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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철학의 질문들] 5주 영화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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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andi 작성일25-05-27 23:14 조회2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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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함께한 매일

 "자재한 이는 행위를 주재하지 않고, 행위 자체도 세상에 만들지 않으며, 행위와 결과를 연결 짓지도 않느니. 단지 각자가 본래 지닌 힘으로 굴러가게 할 뿐. 권능한 이는 누구의 악행도, 또 누구의 선행도 취하지 않는다." (바가와드 기따, 위야사 저, 박경숙 역,  새물결, 2022년, P111)
처음 이 문장을 읽었을 때는 당황했다. 아무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뜻인가? 노력도, 계획도, 목표도 모두 무의미하다는 건가? 현대 사회에서 "자기계발"과 "목표 달성"이 미덕인 상황에서 이 말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픽사의 영화 '업'을 다시 보면서 이 문장의 의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칼과 엘리는 평생 남미의 파라다이스 폭포를 가겠다는 꿈을 위해 돈을 모았지만, 집 수리비, 병원비, 예상치 못한 일들로 저금통은 계속 비워졌다. 엘리는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영화의 메시지는 여기서 나온다. 칼이 발견한 엘리의 사진첩에는 함께 웃고, 함께 일하고, 함께 늙어가는 일상들이 담겨 있었다. 마지막 페이지의 메시지: "내 최고의 모험은 당신과 함께한 매일매일이었어요."
이 장면을 보면서 바가바드 기타의 문장이 다르게 읽혔다. "행위를 주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었다. 행위의 '소유권'을 내려놓으라는 의미였다. 우리는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계획했고, 내가 노력했으니까,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내 선택'이라고 믿는 것들이 사실은 얼마나 내 것일까? 넷플릭스 알고리즘이 추천한 영화를 보고, 구글 맵이 제시한 길로 이동하고, 인스타그램 피드에 떠오른 광고 상품을 구매한다. 심지어 뇌과학 연구에 따르면 우리가 "결정했다"고 의식하는 순간보다 350밀리초 전에 이미 뇌에서 그 행동이 준비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진짜 '주체'는 누구인가?
하지만 실제로는 어떤가? 새해 계획 중 "돈 더 모으기"(26%)와 "운동 더 하기"(22%)조차 3개월을 버티지 못한다. 예상치 못한 지출, 일정 변화, 몸의 컨디션 등 통제할 수 없는 변수들이 많다. 더 놀라운 것은 우리가 실패했다고 자책할 때조차 그 자책의 패턴마저 알고리즘처럼 예측 가능하다는 점이다. 1월에 헬스장 등록, 2월에 포기, 3월에 자책. 매년 반복되는 이 패턴에서 과연 '나'는 어디에 있는가? 칼과 엘리도 같았다. 그들이 '계획한' 것은 남미 여행이었지만, 실제로 '일어난' 것은 매일의 행복들이었다. 그들이 통제할 수 있었던 것은 여행 계획의 성공이 아니라, 매일 서로를 대하는 태도였다. 흥미롭게도 이들의 이야기는 소셜미디어 시대와 정반대다. 인스타그램에 올릴 완벽한 여행 사진을 위해 정작 그 순간을 놓치는 우리와 달리, 그들은 기록되지 않은 일상을 살았고 그것이 진짜 모험이 되었다


오늘 하루

"행위와 결과를 연결 짓지 않는다"는 말도 처음엔 이해하기 어려웠다. 노력하면 결과가 나와야 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하지만 내 경험도 다르지 않았다. 열심히 준비한 면접에서 떨어지고, 대충 간 면접에서 합격한 적이 있다. 준비한 프레젠테이션이 회의 취소로 무산되기도 했다. 노력과 결과 사이에는 예측할 수 없는 변수들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노력이 무의미한가? 그게 아니다. 노력 자체는 의미가 있다. 다만 그 노력이 반드시 내가 원하는 결과로 이어질 거라는 기대를 내려놓는 것이다. "각자가 본래 지닌 힘으로 굴러가게 할 뿐"이라는 표현에서 핵심을 발견했다. 이는 수동성이 아니라, 흐름에 맡기면서도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다.
이런 알아 차리고 몇 가지를 실천해보기 시작했다. 첫째, 결과 대신 과정에 점수를 매기기. 운동 계획을 세웠을 때 "몇 킬로 빠졌나?"가 아니라 "오늘 운동했나?"에 집중한다. 몸무게는 내가 통제할 수 없지만, 오늘 운동하는 것은 내 선택이다. 둘째, 매일의 것들 기록하기. 엘리의 사진첩처럼, 성취가 아니라 커피 한 잔, 친구의 안부 전화, 창밖의 새소리 같은 순간들을 기록한다.
셋째, 실패를 재정의하기. 계획이 무너졌을 때 "역시 난 안 돼"가 아니라 "정보를 얻었네"라고 생각한다. 헬스장을 3일만 다니고 그만둔 것도 "나에게는 집에서 하는 운동이 맞구나"라는 발견이다. 넷째, 소유감 내려놓기. "내 노력", "내 성과", "내 계획"이라는 소유욕을 내려놓는다. 대신 "지금 이 순간 할 수 있는 최선"에 집중한다.
"권능한 이는 누구의 악행도, 또 누구의 선행도 취하지 않는다"는 문장이 어려웠다. 그럼 도덕적 책임은 어떻게 되는 거지? 하지만 이것도 소유권의 문제였다. 선한 일을 했을 때 "내가 착한 사람이야"라고 자만하거나, 실수했을 때 "나는 나쁜 사람이야"라고 자책하는 것. 둘 다 소유욕에서 나온다. 대신 이렇게 생각해볼 수 있다.
선한 행동도, 실수도 모두 배움의 기회다. 그것들을 "내 것"으로 소유하려 하지 말고, 그저 경험하고 배우고 성장하는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바가바드 기타가 말하는 것은 이것이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결과가 아니라 태도다. 상황이 아니라 반응이다. 미래가 아니라 현재 이 순간의 선택이다.
칼이 엘리의 사진첩을 보며 깨달았듯이, 인생의 가치는 계획의 완성이 아니라 매일의 순간들 속에 숨어 있다. 그 순간들을 경험하고, 최선을 다하되, 결과에는 집착하지 않는 것. 강물이 흐르는 것처럼, 우리 삶에도 흐름이 있다. 그 흐름을 억지로 거스르려 하지 말고,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엘리와 칼이 남미 여행 대신 얻은 것이 바로 이런 삶의 흐름이었다.
그러니 내일 아침 눈을 뜨면 목표를 떠올리지 말자. 대신 "오늘 하루, 어떻게 살아볼까?"라고 자신에게 물어보자. 그 답 속에 자유로운 인생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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