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설수설 s3-3 우주는 왜 자꾸 멀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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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andi 작성일25-04-05 07:12 조회52회 댓글0건본문
우주는 왜 자꾸 멀어질까?
우주가 나에게 멀어질 때, 그 빛은 길게 늘어진다. 마치 골목길 저편에서 누군가가 "밥 먹어라~" 하고 부르는데, 그 목소리가 점점 멀어지면서 바람결에 실려 늘어지듯이 말이다. 빛도 소리처럼 파장을 가지고 있는데, 멀어질수록 그 파장이 길어진다. 이 현상을 과학자들은 '적색편이'라고 부른다.
붉은색은 파장이 길고, 푸른색은 짧다. 그러니 멀어지는 물체에서 오는 빛은 점점 붉게 물들고, 가까이 오는 빛은 파랗게 다가오는 셈이다. 우아한 색의 댄스 아닌가? 멀어질수록 붉어지고, 다가올수록 푸르러진다니.
이 적색편이라는 단서는, 우주가 우리에게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걸 말없이 알려주는 우주의 신호다. 하늘을 가득 채운 별빛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우리는 그 빛의 색을 읽으며 우주의 움직임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참 기가 막힌 소통 방식이다. 말 대신 색으로 말하는 우주라니.
1920년대, 한 손엔 망원경을 들고 다른 손엔 우주라는 수수께끼를 쥔 한 천문학자가 있었다. 이름하여 에드윈 허블. 이 사람, 밤하늘을 오래 들여다보다가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챘다. 별들이 자꾸 멀어지더라는 거다. 멀어지는 게 아니라, 그 빛이 길게 늘어지면서 붉게 물들고 있었다. 마치 고속버스가 지나간 뒤 남긴 매연처럼, 우주도 무엇인가를 흘리고 있었던 것이다.
허블은 직감했다. " 팽창이다! 우주가 숨 쉬고 있다!" 별빛은 장식이 아니라, 커다란 호흡의 징후였다.
그 소식을 들은 아인슈타인은 충격에 빠졌다. 한 손으로 수염을 쓰다듬고, 다른 손으로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말했다. "이런 젠장... 내가 괜히 우주 상수 넣었지 뭐야. 그거 없애야 돼!" 스스로를 '우주적 실수 제조기'로 임명할 정도였다.
우주의 풍선이 부풀고 있다는 사실 앞에서, 인류 최고의 천재조차 겸손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면 과거엔 어땠을까? 마치 식빵을 굽듯, 부풀어 오르기 전의 반죽은 작고 조밀했겠지. 논리지만, 그 단순함이 종종 진실에 닿는다.
과거의 우주는 지금처럼 거대하고 시끄럽지 않았다. 아니, 작아도 작았다. '점'이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그 점 안에 시간과 공간, 에너지와 물질, 우리가 아직 이름조차 붙이지 못한 가능성들이 한데 뭉쳐 있었다.
러시아 과학자 조지 가모프는 그런 생각을 했다. "우주는 한 점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 점이 어느 순간 갑자기, 마치 장난감 풍선이 바늘에 찔린 듯, 빵! 하고 터졌을 것이다."
우주가 탄생한 그 장면, 보고 싶지 않은가? 물론 카메라는 없었고, 기자도 없었지만, 그 사건의 여운은 아직도 남아 있다. 그 잔향을 쫓아 우리는 우주의 기억을 더듬고 있는 셈이다.
그 순간, 한 점에서 우주가 '빵!' 하고 터질 때 빛도 함께 태어났다. 갓난아기처럼 생생하고 쨍쨍했던 그 빛은 우주의 젊음을 고스란히 품고 있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 빛도 늙었다. 시간이라는 이름의 중력을 맞고선 팽팽하던 파장이 점점 느슨해지고, 고운 곡선은 출렁이는 물결처럼 풀어졌다.
그리하여 우리 곁에 남은 그 빛은 바로 마이크로파다. 이름부터 참 소박하지 않은가? '마이크로파'라니. 하지만 전자레인지 신호가 아니다. 우주의 태초, 그 뜨거운 순간의 숨결이 139억 년을 돌고 돌아 아직도 울려 퍼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어릴 적 TV 안테나로 보던 '지지직'하는 화면, 빅뱅의 잔향이다. 우리가 귀찮아서 채널 돌리던 그 순간에도, 우주는 말하고 있었던 거다. "나 여기 있었어. 그 시작의 목소리를 아직도 들을 수 있어."
TV 속 잡음은 노이즈가 아니라, 우주가 남긴 오래된 육성 메시지다. 과거의 빛은 아직도 우리를 찾아오고 있고, 우리는 그걸 매일 무심히 지나쳤던 셈이다. 얼마나 많은 신호를 놓치고 살아가는가, 이 광막한 우주 속에서.
이 이론엔 흥미로운 문제가 있었다. 그것이 바로 '지평선 문제'다. 말 그대로, 우리가 바라보는 우주의 지평선 양 끝에서 날아온 빛이 어찌나 닮았는지, 마치 오래된 연인처럼 서로의 마음을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우주의 양 극단에서 날아온 빛이 너무도 비슷하다. 파장도, 온도도, 밀도도, 마치 한 교실에서 같은 선생님에게 같은 시간에 수업을 들은 학생들처럼 말이다. 문제는 이거다. 그 둘이 서로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정보를 주고받을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정확히 말하면 280억 년!
우주의 나이가 139억 년인데, 뭐 어머니 뱃속에 있기도 전부터 통신했다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휴대폰도 없고, 인터넷도 없던 시절에 어떻게 양 끝에서 정보를 맞춰 일치된 결과를 보여줄 수 있단 말인가? 말이 안 된다.
예컨대, 티베트 고원과 아프리카 밀림에서 각각 살아온 두 부족이, 만난 적도 없고, 편지 한 장 주고받은 적도 없는데, 언어와 옷차림과 식습관이 똑같은 경우라고 생각해보자. 놀라지 않겠는가? 그게 우리 눈앞에 펼쳐진 우주의 퍼즐이다. 바로 그 '닮은 꼴 문제'가 지평선 문제다.
등장한 아이디어가 바로 '급팽창 이론'이다. 옛날 옛적, 우주가 갓난아이였을 때— 젖먹이 수준일 때—우주 전체는 하나의 공간 안에서 오밀조밀하게 붙어 살았다. 파동도 정보도 빛도, 다 함께 뒤엉켜서 매일매일 대화를 나누던 이웃사촌이었던 것이다. 어느 날, 무슨 계기가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갑자기 "확!" 하고 모든 게 멀어져버렸다.
그 속도는 마치 밥 먹기 싫은 어린아이가 식탁에서 벌떡 일어나 전속력으로 도망치는 수준이었고, 그 결과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떨어진 채, 나눴던 추억만 간직하고 있는 셈이다.
비유하자면, 아리안족이 공동체로 함께 살다가 한 무리는 인도로, 한 무리는 유럽으로 떠났는데, 시간이 지나서도 언어의 구조나 뿌리에서 비슷한 흔적이 남아 있는 것과 같다. 인사법, 숫자 세는 법, 하늘을 뜻하는 말—이런 것들이 공통적으로 닮아 있다는 건, 그들이 함께 이야기꽃을 피웠다는 증거다.
마찬가지로 지금의 우주는 먼 거리에도 불구하고 오랜 옛날, 손잡고 수다 떨던 시절의 정보를 여전히 품고 있는 것이다. 가까웠던 존재는, 아무리 멀어져도 흔적을 남긴다. 우주도 예외는 아니다.
그렇다. 우리는 사실 모두 거대한 우주적 정보 공유 공동체에 살고 있는 것이다. 오래 전, 한 점에서 시작한 빅뱅의 순간부터 우주의 모든 부분은 함께 소통하고 교류했으니까. 손을 잡고 원을 그리며 돌던 시절이 있었던 거다. 그 손을 갑자기 놓고, 각자 먼 길을 떠난 셈이지.
우주 저편 끝과 이쪽 끝이 알지 못하는 듯 보이지만, 어릴 적 함께 손잡고 놀던 사이였다는 것이다. 우리가 하늘을 바라보면 별빛 하나하나가 속삭이며 이 비밀스러운 역사를 전해준다. 그 속삭임엔 “우린 하나였어”라는 은밀한 고백이 담겨 있다.
밤하늘에서 별들이 반짝이는 건 단지 시적인 낭만이 아니라, 물리학적 진실이기도 하다. 그 반짝임은 우주의 태초에 벌어진 이야기, '우주의 출산 장면'을 이 순간에도 생중계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전 우주를 대상으로 한 실시간 뉴스처럼 말이다.
별들의 그 미묘한 수군거림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텔레비전의 지지직 소리마저도, 알고 보면 그들의 낮은 목소리였던 셈이다. 귀 기울여 보라. 당신이 커피를 마시고 있든, 졸고 있든, 우주는 끊임없이 속삭이고 있을지 모른다. “나를 기억해줘, 나는 너의 기원이고 너는 나의 일부야.” 바로 그것이 우리가 공유하는 우주의 신비로운 이야기다.
우주는 들숨이고 삶은 날숨이다 - 불교와 과학(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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