토록 그 여성들은 슈뢰딩거를 가슴속에 품고 살았다.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단순한 일탈이나 육체적 쾌락의 추구로 보기에는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그리고 캠벨의 이야기를 읽다가 문득 깨달았다. 슈뢰딩거는 베단타 철학을 근간으로 그런 관계를 형성했다는 것을. 그에게 관계란 일종의 제의였을지도 모른다. 신과의 합일을 이루고자 하는 의식, 환희와 기쁨을 표현하는 방식으로서의 부자, 슈뢰딩거는 여성들과의 관계를 그렇게 이해했을 수 있다.

캠벨은 결혼을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결혼이란 관계라는 신 앞에 자아라는 재물을 바치는 것이라고. 이 문장에는 깊은 통찰이 담겨 있다. 우리는 흔히 결혼을 두 개인의 결합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캠벨이 보기에 결혼은 그 이상의 무엇이다. 그것은 자아를 닫아버리는 제의다. 에고라는 작은 자아를 희생시키고, 관계라는 더 큰 실재 앞에 자신을 내어놓는 것,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결혼이다.

인도 철학의 용어를 빌려 말하자면, 이것은 에고와 아트만의 문제다. 에고는 닫혀 있는 자아, 세계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키고 경계를 긋고 소유하려는 자아다. 반면 아트만은 완전히 세계와 열려 있는 자아, 우주적 실재와 하나로 연결된 자아다. 결혼이라는 제의에서 우리가 희생시켜야 하는 것은 바로 이 에고다. 소유욕, 지배욕, 자기중심성으로 가득 찬 작은 자아를 내려놓을 때, 비로소 우리는 관계의 신성함을 경험할 수 있다.

그렇다면 슈뢰딩거의 삶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가 여러 여성과 관계를 맺었지만 그 누구도 소유하려 하지 않았다는 점, 관계가 끝난 뒤에도 그 관계성 자체는 지속되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베단타 철학에서 말하는 아트만의 합일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소유욕이 개입하지 않는 순수한 만남, 에고의 경계가 무너진 연결, 상대를 나의 확장이 아니라 우주적 실재의 다른 표현으로 보는 시선. 물론 이것은 위험한 해석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적 맥락에서 이런 관점은 쉽게 자기합리화의 도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행위 자체가 아니라 그 행위가 일어나는 의식의 상태다. 소유하려는 에고가 작동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제의가 아니라 탐욕이 된다. 하지만 슈뢰딩거의 사례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관계란 무엇인가. 소유 없는 관계가 가능한가. 에고를 내려놓은 사랑은 어떤 모습일까.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가.

 

캠벨은 현대 사회에서 이혼이 잦은 이유를 설명하면서 흥미로운 말을 한다. 그들은 아직 결혼을 한 것이 아니라고. 자기 반쪽, 자신의 또 다른 자아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 이혼을 한다는 것이다. 결혼은 실현이라고 그는 말한다. 무엇의 실현인가. 둘이 하나가 되는 것의 실현, 분리되어 있던 한 쌍이 다시 합일하는 것의 실현이다. 하지만 동시에 결혼은 시련이기도 하다. 자기 것을 주장하는 사고방식과는 양립할 수 없는 것이 결혼이다. 여기서 자기라는 말이 두 가지 의미로 쓰인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소문자 self와 대문자 Self의 구분이다. 우리가 버려야 하는 것은 소문자 자기, 즉 에고다. 하지만 우리가 실현해야 하는 것은 대문자 자기, 즉 우주적 자아다. 결혼은 이 전환의 과정이다. 닫힌 자아가 열린 자아로, 소유하는 자아가 존재하는 자아로 변화하는 과정, 그것이 결혼이라는 영적 수련이다. 이렇게 본다면 결혼을 둘러싼 현대의 많은 갈등과 문제들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우리는 결혼을 두 개인의 계약으로, 권리와 의무의 교환으로, 혹은 사랑의 완성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차원이 있다. 결혼을 하나의 제의로, 영적 실천으로 본다면, 그 안에서 겪는 모든 어려움과 시련이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그것은 단순히 견디고 극복해야 할 장애물이 아니라, 자아를 변화시키는 과정 자체다.



마하바라타가 던지는 질문들

마하바라타는 끄샤트리아, 즉 전사 계급의 이야기다. 인도의 카스트 제도에서 최고 위치에 있는 것은 브라만, 성직자 계급이다. 그런데 왜 이 위대한 서사시는 브라만이 아니라 끄샤트리아를 중심에 두었을까. 왜 명상하고 제의를 집행하는 성직자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싸우고 통치하는 전사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가.

이 질문은 단순해 보이지만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신화는 보통 신이나 성인, 초월적 존재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하지만 마하바라타는 철저하게 인간적이다. 물론 신들이 개입하고, 초자연적 사건들이 벌어지지만, 이야기의 중심에는 욕망하고 갈등하고 실수하는 인간들이 있다. 그들은 영웅이지만 동시에 나약하고, 지혜롭지만 동시에 어리석고, 고결하지만 동시에 탐욕스럽다.

마하바라타의 인물들은 말할 때마다 다르마를 언급한다. 다르마가 말했다, 다르마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다르마를 저버릴 수 없다. 다르마는 법이고, 정의이고, 의무이고, 우주의 질서다. 그들은 끊임없이 다르마를 의식하고, 다르마에 따라 살려고 애쓴다. 하지만 그들의 실제 행동을 보면 종종 아다르마, 즉 반(反)다르마로 여겨질 때가 있다. 이것은 그들이 위선적이어서가 아니라, 다르마 자체가 단순한 규칙의 집합이 아니기 때문이다.

위드라의 경우를 보자. 그는 다르마의 화신이다. 법의 신이 인간의 몸을 입고 태어난 존재다. 그는 재물의 진수를 꿰뚫어 알고, 욕정과 분노를 이겨낸 고결한 인물이다. 그런데 그의 탄생 배경에는 저주가 깔려 있다. 그는 수드라, 즉 가장 낮은 카스트의 여인에게서 태어난다. 보행자의 저주 때문이다. 나미의 날개에 침을 박은 죄로 인해 그는 수드라의 몸에서 태어나야 했다.

여기서 질문이 생긴다. 위드라가 진리를 알고 탐욕과 분노에서 벗어났다는 것만으로, 이 계급적 논리가 정당화될 수 있는가. 고결함과 지혜가 낮은 신분을 상쇄할 수 있는가. 아니면 신분이라는 것 자체가 문제인가. 다르마는 이 모순을 어떻게 설명하는가.

판두 왕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는 훌륭한 왕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도 저주가 따라다닌다. 그의 다섯 아들, 판다바 형제들은 사실 그의 친자식이 아니다. 저주 때문에 그는 아내와 동침할 수 없었고, 아내들이 신들을 불러 낳은 아이들이 판다바다. 이것도 다르마인가. 혈통과 정통성을 중시하는 사회에서, 왕의 아들이 왕의 피를 받지 않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마하바라타는 이런 모순들로 가득하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다르마를 외치지만, 그들의 삶은 끊임없이 다르마의 경계를 시험한다. 무엇이 정의로운가. 무엇이 옳은가. 상황에 따라, 입장에 따라, 다르마는 다른 얼굴을 보인다.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것처럼 보이는 다르마가, 실은 얼마나 복잡하고 미묘한 것인지 이 서사시는 보여준다.

그래서 마하바라타는 브라만이 아니라 끄샤트리아의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브라만은 제의를 집행하고, 경전을 외우고, 명상을 한다. 그들의 삶은 비교적 명확한 규칙을 따른다. 하지만 끄샤트리아는 다르다. 그들은 통치해야 하고, 전쟁터에 나가야 하고, 복잡한 정치적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들의 삶은 선택의 연속이고, 그 선택은 언제나 딜레마를 동반한다.

 

전쟁터에서 친족을 죽여야 하는가. 정의를 위해 사랑하는 이를 희생시켜야 하는가. 더 큰 선을 위해 작은 악을 저질러야 하는가. 이런 질문들에는 쉬운 답이 없다. 마하바라타는 바로 이 답 없는 질문들을 우리에게 던진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진짜 삶이다. 우리의 삶은 브라만의 명상실이 아니라 끄샤트리아의 전쟁터를 닮았다. 하지만 이 서사시가 보여주는 것은 전쟁터만이 아니다. 그 이면에는 가문을 지키려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생존을 위한 선택들이,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관계의 형태들이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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