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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루몽] 4화 -2 벼슬을 지켜주는 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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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andi 작성일26-09-04 14:25 조회1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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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관부(護官符)

『홍루몽』 4회에 응천부의 관아 안쪽 방이 나온다.¹ 새로 부임한 지부 가우촌이 첫 사건 서류를 받아 든 참이다. 금릉에서 사람이 맞아 죽었다. 여자아이 하나를 사들인 풍연이라는 사람을, 같은 아이를 사려던 설씨 집안의 아들이 종들을 시켜 때렸고 그는 사흘 뒤에 죽었다. 대낮에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벌어진 일이었고 가해자가 누구인지도 분명했다. 그런데 이 사건은 일 년이 지나도록 아무도 손을 대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우촌이 노하여 즉시 체포령을 내리려 하자 곁에 서 있던 문지기가 눈짓을 보냈고, 우촌은 손을 멈추고 안으로 들어와 자리를 파했다.

방으로 들어온 우촌이 왜 그랬느냐고 묻자, 문지기는 이 성에 부임해 오면서 호관부 한 장을 베껴 오지 않았느냐고 되물었다. 우촌은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했다. 문지기는 허리주머니에서 여러 번 접었다 편 종이 한 장을 꺼내 건넸다. 거기 적힌 것은 법조문이 아니라 사람들 입에서 입으로 옮겨 다니는 네 구절의 노랫말이었고, 각 구절 아래에는 작은 글씨의 주가 붙어 있었다. 시조가 어떤 벼슬을 지냈는지, 그 집안이 몇 갈래로 나뉘었는지, 그중 몇 갈래가 도성에 살고 몇 갈래가 이 고장에 사는지가 숫자로 적혀 있었다. 지방관 노릇을 하는 사람은 누구나 이런 종이를 품고 다니며, 모르고 있다가 이런 집을 잘못 건드리면 벼슬은 고사하고 목숨도 보전하지 못한다고 문지기는 설명했다. 그래서 이름이 호관부, 벼슬을 지켜주는 부적이라고 했다.² 그리고 그는 이 사건에 판결하기 어려운 데는 하나도 없다고 덧붙였다. 어려운 것은 사건이 아니라 정분과 체면이라고 했다.

세미나에서 이 대목을 읽던 중에 한 분이 말했다. 권력가는 인간이 아닌 것 같아요. 다들 웃었지만 그 말이 오래 남았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설반이라는 사람이 한 일을 따져보면, 그는 사람을 때리게 한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관아에 사람을 보내지도 않았고 우촌에게 편지를 쓰지도 않았다. 그를 처벌할 수 없게 만든 것은 그의 성격이나 됨됨이가 아니라 그가 놓여 있던 자리였다. 이 사회에서 사람은 개인이 아니라 집안의 갈래로 존재했고, 그래서 설반 한 사람을 체포하는 일은 여덟 갈래의 집안을 상대하는 일이 되었다. 게다가 우촌 자신이 파직되었다가 바로 그 명단에 오른 집안의 주선으로 이 자리에 복직한 사람이었다.³ 재판을 하려는 사람이 이미 명단 안쪽에 들어와 있었다.

그러니 이 시대에 법이 없었다고 말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법도 있었고 관아도 있었고 고소장을 받는 절차도 있었다. 다만 법 위에 사적인 명단이 한 장 더 있었을 뿐이다. 이 조건 안에서 살아온 사람들에게 법을 자기 형편에 맞게 해석하고 적용하는 일은 규칙을 어기는 행동이 아니라 일이 되어가는 당연한 이치였다. 설반은 자신이 특별한 잘못을 저질렀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고, 우촌 역시 자신이 부패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오래 벼슬을 하려면 알아야 할 것을 뒤늦게 배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권력가는 인간이 아닌 것 같다는 말은 그래서 절반만 맞는다. 그들이 인간이 아니게 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서 있던 자리가 그들에게 다른 인간을 보지 않아도 되는 조건을 만들어주었다.

 

문을 열어주는 사람

텔레비전 뉴스에서 고위 공직자가 차에서 내리는 장면을 자주 보게 된다. 차가 멈추면 옆에 서 있던 사람이 다가와 문을 열고, 내리는 사람은 문 쪽을 보지 않은 채 그대로 걸어 나간다. 문을 열어준 사람은 문을 닫고 뒤따라간다. 그 직위에 있는 사람에게 이 정도의 예우는 당연하게 여겨지고, 보는 사람도 특별히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한 가지만 확인해두면 좋겠다. 내리는 사람도 공무원이고 문을 열어준 사람도 공무원이다. 두 사람은 같은 조직에 속해 있고 같은 법의 적용을 받으며 같은 세금으로 급여를 받는다. 두 사람 사이에 있는 것은 직위의 차이뿐이다. 그 차이가 매일 자동차 문 앞에서 한 번씩 확인된다.

문 하나는 작은 일이다. 그러나 이런 일이 하루에 몇 번씩 몇 년 동안 되풀이되면 그것은 예우가 아니라 조건이 된다. 조건이 되면 몸에 익고, 몸에 익으면 의식하지 않게 되며, 의식하지 않게 된 것은 판단의 대상에서 빠진다. 자신이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 생각해본 적 없는 사람은 자기 아래에 있는 사람이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도 생각해보지 않는다. 그리고 이 조건은 그 사람을 존중받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지 않는다. 문을 열어주는 사람이 없으면 문 앞에서 잠시 멈춰 서는 사람, 자기 손으로 처리할 수 있는 일의 목록이 해마다 줄어드는 사람, 아무도 대신해주지 않으면 곧 곤란해지는 사람이 된다. 권위를 얻은 것이 아니라 능력을 잃은 것이고, 잃어버린 능력은 직위가 남아 있는 동안에는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것은 힘이 큰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팀장이든 반장이든 모임의 총무든, 직위가 조금이라도 생긴 사람에게 곧 찾아오는 변화가 있다. 사태를 자기 자리에서 보게 된다는 것이다. 자기 자리에서 보는 일은 그 자체로 잘못이 아니지만, 다른 자리에서 보는 일을 하지 않게 되면 그때부터 문제가 된다. 아래에 있는 사람이 왜 그렇게 말하는지 묻지 않게 되면, 누구를 건드려도 되고 누구를 건드리면 곤란한지에 대한 자기만의 판단이 저절로 생긴다.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지만 필요한 순간에는 정확하다.⁴

이렇게 말하면 앞뒤가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조건이 문제라고 해놓고 개인이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가지가 서로를 대신하지는 못한다. 조건을 바꾸는 일은 결국 사람이 하고, 자신이 어떤 자리에 있는지 살펴본 적 없는 사람이 조건을 바꾸면 바뀐 조건 안에 새로운 명단이 하나 생길 뿐이다. 우촌은 부패한 전임자에게서 명단을 물려받은 것이 아니다. 그는 개혁을 하겠다고 부임했고 첫 사건에서 노했고 체포령을 내리려 했다. 그러고 나서 반나절 만에 명단을 손에 넣었다.

로마의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남긴 글은 이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보여준다.⁵ 그 책의 2권 끝에는 그란투아 강가에서 썼다고 적혀 있고 3권 끝에는 카르눈툼에서 썼다고 적혀 있다. 도나우 강 전선의 야전 진지들이다. 황제는 전쟁터의 천막에서 자기가 읽을 문장을 적고 있었다. 1권은 전체가 목록이다. 누구에게서 무엇을 배웠는지를 사람 이름별로 적어놓았는데, 스승 루스티쿠스에게서 배운 것으로는 편지를 꾸미지 않고 쓰는 법이 들어 있고, 그가 자기 소장본 에픽테토스 강의록을 빌려주었다는 사실까지 적혀 있다. 양아버지 안토니누스에게서 배운 것으로는 사람의 말을 중간에 자르지 않고 끝까지 듣는 태도가 들어 있다. 2권은 아침에 자기에게 하는 말로 시작한다. 오늘 나는 참견하는 사람, 은혜를 모르는 사람, 거만한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다. 이 목록에는 황제만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다. 스승의 책을 빌려 읽고, 남의 말을 끝까지 듣고, 아침에 하루를 미리 헤아려두는 일이다.⁶ 그는 황제라는 자리에 맞는 규범을 따로 세워두고 지킨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시민이 자기 삶을 다스리기 위해 하던 일을 그대로 했고 그 사람으로서 황제의 일을 처리했다.

우리는 대개 문을 열어주는 쪽에서 시작한다. 처음 들어간 직장에서, 처음 나간 모임에서, 앉으라는 말을 듣고도 자리에 다 앉지 못한 경험을 누구나 가지고 있다. 그러다 어느 시점부터는 다른 사람을 그렇게 만드는 쪽에 서게 된다. 이 전환은 임명장과 함께 오지 않는다. 문을 열어주는 사람이 생기고, 그것이 몇 번 되풀이되고, 어느 날부터 문 쪽을 보지 않게 되는 방식으로 온다. 조용히 오기 때문에 오는 줄 모른다. 그래서 매일 확인하는 수밖에 없다. 오늘 내가 누구에게서 무엇을 당연하게 받았는지, 그것을 당연하다고 여긴 근거가 나의 직위 말고 또 무엇이 있는지, 판단을 내리기 전에 아래에 있는 사람의 자리에서 한 번이라도 다시 보았는지. 이 확인을 하지 않으면 우리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만의 호관부를 갖게 된다. 권력가는 인간이 아닌 것 같다는 말은 비난이라기보다 관찰에 가까웠는지도 모른다. 문 하나 자기 손으로 열지 않게 된 사람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관찰이다.

 


 

¹ 『홍루몽』은 청 건륭 연간에 조설근이 쓴 소설로, 4회의 이 대목은 흔히 「호로승, 호로안을 판단하다」로 불린다. 응천부는 지금의 남경이며, 지부는 부(府)의 행정과 재판을 함께 맡던 지방관이다.

² 호관부의 네 구절은 가(賈)·사(史)·왕(王)·설(薛) 네 집안을 가리킨다. 賈는 가짜를 뜻하는 假와, 薛은 눈을 뜻하는 雪과 소리가 같아서, 구절 자체가 말놀이의 형식을 띤다. 노랫말 아래 붙은 주에는 각 집안의 방분(房分), 곧 갈래의 수와 거주지가 적혀 있다.

³ 우촌은 파직된 뒤 임여해의 집에서 딸 대옥의 글선생 노릇을 하다가, 임여해의 소개로 가정의 주선을 받아 복직했다. 가정은 호관부 첫 구절에 나오는 가씨 집안 사람이다.

⁴ 에리히 프롬은 『자기를 위한 인간』에서 권위를 두 종류로 나눈다. 능력에 근거하며 배우는 쪽이 그만큼 알게 되면 사라지는 것을 목표로 삼는 권위와, 사람 위에 서는 힘에 근거하며 유지되는 것을 목표로 삼는 권위다. 뒤의 것은 아래에 있는 사람이 스스로를 낮추는 태도를 계속 필요로 하고, 그 태도가 사람의 안쪽에 자리를 잡으면 감시하는 사람 없이도 이어진다.

⁵ 『명상록』의 그리스어 제목은 '자기 자신에게'라는 뜻이며, 발표를 염두에 두고 쓴 글이 아니라는 것이 통설이다. 마르쿠스는 161년부터 180년까지 재위했고, 재위 기간의 상당 부분을 도나우 전선에서 보냈다.

⁶ 미셸 푸코는 고대의 자기 배려(souci de soi)가 자기에게 몰두하는 사사로운 태도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다스리기 위한 조건이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 번의 결심이 아니라 매일 되풀이하는 훈련의 형태를 띤다는 것이 그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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