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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신문> [고미숙의 붓다칼럼 숫타니파타] 6.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1) - 탄생의 사자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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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25-05-30 21:52 조회13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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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신문  2025-05-30 

[고미숙의 붓다칼럼 숫타니파타] 

6.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1) - 탄생의 사자후

 

윤회 벗어나는 방법의 함축적 상징

붓다의 존귀함은 모든 중생 구제 선언에서 비롯돼
보리수 아래 깨달음으로 구현된 '아당안지'의 사자후
초기 유행기 길 위에서 좀 더 경쾌한 버전으로 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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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는 인류사에서 최초로 오직 인간의 힘으로 ‘윤회의 미망’에서 해방되는 길을 열었다.[AI 생성 이미지]

 

드디어 여기다! ‘뱀의 경’, ‘다니야의 경’을 거쳐 ‘무소의 뿔의 경’에 도착했다. 이 경은 모두 41개의 게송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모든 게송에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후렴구가 붙어 있다. 이 후렴구 덕분에 ‘숫타니파타’는 불멸의 명성을 누리게 되었다.   

숲속에서 묶이지 않은 사슴이
마음대로 풀을 찾아 돌아다니듯
현명한 사람은 자유를 찾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어깨가 벌어지고 연꽃 문양 점 있는
거대한 코끼리가 무리를 피해 나와
숲속에서 제 맘대로 살아가듯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물속에서 물고기가 그물을 찢듯이
불탄 곳에 불이 다시 오지 않듯이
모든 결박을 끊어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이중표 역주, ‘숫따니빠따’)

언제 들어도 가슴이 웅장해진다. 주지하듯, 초기 경전의 인지도는 비교적 약한 편이다. ‘금강경’, ‘반야심경’, ‘화엄경’ 등 대승경전의 카리스마에 가려졌다고나 할까. 

그럼에도 ‘숫타니파타’는 세상에 널리 회자되는 편이다. 일찍이 이 경전을 번역하신 법정 스님의 명성 덕분이기도 하고, 1990년대를 대표하는 공지영 작가의 베스트셀러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때문이기도 하다.(덧붙이면, 전세계인들의 버킷 리스트에 속하는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주인공 ‘두목’이 매일 밤마다 필사한 경전도 ‘숫타니파타’다). 

이 과정을 살펴보면 ‘숫타니파타’가 누리는 명성의 대부분은 ‘무소의 뿔’경, 특히 그 후렴구인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듣는 순간 뇌리에 딱 박히는 멋진 아포리즘에 틀림없다. 

그렇기는 한데, 막상 그 의미가 뭐냐고 묻는다면 좀 아리송하다. ‘당당하라’, ‘혼자서 가라’, 까지는 알겠는데, 그게 붓다의 깨달음과 어떻게 연결되는 거지? 그걸 파악하려면 이 게송의 주체인 붓다가 탄생하는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북인도 네팔 근처의 작은 성 카필라밧투. 샤카족이 다스리는 공화제적 부족국가다. 왕은 슈도다나, 왕비는 마야부인. 왕의 나이 마흔이 넘어 마야부인이 임신을 했다. 출산이 임박하자 마야부인은 친정을 향해 가는 도중 룸비니 동산에서 ‘옆구리로’ 출산을 한다. 비교종교학자 카렌 암스트롱에 따르면, ‘옆구리’는 심장과 가까운 곳이다. 따라서 이 사건은 장차 태어날 아기가 ‘정욕이 아닌 교감’의 화신임을 상징한다고 한다. 

시녀들이 아이를 받아 안자 아기는 두발로 서서 일곱걸음을 걸은 후 이렇게 외친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하늘 아래 나홀로 존귀하다!‘는 뜻이다. 갓난아기가 사자후를 터뜨렸다는 사실도 신비롭지만 내용은 더욱 압도적이다. ‘이 세계에서 오직 나만이 존귀하다’니, 그럼 자신이 신이라는 뜻인가? 물론 아니다. 붓다는 신이 아니다. “스스로 깨어난 자”(암스트롱)다. 그럼 이 존귀함의 근거는 무엇인가?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선 그 뒤에 생략된 구절을 복원해야 한다. ‘일체개고 아당안지’. 즉 ‘일체가 다 괴로움이니 내 마땅히 편안케 하리라’는 뜻이다.

왜 일체는 다 괴로운가? 업력에 휩쓸려 윤회의 수레바퀴를 맴돌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말은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이 윤회계를 벗어나도록 해주겠다는 뜻이다. 당시까지만 해도 그 주체는 세계의 창조자이자 주재자인 신이었다. 

하지만 붓다가 보기에 신에 의한 구원은 불가능하다. 신 또한 육도윤회의 한 프로세스를 경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남는 건 하나뿐! 스스로 찾고, 스스로 깨쳐야 한다. 그 길을 찾아내어 모든 중생에게 알려주리라. 그러므로 ‘유아독존’의 ‘아’는 싯다르타 태자 개인이 아니라, 더 이상 신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길을 열어가는 인간(성) 그 자체를 의미한다. 인류사에서 최초로 오직 인간의 힘으로 ‘윤회의 미망’에서 해방되는 길이 열린 것이다.

이 탄생의 사자후가 35년 뒤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으로 구현되었고, 초기 유행기에 길 위에서 좀더 경쾌한 버전으로 변주된 것이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 비전선포라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구체적 방법론인 것. 자, 그럼 이 지점에서 다시 물어야 한다. 그래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무슨 뜻인가? 그 길은 어떻게 열리는가? 


출처 : 법보신문(https://www.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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