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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헬름 영어주역 월요반 S7-4. 50.화풍정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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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등대로 작성일24-09-12 08:32 조회22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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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헬름 영어주역 월요반 S7-4. 50. 화풍정 후기

 

안녕하세요. 4주차 화풍정 후기를 맡은 윤명숙입니다.

이번에 저로서는 50번 괘는 처음 대하는데 읽을수록 어디선가 본 것 같은 괘라는 기시감이 들어 의아했습니다. 알고 보니 서문에서 융이 예로 든 괘가 화풍정 괘더군요(영수 샘의 Vessel에 대한 언급이 힌트가 되어 융 서문을 다시 읽어 보았습니다). 그래서 이번 후기에서는 화풍정 괘에 대한 융의 해설을 빌헬름의 본문 밑에 배치하는 방식으로 후기를 써볼까 합니다. 같은 효사를 두고 두 분이 어떻게 다르게 해설했는지 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 하네요. 잊어버리신 분에게는 환기가 되겠고 융 서문을 처음 접하시는 분에게는 소개가 될 터이니 이 또한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난해했던 융 서문을 이번 기회에 재독 또는 일독하는 기회를 마련하시길! (글자색을 달리하는 방식으로 구분하겠습니다. 융의 해설은 녹색입니다)

 

50. 화풍정//가마솥

 

상괘 리, 매달림,

하괘 손, 유순함(공손함), 바람, 나무

 

6개의 효들이 정, 즉 가마솥의 이미지를 구성한다. 바닥에 다리들이 있고 그 위에 배꼽이 있고 그 다음에 귀(손잡이), 꼭대기에는 운반 고리들이 나온다. 동시에 이 이미지는 영양분의 개념을 제시한다. 청동 주조물인 정()은 조상들의 신전(사당)과 연회에서 조리된 음식을 담는 그릇이었다. 가족의 가장들이 음식을 솥에서 손님들의 그릇으로 대접했다.

48번 괘인 수풍정은 이와 비슷하게  영양분을 준다는 부차적인 의미를 갖고 있지만 사람들과 관련해서 훨씬 더 그러하다. 세련된 문명과 관련한 용기로서의 정()은 유능한 사람(인재)들을 육성하고 양육하는 것을 제시한다. 이것은 국가의 이익에 이바지했다.

이 괘와 수풍정 괘는 역경(주역)에서 사람이 만든 구체적인 물체를 나타내는 오직 두 개의 괘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생각 또한 그 추상적인 함축을 갖는다.

아래 있는 손은 나무이고 바람이다. 위에 있는 리는 불꽃이다. 그래서 그 둘은 함께 나무와 바람에 의해서 불이 붙은 불꽃을 상징한다. 이는 음식을 준비한다는 개념을 제시한다.  

 

괘사

가마솥, 최고의 행운

성공(형통)

 

수풍정이 우리 삶의 사회적 토대와 관련 있고 그래서 이 토대는 자라는 나무에 영양을 공급하는 데 쓰이는 물과 비교되는 반면 지금의 화풍정 괘는 사회의 문화적 상부구조를 말한다. 여기 50번 괘에서 불꽃, 즉 정신(영혼)을 위한 양분으로 쓰이는 것은 나무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자기 자신을 넘어 자라서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으로 넓어져야한다. 이로써 그것(눈에 보이는 것)은 진정으로 신성해지고 명료해져 우주적 질서에 확고한 뿌리를 박게 된다.

여기에서 우리는 문명이 종교에서 그 정점에 다다른 모습을 본다. ()은 신에게 제사 드리는 데 쓰인다. 가장 높은 지상의 가치들이 신성에게 바쳐져야한다. 그러나 진정으로 신성한 것은 인간과 분리돼서 자신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신의 최고의 시현은 예언자들과 신성한 인간들 속에 나타난다. 그들을 통해 드러난 신의 의지는 겸손하게 받아들여져야 한다. 이것은 내적內的 계몽을 가져오고 세계에 대한 진정한 이해를 가져온다. 그리고 이것은 큰 행운과 성공을 가져온다.  

 

  

대상전

나무 위의 불

가마솥의 이미지다

그래서 군자는 자신의 위치(지위)를 올바르게 함으로써

자신의 운명을 공고히 한다.

 

 

불의 운명은 나무에 달려 있다. 아래에 나무가 있는 한은 불은 위에서 타오른다.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다. 이와 비슷하게 인간에게는 자신의 삶에 힘을 빌려주는 운명이 있다. 그리고 만약 그가 삶과 운명에 올바른 자리를 할당하는 데 성공하면 그래서 그 둘을 조화에 이르게 하면 그는 자신의 운명을 확고한 기초 위에 놓는 것이다. 이 말들은 중국 요가의 비밀스런 가르침 속에 있는, 구전에 의해 건네진 대로 삶(생명)을 육성하는 것에 대한 암시를 포함하고 있다.

 

효들

초육효는 의미한다.

다리가 있는 솥이 뒤집혔다.

지체시키는 것을 제거하는 것이 이롭다

그녀의 아들을 위해 첩을 받아들인다.

허물이 없다.

 

솥이 사용되기도 전에 거꾸로 뒤집혀도 아무런 해가 없다. 반대로 이것은 솥에서 쓰레기를 제거한다. 첩의 지위는 낮지만 아들이 있기 때문에 명예롭게 된다.

이 두 비유는 이 괘에서 지시된 것과 같은 고도로 발달된 문명에서 선한 의지를 가진 모든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을 표현한다. 그가 아무리 저열하다할지라도 자신을 정화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그는 받아들여진다. 그는 자신의 성취에 있어 보람 있음을 입증할 수 있는 위치를 얻는다. 그 결과 그는 인정받는다.

 

뒤집어진 솥은 소용이 없다. 그래서 주역은 사용되지 않는 솥과 같다. 솥을 뒤집는 것은 그 효가 말하는 대로 고여 있는 물질을 제거하게 한다. 아내가 아들을 낳지 못할 때 남자가 첩을 들이는 것처럼 우리에게 다른 출구가 보이지 않을 때 주역이 소환된다. 중국에서 합법에 준하는 첩의 위치에도 불구하고 첩은 현실에서는 다소 이상한 임시변통일 뿐이다. 신탁의 마법적 절차가 더 높은 목적을 위해 이용되는 방편인 것처럼. 비록 그것이 예외적 수단일지라도 허물이 없다.

 

구이효는 의미한다.

솥 안에 음식이 있다.

나의 동료들이 부러워한다.

그러나 그들은 나를 해害할 수 없다.

길하다.

 

선진 문화의 시기에는 뭔가 중요한 것을 달성하는 것이 가장 크게 중요하다. 그와 같은 실제 사업에 집중하면 그는 실로 시기질투와 냉대를 경험할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위험하지 않다. 자신을 실제적인 성취에 한정하면 할수록 시기, 질투하는 사람들은 그에게 해害를 더 적게 가할 수 있다.

 

그래서 주역은 스스로 말한다. “나는 (영혼의) 양분을 포함하고 있다.” 큰일을 하는 것은 항상 시기심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시기하는 자들의 합창은 상황의 일부다. 시기하는 자들은 주역으로부터 그것의 큰 소유물을 강탈하기를 원한다. 즉 주역에서 그 의미를 빼앗으려하거나 파괴하려한다. 그러나 그들의 적의敵意는 헛되다. 그 의미의 풍부함이 보장되어 있다. 즉 주역은 아무도 빼앗아 갈 수 없는 자신의 긍정적인 성취를 확신하고 있다.    

 

구삼효는 의미한다.

솥의 손잡이가 바뀌었다.

그의 인생길을 방해받고 있다.

꿩의 지방을 못 먹는다.

일단 비가 내리면 후회가 없어진다.

결국 행운이 온다.

 

손잡이는 솥을 들어 올리는 수단이다. 만약 손잡이가 바뀌면 솥은 들어 올리거나 사용할 수가 없다. 애석하게도 그 안에 있는 꿩 지방 같은 맛있는 음식을 그 누구도 먹을 수가 없다.

이것은 고도로 진화된 문명에서 아무도 주목하거나 인정해주지 않는 위치에 있는 사람을 묘사한다. 이것은 그의 효율성을 가로 막는 심한 봉쇄이다. 그의 모든 좋은 자질과 마음이 갖고 있는 재능은 쓸모없이 낭비된다. 그러나 그가 진실로 정신적인 어떤 것에 사로잡혀 있으면 늦든 빠르든 어려움이 해결되고 모든 것이 잘 될 때가 오게 마련이다. 여기에서 비가 내리는 것은 다른 경우에서와 마찬가지로 긴장의 완화를 상징한다.

 

손잡이(독일어로 Griff)는 정()을 잡을(gegriffen) 수 있는 부분이다. 그래서 그것은 누군가가 주역에 대해서 가지는 개념(Begriff)을 나타낸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이 개념은 명백히 바뀌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는 주역을 파악(begreifen)할 수 없다. 그래서 누군가 그의 인생길을 방해 받고 있다.” 우리는 더 이상 현자의 충고 및 신탁이 가진 깊은 통찰의 도움을 받지 못한다. 그러므로 더 이상 운명의 미로와 우리 자신이 갖고 있는 본성의 모호함을 뚫고 나가는 길을 찾지 못한다. 꿩고기의 지방, 즉 좋은 요리의 가장 풍부한 최고의 부분을 아직 먹지 못했다. 그러나 목마른 대지가 마침내 비를 다시 받아들이면, 즉 결핍의 이 상태가 극복되면 회한, 즉 지혜의 상실에 대한 슬픔이 끝나고 오랫동안 갈망하던 기회가 온다. 빌헬름은 논평한다. “이것은 고도로 진화된 문명에서 아무도 주목하거나 인정해주지 않는 위치에 있는 사람을 묘사한다. 이것은 그의 유효성을 가로 막는 심한 봉쇄이다.” 주역은, 자신의 뛰어난 자질이 인정받지 못한 채 지나가 자신이 휴경 상태로 놓여있다고 불평하고 있다. 주역은 이제 다시 인정받을 거라는 희망으로 자신을 달랜다.

 

 

구사효는 의미한다.

솥의 다리가 부러졌다.

군주의 식사가 쏟아졌다.

그리고 그의 인격이 더렵혀졌다.

흉하다.

 

자신이 그럴 자격이 없는 어렵고 책임감 막중한 업무를 맡고 있다. 게다가 그는 자신의 온 힘으로 그 일에 헌신하지 않고 소인들과 어울린다. 그러므로 일을 실행하지 못한다. 이런 식으로 그는 개인적 불명예를 초래한다.

공자는 이 효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 “명예로운 자리와 관련된 나약한 인격(), 큰 계획과 관련된 빈약한 지식, 무거운 책임과 관련된 제한된 힘은 거의 재앙(파멸)을 벗어나지 못한다.”

 

여기에 솥이 사용되어왔지만 분명히 매우 서투른 방식으로 사용되었다. 즉 신탁이 남용되거나 잘못 해석되었다. 이런 식으로 성스러운 음식이 소실되었다. 누군가가 부끄러운 상태에 처해진다. 제임스 레게는 다음과 같이 번역한다. “그것의 주체가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질 것이다.”

(즉 주역)과 같은 제사 용기의 남용은 총체적인 신성 모독이다. 주역은 여기서 분명히 제사 용기로서의 자신의 위엄을 고집하고 있으며 불경스럽게 사용되는 것에 저항하고 있다.  

 

육오효는 의미한다.

솥이 노란 손잡이와 황금 운반고리를 가지고 있다.

올바름을 굳게 지키는 것이 이롭다.

 

여기서 우리는 지도자의 위치에서 본성상 가까이 하기 쉽고 겸손한 한 사람을 본다. 이 태도의 결과 그는 자신의 일을 보완하고 도와줄 강하고 능력 있는 조력자들을 찾는 데 성공한다. 끊임없는 극기(헌신)를 요구하는 이 태도를 획득(성취)한 후에는 그것을 유지하고 스스로 길을 잃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주역은 새롭고 올바른(노란) 이해와 만난 것처럼 보인다. 즉 파악될 수 있는 새로운 개념과 만난 것 같다. 이 개념은 가치 있다(금으로 되어 있다). 실로 영어로 된 새로운 판본이 있어 이 책을 서양세계로 하여금 이전보다 더 잘 접근하게 만들어준다.

 

상구효는 의미한다.

솥은 옥으로 된 고리를 가지고 있다.

크게 길하다.

이롭게 작용하지 않을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앞선 효에서 운반 고리는 그 강함을 표시하기 위해서 황금으로 되어 있다고 묘사된다. 여기 상구효에서 운반 고리는 옥으로 되어 있다고 말해진다. 옥은 부드러운 광채와 단단함의 결합이 주목할 만하다. 조언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사람과 관련해서 이 조언은 크게 그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 여기에서 조언은 그것을 알리는 현자와 관련해서 묘사된다. 그것을 알리는 데 있어 현자는 귀중한 옥처럼 온화하고 순수할 것이다. 그래서 그 일은 큰 좋은 운을 나눠주는 신의 눈에 호의를 얻고 인간들에게 유쾌한 것이 된다. 그런 까닭에 모든 일이 잘 된다.

 

옥은 그 아름다움과 부드러운 광택으로 두드러진다. 만약 운반 고리가 옥으로 만들어져 있다면 그릇 전체의 아름다움, 명예, 가치가 향상된다. 주역은 여기서 자신이 아주 만족할 뿐 아니라 참으로 매우 낙관적인 존재라고 자신을 표현한다. 앞으로의 사건을 기다릴 수 있고 그 사이에 주역이 새로운 판본을 승인한다는 유쾌한 결론에 만족할 수 있다.

나는 이 예에서 가능한 한 객관적으로, 주어진 경우에 신탁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보여줬다. 물론 그 절차는 질문이 놓이는 방식에 따라 다소 다르다. 만약 예를 들어 자신이 혼란스런 상황에 있다면 신탁에서 스스로 화자로 나타날지도 모른다. 또는 만약 질문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와 관련된다면 그 사람이 화자로 나타날지도 모른다. 그러나 화자의 정체성은 전적으로 질문이 표현되는 방식에 달려있는 것은 아니다. 동료와의 우리 관계가 항상 동료에 의해 결정되는 것은 아닌 것과 마찬가지이다. 자주 우리의 관계는 거의 오로지 우리 자신의 태도에 달려 있다. 비록 우리가 이 사실을 잘 모르고 있다할지라도. 그래서 만약 어떤 개인이 어떤 관계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의식하지 못한다면 그에게 뜻밖의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예상과는 반대로 그는 주요 대리인으로 나타날지도 모른다. 가끔 틀림없이 괘사가 가리키는 바대로. 우리가 상황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여 그것을 극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반면 우리가 주역에 의뢰해서 얻는 대답이 질문에 내포된 예상치 못한 어떤 다른 측면에 주의를 돌리게 할지도 모른다.

 

 

 

(융 서문의 마지막 단락이 눈에 들어와 효사 해설과 상관없이 옮겨봅니다.)

이 하나의 책이 휘저어놓는 수천 개의 질문과 의심과 비판에 관해서라면 나는 대답할 수 없다. 주역은 증거와 결과를 제시하지 않는다. 주역은 자신을 뽐내지 않는다. 접근하기도 쉽지 않다. 자연의 일부처럼 자신이 발견될 때까지 기다린다. 사실도 힘도 제공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기 앎을 사랑하고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 주역은 딱 들어맞는 책인 것처럼 보인다. 어떤 사람에게 그 영혼은 대낮처럼 맑고 다른 사람에게는 여명처럼 어스름하며 또 다른 사람에게는 밤처럼 어둡다. 주역에 의해 즐거워지지 않는 사람은 그것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 주역에 반대하는 사람은 그것이 참되다고 생각할 의무가 없다. 주역의 의미를 알아차릴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주역이여 세상으로 나아가라.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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