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헬름 영어주역 월요반 S7-6 52. 중산간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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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노다 작성일24-10-09 17:52 조회80회 댓글0건본문
52. 重山艮/Kên/Keeping Still, Mountain (멈춤, 산)
above KEN KEEPING STILL, MOUNTAIN 상괘, 간괘, 멈춤, 산
above KEN KEEPING STILL, MOUNTAIN 상괘, 간괘, 멈춤, 산
The image of this hexagram is the mountain, the youngest son of heaven and earth. The male principle is at the top, because it strives upward by nature; the female principle is below, since the direction of its movement is downward. Thus there is rest because the movement has come to its normal end.
In its application to man, the hexagram turns upon the problem of achieving a quiet heart. It is very difficult to bring quiet to the heart. While Buddhism strives for rest through an ebbing away of all movement in nirvana, the Book of Changes holds that rest is merely a state of polarity that always posits movement as its complement. Possibly the words of the text embody directions for the practice of yoga.
이 괘의 상은 산이고 하늘과 땅의 막내아들입니다. 남성적 원리가 맨 위에 있는데, 그것은 본성상 위로 올라가려고 애쓰기 때문입니다. 여성적 원리는 운동의 방향이 아래로 향하므로 밑에 있습니다. 따라서 움직임이 정상적으로 끝났으므로 휴식이 있습니다.
그 원리를 사람에게 적용하면, 간괘는 고요한 마음을 얻는 문제로 향합니다. 마음을 고요히 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불교가 모든 움직임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열반을 통해서 적정(寂靜, rest)에 이르고자 애쓰는 반면, 역경에서는 휴식이란 그것을 완성시켜주는 보완물로써 항상 움직임을 가정하는 양극성의 상태일 뿐이라고 여깁니다. 아마도 본문의 글은 요가 수행의 방향성을 구체화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THE JUDGMENT 괘사
KEEPING STILL, Keeping his back still 간괘는 그의 등에서 멈춤으로써
So that he no longer feels his body. 더 이상 자신의 몸을 느끼지 않는다.
He goes into his courtyard 그는 자신의 뜰로 들어 간다
And does not see his people. 그의 사람들을 보지 못한다.
No blame. 허물이 없다.
True quiet means keeping still when time has come to keep still, and going forward when the time has come to go forward. In this way rest and movement are in agreement with the demands of the time, and thus there is light in life.
The hexagram signifies the end and the beginning of all movement. The back is named because in the back are located all the nerve fibers that mediate movement. If the movement of these spinal nerves is brought to a standstill, the ego, with its restlessness, disappears as it were. When a man has thus become calm, he may turn to the outside world. He no longer sees in it the struggle and tumult of individual beings, and therefore he has that true peace of mind which is needed for understanding the great laws of the universe and for acting in harmony with them. Whoever acts from these deep levels makes no mistakes.
진정한 고요함이란 멈추어야 할 때 멈추고 나아가야할 때 나아감을 의미합니다. 이런 식으로 쉼과 움직임이 때의 요구에 따라 이루어지므로, 생명 안에 빛이 있습니다.
이 괘는 모든 움직임의 시작과 끝을 의미합니다. 등에는 움직임을 전달하는 모든 신경 섬유가 위치하고 있으므로 등이라고 부릅니다. 만약 이 척수 신경들의 움직임이 정지에 이르게 되면, 불안한 자아는 사라집니다. 그리하여 사람이 고요해지면, 그 사람은 외부 세계로 향할 수 있게 됩니다. 그는 더 이상 외부 세계 속에서 개별적 존재의 분투와 소란스러움을 보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우주의 위대한 법칙을 이해하고 그 법칙에 따라 조화롭게 행동하는데 필요한 참된 평화를 얻습니다. 이런 깊은 차원에서 행동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허물을 짓지 않습니다.
‘등에서 멈춘다, 뜰로 들어가도 사람들을 보지 못한다.’
괘사의 이 구절을 읽을 때마다 무슨 뜻인지 궁금했는데 빌헬름 선생님의 주석과 샘들의 토론을 듣고 나서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습니다. 특히 척수신경과 감각기관의 상호 연관성에 관한 영수샘의 부연 설명을 재미있게 들었고 빌헬름의 주석을 좀 더 생생하게 그려보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아 요약해 보았습니다.
‘방향성의 관점에서 볼 때, 인체를 절반으로 나누어 앞뒤를 보면 앞 쪽에 위치한 감각기관을 통하여 자극과 정보가 들어오고, 그것을 등 뒤에 있는 신경조직이 관장하여 움직임과 함께 불안, 초조, 두려움과 같은 감정을 느끼게 된다. 척수 신경이 안정되면 감정의 동요도 가라앉는다. 고요해진 마음으로 다시 감각기관을 통해서 외부 세계를 바라보면 이전과는 다르게, 좀 더 객관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된다.’
The Image 대상전
Mountains standing close together: 잇따라 솟아 있는 산들
The image of KEEP STILL. 간괘의 형상이다.
Thus the superior man 그러므로 군자는
Does not permit his thoughts 자신의 생각을 허용하지 않는다.
To go beyond his situation. 자신이 처한 상황을 넘어서
The heart thinks constantly. This cannot be changed, but the movements of the heart-that is, a man’s thoughts-should restrict themselves to the immediate situation. All thinking that goes beyond this only makes the heart sore.
마음은 끊임없이 생각합니다. 이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움직임-즉, 사람의 생각-은 즉각적인 상황에 국한되어야합니다. 이것을 넘어서는 모든 생각은 오직 마음을 쓰라리게 할뿐입니다.
THE LINES 효사
Six at the beginning means : 초육효는 의미한다.
Keeping his toes still. 발가락에서 멈춤이다.
No blame. 허물이 없다.
Continued perseverane furthers. 올바름을 오래 지속하는 것이 이롭다.
Keeping the toes still means halting before one has even begun to move. The beginning is the time of few mistakes. At that time one is still in harmony with primal innocence. Not yet influenced by obscuring interests and desires, one sees things intuitively as they really are. A man who halts at the beginning, so long as he has not yet abandoned truth, finds the right way. But persisting firmness is needed to keep one from drifting irresolutely.
발가락에서 멈춤이란 미처 움직임을 시작하기도 전에 멈춘다는 뜻입니다 시작은 실수가 거의 없는 때입니다. 그때에 사람은 여전히 원초적인 순수함과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아직은 모호한 관심과 욕망에 영향을 받지 않은 상태이므로 사물을 있는 그대로 직관적으로 봅니다. 시작에서 멈춘 사람은, 아직 진실을 포기하지 않는 한, 올바른 길을 찾습니다. 그러나 우유부단하게 이리 저리 떠밀려 다니지 않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확고함이 필요합니다.
초육효는 마음이 동요하는 초기에 있어 발가락에서 멈추면 허물이 없지만 음유한 자질이라 자신의 올바름을 굳게 지키기 어렵습니다. 아직은 세상에 물들지 않은 본성적 건강함이 있지만 세상의 유혹에 휘말려 이리 저리 흔들릴 소지가 다분합니다. 그러므로 올바름을 지키기 위해서는 내면의 고요함을 키우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Six in the second place means: 육이효는 의미한다
Keeping his calves still. 장단지에서 멈춤이다.
He cannot rescue him whom he follows. 그는 자신이 따르는 자를 구할 수 없다.
His heart is not glad. 그의 마음이 기쁘지 않다.
The leg cannot move independently; it depends on the movement of the body. If a leg is sudddenly stopped while the whole body is in vigorous motion, the contiinuing body movement will make one fall.
The same is true of a man who serves a master stronger than himself. He is swept along, and even though he may himself halt on the path of wrongdoing, he can no longer check the other in his powerful movement. Where the master presses forward, the servant, no matter how good his intentions, cannot save him.
다리는 독립적으로 움직일 수 없습니다. 다리는 몸의 움직임에 의존합니다. 만일 몸 전체가 격렬하게 움직이는 동안 다리가 갑자기 멈춘다면, 연속적인 몸의 움직임이 그 사람을 넘어지게 만들 것입니다.
똑같은 원리가 자기 자신보다 강한 주인을 섬기는 사람의 경우에도 적용됩니다. 비록 자기 자신은 잘못된 일을 하는 도중에 멈춘다 할지라도, 강력한 움직임 속에 있는 다른 사람을 더 이상 저지할 수 없기 때문에 그도 함께 휩쓸려 갑니다. 주인이 앞으로 밀고 나가는 곳에서는 아무리 자신의 의도가 선하다 할지라도 종은 주인을 구할 수 없습니다.
육이효는 중(中)의 위치에 자리하고 올바름을 얻어서 멈춤의 도리를 아는 자입니다. 그러나 하체의 윗자리에 있으면서 과도함으로 중도를 이루지 못한 구삼효를 구제할 수도 없고, 자신의 올바름을 지킬 수도 없습니다. 이런 육이효의 난처한 상황을 몸의 움직임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다리에 비유하여 보여주고 있습니다.
Nine in the third place means: 구삼효는 뜻한다.
Keeping his hips still. 둔부에서 멈춤이다.
Making his sarum stiff. 엉치뼈가 뻣뻣해진다.
Dangerous. The heart suffocates. 위험하다. 마음은 숨이 막힌다.
This refers to enforced quiet. The restless heart is to be subdued by forcible means. But fire when it is smothered changes into acrid smoke that suffocates as it spreads.
Therefore, in exercisses in meditation and concentration, one ought not to try to force results. Rather, calmness must develop naturally out of a state of inner composure. If one tries to induce calmness by means of artificial rigidity, meditation will lead to very unwholesome results.
구삼효는 강제적인 고요함을 의미합니다. 잠시도 쉬지않는 마음은 강제적인 수단에 의해 제압됩니다. 그러나 억지로 덮어서 끈 불은 공기 중으로 퍼져나가면서 숨이 막히는 매캐한 연기로 바뀝니다.
그러므로 명상과 집중 수행 중에는 억지로 결과를 얻으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고요하게 가라앉은 마음은 내적인 평정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발전해야합니다. 만일 인위적인 엄격함에 의해 평정심을 유도하려고 들면 명상은 매우 불건강한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기존의 주역해석과는 다르게 실제 명상이나 집중의 단계에 적용시켜서 설명한 점이 흥미롭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특히 enforced quiet, artificial rigidity등이 정확히 명상에서 어떤 상태를 의미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있었고, 명상할 때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의지적으로 노력한 결과 오히려 부작용을 일으키는 잘못된 명상 태도를 가리키는 말로 이해하였습니다.
Six in the fourth place means: 육사효는 의미한다.
Keeping his trunk still. 몸통에서 멈춤이다.
No blame. 허물이 없다.
As has been pointed out above in the comment on the Judgment, keeping the back at rest means forgetting the ego. This is the highest stage of rest. Here this stage has not yet been reached: the individual in this instance, though able to keep the ego, with its thoughts and impulses, in a state of rest, is not yet quite liberated from its dominance. Nonetheless, keeping the heart at rest is an important function, leading in the end to the complete elimination of egotistic drives. Even though at this point one does not yet remain free from all the dangers of doubt and unrest, this frame of mind is not a mistake, as it leads ultimately to that other, higher level.
위 괘사의 설명에서 지적했듯이, 등을 편안하게 유지한다는 것은 자아를 잊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휴식의 최고 단계입니다. 여기서는 아직 이 단계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이 경우에 있는 개인은, 온갖 생각과 충동들과 함께, 자아를 휴식 상태로 유지할 수 있지만, 아직은 자아의 지배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편안한 상태로 유지하는 것은, 마침내 자기중심적인 충동을 완전히 제거하도록 이끄는 중요한 기능입니다. 비록 이 시점에서는 의심과 불안정의 모든 위험으로부터 아직 자유롭지 못하더라도 이러한 마음의 태도는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런 마음의 토대가 궁극적으로는 다른 더 높은 수준으로 이끌기 때문입니다.
부정적 감정은 떨쳐버려야 할 장애 혹은 개인의 성격적인 결함으로만 여겨온 저로써는 육사효의 효사가 위로가 되었습니다. 한 걸음 떨어져서 지켜볼 힘만 있다면 마음을 어지럽히는 수많은 생각과 충동조차도 장애가 아니라 거쳐야 할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말해주기 때문입니다. 번뇌가 곧 깨달음이라는 불교의 가르침과도 맥락을 같이하는 내용으로 생각됩니다. 다만 빌헬름 선생님의 언어를 통해 배우는 주역의 가르침이 지금의 나에게는 더 편안하게 다가옵니다.
Six in the fifth place means: 육오효는 뜻한다.
Keeping his jaws still. 턱에서 멈춤이다.
The words have order. 말에 순서가 있다.
Remorse disappears. 후회가 사라진다.
A man in a dangerous situation, especially when he is not adequate to it, is inclined to be very free with talk and presumptuous jokes. But injudicious speech easily leads to situations that subsequently give much cause for regret. However, if a man is reserved in speech, his words take ever more definite form, and every occasion for regret vanishes.
위험한 상황에 처한 사람, 특히 그 사람이 상황에 적합하지 않을 때, 그 사람은 함부로 말하고 주제 넘는 농담을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려 깊지 못한 말은 결과적으로 후회를 불러오는 상황으로 쉽게 이어집니다. 그러나 사람이 말을 함에 있어 삼가면, 그의 말은 점점 더 명확해지고, 후회할 기회도 모두 사라집니다.
육오효는 양의 자리에 음이 와서 정(正)을 얻지 못하였지만 멈춤을 주관하는 군주의 위치입니다. 음유한 자질로 큰 뜻을 감당하기에는 부족하나 말을 삼가고 절도에 맞게 하면 큰 허물을 짓지 않고 상구효의 위치에 도달 할 수 있을 것입니다.
○Nine at the top means: 상구효는 의미한다.
Noblehearted keeping still. 고결한 멈춤이다.
Good fortune. 길하다.
This marks the consummation of the effort to attain tranquillity. One is at rest, not merely in small, circumscribed way in regard to matters of detail, but one has also a general resignation in regard to life as a whole, and this confers peace and good fortune in relation to every individual matter.
이것은 평온함을 얻고자 하는 노력의 완성을 보여줍니다. 그는 마침내 편안해집니다. 단순히 세부적인 문제와 관련된 작고 제한된 방식에서 뿐만 아니라 삶 전반에 걸친 문제에서도 완전히 물러납니다. 이러한 태도는 모든 개별적인 문제와 관련하여 평화와 길함을 줍니다.
주효인 상구효는 마음의 평정을 얻기 위한 지난한 과정을 거처 마침내 진정한 휴식을 얻은 사람입니다. 여기서 general resignation이란 단순히 삶에 대한 체념이 아니라, 삶이 요구하는 과정을 모두 거친 사람의 자발적 선택으로 보아야 한다는데 샘들의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그야말로 내각의 총사퇴와 비슷한, 삶 전반에 걸친 물러남이란 복희샘의 표현에 모두 웃음으로 동의했습니다. 돈간(敦艮)의 의미가 빌헬름 선생님의 참신한 비유로 더욱 선명하게 이해되는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주역공부를 하면서 인체의 유기체적 연결, 인간과 자연사이의 유기체적 연결에 대한 감각의 무지 혹은 상실의 상태에서 조금씩 깨어나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그런 감각의 회복이 지금의 일상을 살아가는 나에게 참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매주 월요일 아침 빌헬름 선생님의 영어 주역을 배우는 시간이 기다려지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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