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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것의 QnA] 3주 후기 - 손을 쓴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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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andi 작성일26-06-16 13:57 조회94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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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대를 잡으면 나도 모르게 차에게 말을 건다는 사람이 있었다. 시동을 걸고 "오늘도 좀 부탁해" 한마디를 하고 출발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같은 사람이 로봇청소기에게는 그러지 않는다고 했다. 청소 좀 잘해줘, 그 말이 입에서 나오지 않더라는 것이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조금 이상했다. 둘 다 기계인데, 왜 어떤 기계에는 마음이 새고 어떤 기계에는 새지 않을까. 마음이라는 게 새는 거라면, 그건 어디에 어떻게 고여 있다가 새는 걸까.

그날 우리는 호모데우스를 읽고 있었다. 인간이 동물을 지배할 수 있었던 건 인간만이 영혼을 가졌다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그렇다면 인간보다 뛰어난 지능이 와서 인간을 한낱 알고리즘으로 본다면 우리는 무엇을 근거로 존엄을 말할 수 있느냐고. 질문은 컸고 다들 조금씩 겁을 먹었다. 그런데 정작 그날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건 그 큰 질문이 아니었다. 같은 자리에서 함께 읽고 있던 마하바라따, 숲으로 쫓겨난 형제들의 손이었다.

비마는 자꾸 자기 손을 본다. 회당에서 누이가 머리채를 잡혀 끌려 나오던 자리, 옷이 벗겨지던 그 자리에서 손을 쓰지 못하고 멈춰 섰던 손이다. 그는 그날 멈춘 손을 매일 들여다본다. 그러면서 형에게 항의한다.

바늘이 옷감을 야금야금 갉아먹듯 시시각각으로 생명이 줄어드는 인간을, 시간이 어찌 하염없이 기다릴 수 있단 말입니까? (마하바라따 「숲의 책(바나 파르바)」, 비마와 유디스티라의 대화)

비마가 바늘이라 부르는 건 철학이 아니다. 그가 매일 보는 얼굴이다. 굶은 동생들의 얼굴, 시들어가는 누이의 얼굴. 그의 무서움은 거기서 온다. 멈춰버린 손 하나가, 갚아야 할 사람들이 그새 닳아 없어질까봐 떨고 있는 것이다.

형은 그 말을 듣고 아프다고 한다. 동생을 나무라지 않는다.

네 말이 다 맞다. 이 말의 화살이 나를 쏘아 아프게 하는구나. 하지만 나는 너를 나무랄 생각이 없다. 내 그릇된 정책이 이 고난을 청한 것이니. 씨 뿌린 농부가 추수를 기다리듯, 시간이 지나가기를 느긋하게 기다리자꾸나.  (마하바라따 「숲의 책(바나 파르바)」, 비마와 유디스티라의 대화)

유디스티라도 같은 회당을 본다. 다만 그가 보는 건 끌려 나오는 누이가 아니라 주사위를 던지던 자기 손이다. 속임수인 줄 알면서도 멈추지 못했던 손, 모두를 숲으로 끌고 온 손. 그가 기다리자고 할 때, 그것을 느긋함으로 읽으면 글을 잘못 본 것이다. 씨를 뿌리고 손을 떼는 농부의 손은 한가해서 떼는 손이 아니다. 더는 댈 수 없어 떼는 손이다. 한 번 더 손을 대면 일이 더 커진다는 걸 아는 사람의 손이다. 유디스티라가 기다리자고 할 때 그는 편한 게 아니라, 자기 손을 스스로 묶고 있는 것이다.

여기까지 읽고 나서야 나는 하라리에게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는 이 장에서 인간만이 가졌다는 그 특별한 불꽃이 무엇인지 묻는다. 그러고는 가장 오래된 대답부터 무너뜨린다.

다윈은 우리에게서 영혼을 앗아갔다. 진화론을 정말로 이해한다면, 영혼 같은 건 없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유발 하라리, 『호모데우스』 3장 「인간의 불꽃」 중 '찰스 다윈을 누가 두려워하랴')

상대성이론은 누구도 화나게 하지 않는데 진화론은 사람들을 분노하게 하는 이유가 거기 있다고 그는 말한다. 시간과 공간이 휜다는 말에는 아무도 상처받지 않지만, 네 안에 영원한 알맹이 같은 건 없다는 말에는 모두가 불쾌해진다는 것이다. 영혼이 없다는 게 틀려서가 아니라, 너무 옳아서 견디기 어려운 것이다. 그렇다면 영혼도 아닌 그 불꽃은 대체 무엇인가. 하라리는 답한다.

사피엔스가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오직 그들만이 상호주관적인 의미의 그물을 짤 수 있기 때문이다. 법과 힘, 실체와 장소로 이루어진, 오직 공통의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그물을.  (유발 하라리, 『호모데우스』 3장 「인간의 불꽃」 중 '드림타임')

낯선 상대와도 함께 무언가를 상상하고, 그 상상 위에 세계를 짓는 능력. 그것이 그가 말하는 불꽃이다. 그런데 그 불꽃의 실체가 무엇인가를 나는 책이 아니라 세 형제의 손에서 보았다. 그것은 효율이 아니었다. 멈춘 손이 분해서 견디지 못하고, 움직였던 손이 두려워 묻고, 그러면서도 서로를 끝내 놓지 못하는 것. 그물을 짠다는 건 결국 손과 손이 서로를 붙드는 일이고, 불꽃이란 그 붙든 손의 떨림이었다.

그래서 AI가 편한 것이다. 거기엔 떨릴 손이 없으니까. 너는 내가 묻는 대로 답하라, 그 관계에는 마음을 쓸 필요가 없다. 상대가 상처받지 않을까, 저 사람이 나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지 않을까, 그런 떨림이 없다. 고양이에게라도 우리는 마음을 써야 하는데, 그에게는 쓰지 않아도 된다. 편하다는 건 그런 뜻이다. 마음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세 번째 손은 아르주나의 것이다. 그가 산을 오를 때 등 뒤에는 형들이 매달려 있었다. 숲에 남은 어머니와 누이와 동생들, 그들이 끼니를 사흘에 한 번, 엿새에 한 번, 보름에 한 번으로 줄여가는 장면을 마하바라따는 천천히 보여준다. 이건 의지를 자랑하는 게 아니다. 등 뒤의 무게가 그만큼이라서다. 그는 자기 몸을 줄여 그 무게를 받칠 손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사냥꾼으로 변장한 신과 맞붙을 때 활은 통째로 삼켜지고 칼은 머리에 닿자마자 부러진다. 나무를 뽑아 던지고 바위를 던지고, 마지막에 남은 건 맨주먹이다. 그는 멈출 수 없었다. 멈추면 등 뒤의 사람들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는 질 수 없어서 졌다. 활이 삼켜지는 걸 두 눈으로 보면서도 거두지 못한 그 손을 보고서야 신은 흡족해한다.

마음을 쓴다는 건 결국 자기 몸을 조금 줄여 누군가를 받치는 일이다. 가벼운 일이 아니다. 그날 발제를 한 사람이 글 끝에 이런 말을 남겼다. 마음을 쓴다는 게 자기에게는 굉장히 힘든 작업이라고, 살아오면서 그래 본 적이 없다고. 어떤 목적이 있어 함께 협력하는 일은 해봤어도, 이유 없이 상대에게 마음을 쓴다는 건 자기에게는 너무 힘든 능력이라고 했다. 나는 그 고백이 오래 남았다. 마음 쓰는 일이 누구에게나 저절로 솟는 재능이 아니라, 평생을 들여 겨우 배우는 노동이라는 것. 그러니 우리가 AI를 편하게 느끼는 건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거기엔 배워야 할 떨림이 없다.

다시 차에게 말을 걸던 그 사람을 생각한다. 어쩌면 그는 마음이 새는 게 아니라, 새는 연습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떨리는 손을 잃지 않으려고, 굳이 말이 필요 없는 쇳덩이에게 한마디를 건네는 것이다. 오늘도 좀 부탁해. 그 한마디를 하는 동안 손은 운전대 위에서 아주 잠깐, 누군가를 받치던 손의 모양을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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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희웅미미님의 댓글

승희웅미미 작성일

잘 읽었습니다. 유발 하라리 책이 읽어지고 싶은 후기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