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철학의 질문들] 4번째 흐르는 맛, 머무는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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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andi 작성일25-05-14 17:38 조회45회 댓글0건본문
상서롭거나 아니 상서로운 것을 만났을 때 한쪽으로 마음이 기울지 않으며 기뻐 반기거나 싫어 꺼려하지 않는 자, 그의 지혜는 단단히 서 있느니. 거북이가 사지를 움츠려 넣듯 감각대상으로부터 감각기관을 온전히 거두어들인 자의 지혜는 단단하다. 몸에 깃든 자가 음식을 취하지 않 을 때 감각대상은 사라지느니. 맛은 남아 있으되 그가 지고의 것을 본 뒤에는 맛 또한 사라진다. 꾼띠의 아들이여, 요동치는 감각은 통찰력 있 는 사람이 아무리 애를 써도 마음을 억지로 앗아가느니
바가와드 기따, 위야사 저, 박경숙 역, p84, 새물결, 2022년
1. 신에 대한 헌신
"맛은 남아 있으되 그가 지고의 것을 본 뒤에는 맛 또한 사라진다"라는 바가와드 기타의 구절은 오늘날 우리의 감각 경험과 관련해 어떤 의미를 가질까? 현대인은 흔히 식사를 하면서도 그 맛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한다. 음식을 입에 넣은 순간부터 이미 다음에 무엇을 먹을지 생각하는 집착 상태에 빠진다. 넷플릭스에서 드라마를 보면서도 더 흥미로운 콘텐츠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스크롤을 내리고, 유튜브 영상을 보는 도중에도 추천 영상 목록을 탐색한다. 이 상태에서 우리는 현재의 경험을 진정으로 맛보지 못한다. 감각은 있으나 감각에 대한 집착이 감각 자체를 흐린다.
바가와드 기타는 "상서롭거나 아니 상서로운 것을 만났을 때 한쪽으로 마음이 기울지 않으며 기뻐 반기거나 싫어 꺼려하지 않는 자, 그의 지혜는 단단히 서 있느니"라고 말한다. 이 구절은 감각에 대한 초연함과 평정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는 감각기관을 대상으로부터 "거북이가 사지를 움츠려 넣듯" 거두어들이는 수행법을 제시한다.
반면 박티 요가는 신에 대한 헌신적 사랑을 중심으로 한다. 이는 감정의 억제가 아닌 감정의 고양과 방향 전환을 요구한다. 사랑, 열정, 헌신이라는 감정적 상태를 통해 신과의 합일을 추구한다.
이 두 가지 접근법은 표면적으로 충돌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나는 감각과 감정으로부터의 초탈을, 다른 하나는 감정의 집중과 고양을 요구한다. 그러나 더 깊이 살펴보면, 이 두 가르침이 서로 보완하며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통합된 영적 길을 가리킨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표면적 긴장관계 너머의 깊은 조화와 통합 가능성을 탐구하면서, 특히 현대 소비사회 맥락에서 어떻게 이 가르침들이 우리의 일상에 적용될 수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2. 현대 소비사회의 덫
식탐과 미디어 소비의 예를 더 깊이 살펴보자. 우리는 왜 식사 중에도 다음 음식에 집착하고, 넷플릭스 시리즈를 보면서도 다음 에피소드나 다른 콘텐츠를 찾는가? 현대인의 감각 경험은 종종 이러한 패턴을 보인다: 디저트를 먹는 동안 커피를 생각하고, 커피를 마시는 동안 저녁 식사를 계획하는 무한 사이클. 유튜브 영상을 보는 도중에 이미 사이드바의 다음 영상을 훑어보고, 넷플릭스 시리즈 한 편을 보는 동안에도 "다음에 볼 만한 것"을 찾아 브라우징한다. 이 상태에서 우리는 현재의 순간에 온전히 존재하지 못한다.
바가와드 기타는 이런 상태의 핵심 문제를 정확히 짚는다. "몸에 깃든 자가 음식을 취하지 않을 때 감각대상은 사라지느니. 맛은 남아 있으되 그가 지고의 것을 본 뒤에는 맛 또한 사라진다." 이 구절은 감각적 즐거움과 영적 경험 사이의 관계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초월이 감각의 억압이나 부정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감각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에 대한 집착이 문제다. 식탐이나 콘텐츠 소비의 예는 감각과 집착 사이의 관계를 분명히 보여준다. 신에 대한 깊은 사랑과 헌신을 경험한 후, 세속적 욕망의 힘은 자연스럽게 약해진다. 이는 억압의 결과가 아니라 더 깊고 충만한 경험을 통해 상대적으로 덜 만족스러운 경험이 그 매력을 잃게 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식탐과 디지털 콘텐츠 소비의 예에서 보듯이, 감각 자체가 아닌 감각에 대한 집착이 문제라면, 감각 통제의 길과 박티의 길은 어떻게 조화될 수 있을까? 이 질문을 탐구하기 위해 두 접근법의 차이점과, 더 중요하게는, 그들의 공통점을 살펴보자.
바가와드 기타의 감각 통제를 통한 초월과 박티 요가의 사랑과 헌신을 통한 초월은 표면적으로 다른 방향을 가리킨다. 첫 번째는 감각과 감정으로부터의 이탈을, 두 번째는 감정의 고양과 집중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 두 접근법은 근본적으로 동일한 목표를 향한다: 자아중심성(ego-centricity)의 초월. 감각 통제는 감각적 자극에 대한 자아의 반응 패턴을 중단시킨다. 박티는 자아를 신에게 바침으로써 자아중심성을 초월한다.
일상에서 이를 적용해 보자. 넷플릭스를 보는 동안 "더 재미있는 것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때, 그 생각을 알아차리고 현재 보고 있는 콘텐츠에 주의를 다시 모으는 것이 감각 통제의 한 형태다. 음식을 먹을 때 다음 음식에 대한 갈망이 일어날 때, 그 갈망을 인식하고 현재 음식의 맛에 주의를 돌리는 것도 마찬가지다. 반면 박티의 접근은 이러한 일상 활동 자체를 신에 대한 헌신으로 변형시킨다. 음식을 신에게 바치는 마음으로 먹고, 미디어 소비조차 신성한 활동으로 경험하는 것이다.
크리슈나의 가르침은 이 두 가지 접근을 통합한다. "요가에 있어 모든 행위를 버리고 나에게 의지하라"는 가르침은 행위와 감각으로부터의 초탈이 신에 대한 헌신과 분리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많은 박티 수행자들은 신에 대한 사랑이 깊어질수록 세속적 감각과 욕망에 대한 집착이 자연스럽게 감소함을 경험한다. 반대로, 감각 통제의 수행은 내면의 평정을 가져오고, 이 평정 상태에서 더 순수한 형태의 박티가 가능해진다.
따라서 두 접근법은 상호보완적이다. 하나는 다른 하나를 가능하게 하고 강화한다. 그 통합점은 자아중심성의 초월이라는 공통 목표에 있으며, 이는 특히 현대 소비사회 속에서 더욱 필요한 영적 지혜이다.
3. 현대 소비사회 속 영적 실천의 의미
현대 소비사회와 식탐의 연결고리는 명백하다. 우리는 한 음식을 다 먹기도 전에 다음 음식을 광고로 접하고, 다음 식사를 계획하도록 끊임없이 유도된다. 식당에서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도 전에 소셜 미디어는 다른 식당의 더 맛있어 보이는 음식 사진으로 우리의 주의를 분산시킨다. 이러한 환경은 현재의 감각 경험에 온전히 집중하는 것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든다.
이처럼 현대 소비사회는 끊임없는 감각적 자극과 새로운 욕망의 창출을 통해 작동한다. 광고, 소셜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지속적인 감각적 만족을 약속하며 우리의 주의를 요구한다. 이 끊임없는 욕망의 사이클은 우리를 항상 '부족함'의 상태로 유지하며, 현재의 경험보다 다음 경험에 집착하게 만든다.
이러한 환경에서 바가와드 기타의 감각 초월 가르침은 더욱 중요해진다. 그것은 끊임없는 자극과 욕망의 사이클에서 벗어나 내면의 평정을 찾는 방법을 제시한다. 감각과 감정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에 대한 올바른 관계를 형성하는 가르침이다.
동시에 박티의 접근법은 이 초월이 단순한 부정이나 금욕이 아닌, 더 깊은 만족과 의미를 향한 재방향임을 가르친다. 소비주의가 제공하는 일시적 만족 대신, 박티는 지속적인 내적 충만감을 제공한다.
현대인에게 필요한 것은 금욕적 거부가 아니라 의식적 선택이다. 모든 감각적 경험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집착과 의존성을 인식하고 초월하는 것이다. 이는 소비사회 속에서도 가능한 영적 실천이다.
현대의 박티 수행자들은 종종 일상 속에서 이 균형을 실천한다. 세속적 삶에 참여하면서도 내면적으로는 신에 대한 헌신을 유지한다. 이는 완전한 은둔이나 세속적 삶의 몰입, 두 극단 사이의 중도적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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